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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24 (수)

    [아침뜨락] 박물관 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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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부매일

    햇살 가득 내려앉은 캠퍼스의 오후는 젊음의 낭만으로 가득하다.

    천천히 걷다 보면 산책길이 되고, 숨을 고르면 운동장이 되며 마음이 기울면 도서관이 되는 곳이 예있다.

    그런 공간이 집 가까이에 있어 한결 여유로운 삶을 누릴 수 있어 참 좋다.

    셋째 딸이 손주들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친정에 들렀다.

    함께 점심을 먹고, 짧은 틈을 내어 우리는 박물관 나들이를 가기로 했다.

    그 날 데이트는 공간을 걷는 일이 아니라, 시간을 건너는 산책이었다.

    교육은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을 위해 오늘을 내어주는 것이다.

    부모라면 누구나 자신보다 자식이 더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국경을 넘고 세대를 건너 인류가 공유해 온 가장 오래된 바람이리라.

    나라의 백년을 좌우하는 교육의 중요성 또한 그렇다.

    먼 앞날까지 내다보며 씨앗을 심어야 한다는 그 믿음이야말로, 시대가 아무리 달라져도 흔들리지 않는 화두다.

    한국교원대학교 교육박물관에는 교육이 걸어온 시간의 결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선사시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배움이 어떤 모습으로 삶을 떠받쳐 왔는지 유물과 영상, 체험으로 보여주는 전문 공간이다.

    개항기 서양 문물이 들어오면서 달라진 교실 풍경부터, 현대 교육의 얼굴까지 한눈에 볼 수 있다.

    특히 전쟁의 포성 속에서도 멈추지 않았던 교육 현장은 나의 시선을 오래 붙들었다.

    총성이 멈추지 않던 시간에도, 배움은 가장 먼저 자리를 잡았다.

    피난지에 세운 천막학교와 급히 만들어 나누던 임시 교과서를 보며 어려울 때 일수록 더 가르쳐야 한다는 믿음이 고스란히 들어 있었다.

    구석기 시대에서 현대 AI 교육에 이르기까지 이어지는 교육의 여정은 한 공간 안에서 조용히 호흡하고 있다.

    교육체험실의 오래된 책상에 앉아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반나절이 지났다.

    그 가운데, 다람쥐 쳇바퀴 모양의 추첨기가 눈에 확 들어왔다.

    교육대학교 부속초등학교 입학 추첨을 위해 길게 줄을 서 있던 삼십여 년 전 내 모습이 떠오른다.

    조마조마한 기다림 끝에, 하얀 바둑알이'똑'하고 떨어지던 순간.

    합격과 불합격의 희비가 갈렸다.

    그 순간 말로 다 담을 수 없던 기쁨가운데 학부모가 된 감격이 지금도 가슴 한편을 데운다.

    그날 떨어지던 작은 바둑알 하나가, 우리 아이들 미래를 조용히 밀어 올렸다.

    일제강점기 아래서 몰래 한글을 가르치던 조선어독본을 마주하자, 작지만 깊은 울림이 가슴을 스친다.

    세대를 따라 이어져 온 교육 유산은 지금도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국민체조 동작을 따라 해 보고, 교련복을 입고 사진을 찍는 체험도 했다.

    엄마와 딸은 서로 다른 세대의 학습자로서, 같은 교실의 공기를 나누었다.

    교복을 입고 나란히 흑백 사진을 찍는 동안, 시간은 잠시 숨을 고르는듯했다.

    국군의 날, 여의도광장 언저리에서 군인 아저씨들과 함께했던 학창 시절이 생각난다.

    교련 사열과 삼각건법 시범, 붕대를 감고 풀며 배웠던 응급처치는 누군가를 보호하고 지킬 수 있다는 묵직한 책임과 자부심으로 마음을 바로 세우기도 했다.

    교육은 그렇게 희망이 됐고,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문을 열어 주었다.

    묵은 서랍을 닫고 나오며 교육 활동지에"참 잘했어요."도장을 받았다.

    유년을 통과해 오래된 추억 속에서 맡았던 잉크 냄새가 다시 살아난다.

    교실의 이야기와 추억의 교과서들은 묵은 먼지 사이로 피어오르는 기억의 온기와 마음속 서랍을 조심스레 여는 힘이 있다.

    그 따뜻함이 박물관의 마지막 문을 나서는 우리의 등을 가만히 떠민다.

    가끔은 우리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며 이야기가 있는 박물관데이트를 즐겨보라.

    우리들 어린 시절이 그곳에서 기다리며 반갑게 맞이해 줄 테니까.

    이경영 수필가 박물관,교육박물관,한국교원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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