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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03 (토)

    [종교칼럼] 2025년의 뒷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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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부매일

    얼마 전, 호주 본다이 비치에서는 끔찍한 테러가 일어났다.

    이슬람 극단주의의 영향을 받은 두 부자(父子)가 유대인들의 하누카 행사에 난입하여 총기를 난사한 것이다.

    이로 인해 16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이 부상을 입었다.

    충격과 안타까움으로 당시 상황에 대한 기사를 보던 중, 나는 인상 깊은 사진 하나를 보게 됐다.

    참사 당시 총소리를 들은 해변 안전요원 잭슨 둘란이 서둘러 의료용품이 든 가방을 들고 해변가로 달려가고 있는 뒷모습이 찍힌 사진이었다.

    총격의 표적이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훤한 대로 한복판을 미처 신발도 챙겨 신지 못한 체 맨발로 달려가는 그의 뒷모습은 내게 묘한 울림을 가져다 주었다.

    그것은 위험과 불안으로 점철된 사진 속 대로변의 일상의 세계 속에서 생명을 살려보고자 몸부림치는 인간다움의 울림이었다고나 할까.

    그렇게 그 안전요원의 뒷모습은 여러 위험과 불안으로 가득했던 세상 속에서 살기 위해서, 살아내기 위해서, 살려내기 위해서 몸부림쳤던 우리네 인간다움의 2025년을 돌아보게 하는 인상적인 사진으로 내게 다가왔다.

    영화 촬영 기법에서 사람의 뒷모습을 찍는 것을 '백샷(Back Shot)'이라고 한다.

    사실 백샷은 그렇게 자주 쓰이는 촬영 기법은 아니다.

    사람의 표현은 주로 앞모습인 얼굴에서 드러나지 뒷모습에서는 아무것도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때로는 누군가의 뒷모습이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를 해줄 때가 있다.

    뒷모습은 우리가 그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으로 시선을 돌리게 한다.

    그리고 그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자리에 우리가 함께 서게 함으로써 그 사람이 받아들일 감정을 느낄 수 있게 한다.

    이런 백샷의 효과로 위험과 불안의 세계 속에서 사람의 뒷모습이 우리에게 많은 정서적 감흥을 남겨줄 수 있다는 것을 미국의 영화 감독 구스 반 산트는 잘 알았다.

    그는 이러한 백샷의 효과를 이용해서 2003년 미국 컬럼바인 고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을 모티브로 한 '엘리펀트(Elephant)'라는 제목의 영화를 찍는다.

    영화는 80분 동안 평범한 미국의 한 고등학교의 하루를 여러 인물들의 시점으로 반복해서 보여준다.

    그리고 그 모든 순간들의 많은 부분을 인물들의 뒷모습을 백샷으로 길게 찍어서 보여준다.

    총기 난사의 비극이 일어나기 직전의 일상들, 비극이 벌어지는 그 순간의 상황들, 영화는 우리가 살아가는 위험과 불안의 세계를 평범한 고등학생들이 살아가는 일상의 뒷모습을 통해서 그 세계의 공기를, 밀도를, 분위기를 섬세하게 포착해 낸다.

    그리고 그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따라가는 우리들로 하여금 인물들이 받아들일 폭력과 권태, 외로움과 같은 정서들에 밀착되어 느끼게끔 해준다.

    그렇게 감독 구스 반 산트는 컬럼바인 고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을 회고하고 추모한다.

    단순히 누군가의 잘못과 원인을 분석하고 해결 방법을 제시하는 회고가 아닌, 그러한 비극이 펼쳐진 세상의 불안하고 먹먹한 공기를 다시 떠올린다.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간 희생자들이 겪었을 감정을 재생하고 애도한다.

    그에게는 그것이 컬럼바인 총기 사건의 뒷모습이었을 것이다.

    2025년 올 한 해, 여러 사람들을 만났다.

    그만큼 많은 이들의 앞모습을 마주하며 한 해를 보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의 뒷모습을 보며 한 해를 보냈다.

    특별히 교회에서 목회를 하면서 뒷모습을 보며 떠나보내야만 했던 이들을 생각한다.

    그 중에서도 올 한 해 동안 6개월의 간격을 두고 함께 세상을 떠난 노부부의 뒷모습을 추억한다.

    지난 3월에 아내를 떠난 보낸 노년의 남편 분은 장례식장에서 아내의 마지막을 배웅하며 그렇게 많이 우셨다.

    무너지는 아픔의 세계 속에서 끊을 수 없는 사랑으로 죽음의 절망을 밀어내며 아파하는 그 분의 그 뒷모습이 내게 마지막으로 남겨진 그 분의 뒷모습이었다.

    그리고 나는 지난 9월 그 남편 분 또한 떠나 보내 드렸다.

    그리고 그 두 분의 뒷모습은 내게 기억할만한 2025년의 뒷모습이 되어 주었다.

    두렵고 불안하고 막막한 한 해 모든 시간 속에서 그래도 살아내기 위해서 애썼던 그 뒷모습, 그리고 그래도 사랑하기 위해서 애썼던 그 뒷모습 말이다.

    2025년의 마지막, 우리들에게 이 한 해는 어떤 뒷모습으로 남게 될까.

    그래도, 그럼에도, 살아내고 사랑했던 뒷모습이 남는 우리의 2025년이 되기를 축복한다.

    안세훈 청주상당교회 부목사 총기난사,테러,새해,202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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