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점점 나이가 들어서인지, 아니면 거리에서 울려 퍼지던 크리스마스 캐롤이 저작권 문제로 더 이상 들려오지 않아서인지 요즘은 연말이 되어도 크리스마스의 분위기가 잘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그리스도교 문화가 이미 뿌리내린 서양의 나라들과 한국은 분명히 문화적 차이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종교인으로서가 아니라, 현대를 살아가는 한 시민으로서 사회문화적 '즐거움'이 또 하나 사라진 것은 안타까운 사실이다.
유럽, 그중에서도 특히 독일은 크리스마스를 앞둔 한달여 전부터 '성탄시장'이라는 것이 열린다.
사실 성탄시장의 기원은 13세기 경, 겨울철 생필품을 구입하기 어려운 서민들을 위해 시작됐다.
하지만 현대에 이르러 이러한 성격보다는 연말 성탄절과 관련한 물건을 전시하고 이외의 다양한 물건을 판매하는 유럽의 대표적인 겨울문화로 자리잡고 된다.
한국에서는 '유럽의 크리스마스 마켓'으로 소개되고 있다.
특히 서울시에서는 2022년부터 광화문을 중심으로 유럽의 성탄시장을 모태로 한 축제가 열리고 있으며 청주시에서도 올해 처음으로 천주교 청주교구청 일대에서 '도민과 함께하는 크리스마스 축제'가 개최되기도 했다.
종교를 떠나 지역주민들이 '겨울'과 '크리스마스'가 주는 낭만과 즐거움을 느끼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독일의 겨울 날씨는 참으로 스산하다.
밝은 햇살을 볼 수 있는 날이 별로 없으며 해도 짧아 이미 오후 5시만 되면 어둑어둑해진다.
겨울비가 내리는 날도 자주 있다보니 웬지 모를 무겁고 우울한 분위기가 지속되곤 한다.
이런 와중에 매년 12월 전후로 시작되는 성탄시장은 이러한 분위기를 벗어나 겨울을 보다 즐겁게 보낼 수 있는 중요한 문화가 아닐 수 없다.
성탄을 준비하는 기간인 대림시기에 맞춰 시작되는 성탄시장에는, 가정에서 꾸밀 수 있는 성탄장식과 관련된 물건에서부터 성탄절 선물로 사용할 수 있는 물건들을 주로 판매한다.
또한 내년까지 보관하기 어려운 하급의 와인을 각종 향신료와 함께 끓여서 파는 글뤼바인(Glühwein: 한국에서는 흔히 뱅쇼로 더 알려져 있다)을 필두로 각종 소세지와 슈톨렌(Stollen)과 렙쿠헨(Lebkuchen) 등 다양한 음식들은 성탄시장을 찾게 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가족이 함께 성탄시장에 들려, 음식을 나누고 자기 집을 꾸밀 장식품들을 고르며 아이들의 선물을 사는 부모의 모습은 보는 이에게 잔잔한 미소를 짓게 해 준다.
이러한 성탄시장은 또한 단순히 물건을 구입하고 음식을 사 먹는 의미를 넘어, 한 해를 마무리 지으며 함께 인사를 나눌 사람들과의 중요한 만남의 장소가 되기도 한다.
성탄방학을 앞둔 학생들끼리, 직장 동료나 친구들끼리 따뜻한 와인 한잔을 나누며 한해를 수고하며 살아온 서로에게 격려와 감사의 인사와 함께 작은 선물을 나누며 한 해를 마무리 짓곤 한다.
어느새 2025년 한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매년 연말이 되면 속절없이 빨리 흘러가는 시간에 대한 아쉬움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자주 만난다.
어디 '1년'이라는 시간만 그럴까?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지난 시간에 대한 긍지와 감사보다는 아쉬움과 후회의 감정을 갖고 살아가는 경우를 자주 마주치게 된다.
어떤 이들은 '사회적 우울증'의 시대를 살고 있다고도 한다.
하지만 삶의 성공과 실패를 누가 쉽게 단정지을 수 있을까? 오히려 이러한 감정에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한 해 수고한 자기자신을 격려하고, 함께 한 해를 수고롭게 살아준 나의 주변 사람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하루하루의 삶을 보다 더 즐겁고 보다 더 활기차게 지내는 것이 지혜로운 모습이 아닐까? 즐거움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드는 것이고 삶 속에서 발견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날씨'라는 외부적 환경에 끌려가지 않고 일상 생활 속에서 소소한 즐거움을 만드는 문화를 만든 유럽인들을 보면서 이러한 생각을 다시 한번 가져본다.
김성우 청주 덕암성당 주임신부 성탄,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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