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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20 (토)

    이슈를 이슈로 덮는 이재명 정부의 인해전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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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튼, 주말]

    [서민의 시사 구충제]

    우연인가 필연인가

    ‘이슈 홍수’ 6개월

    조선일보

    일러스트=유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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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8월 이재명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미국을 방문했다. 대변인은 ‘합의서가 필요 없을 정도로 잘된 회담’이라고 자화자찬했다. ‘외교왕 이재명’이라는 찬사가 쏟아졌고, 지지율이 올랐다. 20여 일 후 이 대통령이 미국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미국 요구대로) 그대로 합의했다면 탄핵당했을 것”이라고 한 발언이 공개됐다. 대미 투자에 대한 미국 측의 요구가 과도해 거절했다는 뜻을 밝혔다는 것이다.

    관세협정에 관해 현 정부가 국민을 속였다는 의혹이 제기될 법했지만, 관심은 다른 곳으로 쏠렸다. 곧바로 조희대 대법원장에 대한 여권의 공격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의원은 ‘대법원 판결 전에 조희대 대법원장이 한덕수 총리를 만났다’면서 이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대법원이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것이 이 만남에서 비롯된 것인 양 주장했다. 제대로 된 근거는 없었다. 근거라고 댄 것은 열린공감TV라는 유튜브 채널이 AI로 합성한 ‘전언’. 해당 채널이 3년 전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가 청담동 술자리에 갔다는 가짜뉴스의 발원지라는 점까지 감안하면 보다 그럴싸한 근거가 필요했다. 하지만 기자들이 서 의원에게 근거를 요구하자 그는 “최초 의혹 제기를 내가 한 게 아니다. 열린공감TV에 물어보라”고 했고, 그 이후에도 여기에 관해 사과하지 않았다. 대법원 판결을 빌미로 대법원장을 이렇게 마타도어한 정권은 여태까지 없었지만, 사람들의 관심은 곧 사그라들었으니, 그건 김현지 제1부속실장의 국감 출석이 화제가 돼서였다.

    이 대통령이 성남시장, 경기도지사, 민주당 대표를 지내는 내내 그의 최측근이었던 김 실장. 이 대통령 당선 전에야 비선으로 존재하는 게 양해될 수 있다지만, 현 정부 출범 이후 총무비서관이란 고위직에 임명된 이상 계속 베일 속에 숨어 있을 수는 없다. 입법부가 행정부를 감시하는 수단인 국정감사는 김 실장이 광명을 찾을 좋은 기회였지만, 민주당은 그의 출석을 허용하지 않았다. 김병기 원내대표는 ‘김 실장에 대해 중대하게 확인해야 할 의혹이 불거져 나온 게 없다’는 취지로 출석이 필요 없다고 했지만, 대북송금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의 변호인은 ‘이 부지사의 진술번복 사건 이후 김 실장이 여러 차례 전화를 걸었다’고 폭로했으니, 국회에서 부를 명분은 충분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온갖 핑계를 대면서 출석을 막았는데, ‘지금까지 총무비서관이 국감에 안 나온 적이 있느냐’는 주장이 나오자 직책을 총무비서관에서 부속실장으로 바꿔 버린 건 한 편의 코미디였다. 덕분에 ‘애지중지현지’라는 말까지 나왔지만, 국민들이 김 실장에 대한 관심을 지속하는 건 불가능했다. 최민희 의원의 딸이 국감이 한창인 10월 중순의 토요일에, 그것도 국회에서 결혼식을 했기 때문이다.

    최 의원은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수장. 그런 권력자의 딸이 결혼하는데 피감기관이 이를 모른 체 할 수 있을까? 수많은 화환이 배달됐고, 그 자리에서 거둔 축의금도 어마어마했을 터였지만, 최 의원은 양자역학을 공부하느라 딸이 언제 결혼하는지 몰랐고 피감기관에 연락한 적이 없다고 변명한다. 하지만 이진숙 전 방통위원장은 재직 당시 ‘최 의원의 보좌관이 결혼식 화환을 보내달라고 요청했다’는 내용의 보고를 받았다고 폭로했는데, 이런 의혹에도 최 의원은 과방위원장 사퇴를 거부하며 버텼고, 국회에서 휴대폰으로 축의금을 반환하는 퍼포먼스를 펼치기도 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최 의원으로부터 관심을 거둔 건 그 쇼를 통해서가 아니라, 대장동 재판을 담당한 검찰이 항소포기를 하는, 사상 유례없는 사건이 터졌기 때문이다.

    대장동 1심 결과는 아쉬웠다. 그 판결대로라면 7400억원에 달하는 범죄수익금을 국가가 환수하지 못하게 됐기 때문. 그런데도 검찰이 항소포기를 한 배경에는 정성호 법무부장관을 비롯한 현 정부 인사들의 외압이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채상병 사건을 수사하는 와중에 대통령의 격노가 있었다며 정권 내내 대통령을 규탄했고, 정권 교체 후 ‘채상병 특검’까지 가동할 만큼 외압에 예민했던 민주당은 이번엔 법무부의 외압 의혹을 차단하기 바빴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와 한동훈 전 대표는 항소포기를 옹호하는 이들과 토론 배틀을 제의했지만, 박범계 의원이나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등 과거 법무부장관 출신들이 응하지 않는 바람에 토론은 성사되지 않았다. 더 어이없는 점은 이에 항의하는 검사들에 대해 좌천성 인사를 한 것. 일부 검사장들은 법무연수원으로 보냈고, ‘명태균 공천 개입 의혹 수사’를 부실하게 했다는 이유로 이미 법무연수원에 가 있던 정유미 검사장은 평검사로 강등 조치했다. 영혼 있는 공무원을 만들겠다며 공무원의 복종의무를 없애겠다던 이재명 정부가 말도 안 되는 조치에 항의하는 검사들을 징계한 것 역시 한 편의 코미디였지만, 이 역시도 국민의 관심에서 사라진다. 장경태 의원의 성추행 의혹이 터졌기 때문이다. 그는 만천하에 공개된 추행 영상을 부정한 것은 물론, ‘사건의 본질은 데이트폭력’이라는 황당한 얘기를 하며 민주당 청년 정치인의 민낯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그 뻔뻔한 대처에 다들 분노했지만, 그 역시도 오래가지 못했다. 좌파의 개념 연예인으로 불리던 조진웅씨의 소년원 이력이 폭로된 것. 훨씬 경미한 학폭에도 ‘피해자’ 운운하며 절대 용서하지 말아야 한다던 민주당 사람들이 ‘강간 혐의’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진 조씨 범죄에 대해 ‘이미 다 끝난 일’로 치부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지만, 이것 역시 통일교 금품수수에 대해 민주당은 봐주고 국힘만 수사한 민중기 특검의 편파성에 묻혀 버렸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김남국 의원이 재점화하려던 ‘현지누나’ 인사청탁 의혹이나 내란재판부 신설 같은 민주당의 자충수는 관심조차 못 받을 지경인데, 이게 불과 6개월 만에 벌어진 일이라니 기가 막힌다.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에 묻는다. 지금, 인해전술 펴는 건가요.

    [서민 단국대 기생충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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