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학 3인의 신년 세계 경제 전망
잭 장 미 캔자스대 교수, 마크 블라이스 미 브라운대 교수, 프레데릭 에릭손 유럽국제정치경제센터 소장(사진 왼쪽부터). 이들은 인공지능(AI)과 국가부채, 미·중 등 국제관계 불확실성이 올해 글로벌 경제 향방을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본인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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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관이 된 인공지능
잭 장(Zhang) 미 캔자스대 교수 겸 무역전쟁연구소(Trade War Lab) 소장은 “AI 투자와 데이터 센터 건설이 지난해 미국의 GDP 성장을 사실상 지탱해 왔다”며 “투자자들의 과도한 낙관론이 꺾이는 순간, 즉 AI 거품이 터지는 시점이 2026년이 될 수 있다는 점이 우려된다”고 했다.
마크 블라이스 미 브라운대 교수 또한 올해 세계 경제의 가장 큰 뇌관으로 ‘AI 버블’을 지목했다. 그는 미국의 AI 투자를 과거 소련의 프로젝트와 흡사하다며 “무작정 엔비디아 칩을 쏟아부으면 언젠가 ‘초월적인 힘’이 등장해 질적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 믿는 식”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그의 진단대로라면 이는 불가능한 시나리오다. 중국이 이미 AI 모델의 핵심 지식만 추출해 작고 효율적인 모델을 만드는 기술(증류화·distillation)과 무료로 오픈소스 모델을 제공하는 방식을 앞세워 미국의 기존 독점 모델을 허물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미국 소비의 60%를 차지하는 상위 20% 부유층의 자산이 이 AI 주식들에 묶여 있다는 점이 문제”라며 “주가가 폭락하면 이들이 지갑을 닫을 것이고, 미국 경제는 곧바로 침체로 직행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AI 열풍으로 폭등한 미국 주식시장이 만약 2000년대 초반 ‘닷컴 버블’ 수준의 붕괴를 맞는다면 미국 전체 가계 자산의 8%, 약 16조달러(약 2경3000조원)가 사라질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AI 쏠림 현상이 경제 불균형을 가속화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유럽 대표적 경제 싱크탱크인 유럽국제정치경제연구소(ECIPE)의 프레데릭 에릭손 소장은 “AI 투자 부문을 제외한 나머지 산업이 고사하고 있어, 전반적인 노동 수요가 줄어드는 상황”이라며 “미국 경제는 건강하지 않고, 실업률은 더 나빠질 것”이라고 했다.
그래픽=백형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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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경제 교란하는 정부 부채
급증하는 정부 부채도 AI 못지않은 글로벌 경제 교란 요인이다. 국제금융협회에 따르면 작년 3분기 말 기준 세계 부채 규모는 345조7000억달러(약 50경원)다. 코로나 사태 이전인 2019년(255조달러)보다 36% 증가했다. 각국 정부의 돈 풀기 통화정책과 확장 재정이 맞물린 결과다.
잭 장 교수는 “미국을 포함한 많은 국가가 사실상 미래 세대의 돈을 빌려 쓰고 있다”며 “특히 장기 성장 전망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부채가 쌓이고 있다는 점이 위험하다”고 했다. 금융 시장이 선진국의 높은 부채 수준을 아직은 용인하고 있지만, 고금리와 저성장 기조 속에서 재정적 여유는 사라지고 정책적 실수가 용납될 여지도 줄어들고 있다고 했다.
프레데릭 에릭손 소장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경제 정책이 결국 높은 재정 적자와 인플레이션을 유발해 스스로 발목을 잡고 있다고 진단했다. GDP 대비 7%에 달하는 미국의 막대한 재정 적자가 경제 전반의 비용을 밀어 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국가 부채 위기가 현실화해 세계 경제를 분열시킬 위험이 큰 시기에 진입했다. 무엇보다 미국 부채 문제가 가장 큰 리스크다. 미 연준의 독립성을 박탈하려는 정치적 움직임 때문에 위기가 닥쳤을 때 이를 해결할 기관이 사라질 위험이 있다”고 했다.
반면 마크 블라이스 교수는 미국의 부채는 그리 심각하지 않다고 진단했다. 그는 “미국은 만성적인 경상수지 적자에도 불구하고 수십 년째 끄떡없는 모습을 보여왔는데, 이는 전 세계 투자자들이 미국 자산을 앞다퉈 사들이기 때문”이라며 “달러가 여전히 전 세계 무역 결제의 표준이자 가장 안전한 자산 보관 수단으로 통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부채에 따른 진짜 위험은 보건·교육 예산보다 부채 상환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다른 저개발국이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프랑스나 이탈리아 같은 유로존 국가 역시 부채 위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국가로 꼽았다. 이들 국가는 유로존에 묶여 있어 독자적으로 화폐를 찍어낼 수 있는 수단이 없다 보니 자국 통화 가치를 떨어뜨리거나 인플레이션을 통해 부채 위기에서 벗어나는 식의 자구책도 쓸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예전 같지 않은 미국 직시해야”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40% 이상을 차지하며, 공급망에서도 핵심 위치를 점하고 있는 미국과 중국의 관계는 올해도 세계 경제를 좌우할 가장 큰 리스크 요인 중 하나다.
프레데릭 에릭손 소장은 미·중 관계에 대해 “양측 모두 보호무역주의라는 춤판에 갇혀 있으며, 어느 쪽도 이 판에 박힌 상황을 더 건설적인 방향으로 바꿀 의도는 없어 보인다”고 했다. 잭 장 교수는 “미·중 관계에서 유일하게 예측 가능한 것은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점밖에 없다”며 “다만 미·중 양국 정부 모두 내부 과제가 산적해 있어 당장 충돌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오는 4월로 예정된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 국빈 방문까지는 현재의 휴전 상태가 유지될 것이란 전망이다.
장 교수는 또한 올해 통상 관계에 대해 안보를 명분으로 내세운 ‘관리 무역(managed trade)’과 특정 부문이나 기업에만 혜택을 주는 ‘예외 조항(carve-outs)’이 더욱 늘어날 것으로 봤다. 그는 “단기적 이익을 위한 국가의 행동이 국제 시스템의 장기적 안정을 해치는 비극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마크 블라이스 교수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달 5일 발표한 종합 전략 지침인 국가안보전략(NSS)을 자세히 분석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미국이 새로 내놓은 국가안보전략을 보면 미국은 그린란드에서 칠레에 이르는 서반구 지역을 자신들의 앞마당으로 보고 이를 지배하는 것으로 외교 정책을 재편하고 있다”며 “이에 따라 중국은 동아시아를 ‘주도’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만약 한국과 일본 같은 미국의 전통적 동맹국들이 중국에 저항하려 한다면 미국은 환영하고 각종 무기 정도를 판매할 수 있겠지만, 웬만하면 동맹국들을 지원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과 일본에 대해 “미국의 약속이 예전 같지 않은 현실을 직시하고, 경제적으로는 중국과 절연할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호주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정교하고 미묘한 ‘줄타기 외교’를 하는 것처럼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곽창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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