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은 1936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났다. 일본에서 합기유술을 익힌 덕암 최용술씨(1899∼1986)에게 배웠다. 고인은 합기유술에 전통 무예 발차기 기술을 더해 무술 체계를 세웠다. 1955년 안동에서 합기도 도장을 개관했다. 대한합기도협회 자료를 보면, 고인이 처음으로 ‘합기도’라는 이름을 사용했다고 본다.
‘한국형 합기도 체계화’ 한 지한재씨. 출처: 대한합기도협회 |
고인의 고향 후배인 오세림 대한합기도협회 총재는 연합뉴스에 “일본의 아이키도(合氣道)가 손기술로 상대를 제압하는 반면, 지한재 선생은 여기에 발기술을 더해 합기도를 종합무술로 발전시켰다”며 “처음엔 한글로 ‘합기도’라고 한 것도 일본과 다른 무예라는 걸 강조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고인은 1957년 서울에서 합기도 성무관을 개관했다. 1960년대에는 청와대 경호실에서 경호관으로 근무하며 합기도를 가르쳤다.
지한재씨는 <사망유희>에서 이소룡과 대결하는 합기도 고수로 출연했다. 영화 화면 갈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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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미국 백악관에 파견돼 합기도를 시연했다. 이때 알게 된 미국 태권도 대부 이준구씨(1932∼2018)씨 소개로 브루스 리(이소룡·1940∼1973)를 만났다. <사망유희>에 합기도 고수 역할로 출연하기도 했다. 1984년 미국으로 건너가 ‘신무합기도’라는 이름으로 합기도를 보급했다.
오 총재는 고인과 청와대 경호실에서 함께 근무했다. 오 총재는 “1960∼1970년대 청와대 경호실에 태권도, 유도, 검도, 합기도 사범이 있었지만 호신술·체포술로는 고인이 가르친 합기도가 가장 뛰어났다”며 “합기도의 발차기는 태권도나 특공무술에도 영향을 줬다”고 말했다.
추모식은 지난 7일 국립의료원 장례식장에서 열렸다.
김종목 기자 j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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