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대통령 전두환씨가 지난 2019년 3월 11일 사자명예훼손혐의로 광주광역시 동구 광주지법에서 열린 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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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대통령 고 전두환씨가 2017년 펴낸 회고록에서 5·18 민주화 운동을 왜곡하고 관련자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손해를 배상하라는 판결이 12일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소송 제기 8년 8개월 만에 나온 최종 결론이다.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이날 5·18 기념재단 등 4개 단체와 고 조비오 신부의 조카 조영대 신부가 전씨와 아들 재국씨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승소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 확정판결에 따라 전씨의 부인 이순자씨와 아들 재국씨는 5·18 단체들에 각각 1500만원, 조 신부에게 1000만원 등 총 7000만원을 배상해야 한다. 또 왜곡된 일부 표현을 삭제하지 않으면 회고록 출판·배포도 금지된다.
전씨는 2017년 4월 출간한 회고록에서 5·18을 ‘폭동’으로 규정했다. 또 5·18 당시 헬기 사격이 없었다고 주장하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조비오 신부에 대해 ‘성직자란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했다. 자신에 대해선 ‘광주사태 치유를 위한 씻김굿의 제물’이라고 했다.
이에 5·18 단체들과 조비오 신부 유족은 회고록을 집필한 전씨와 발간·판매한 아들 재국씨를 상대로 회고록 출판 및 배포금지 가처분 신청과 함께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법원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여 원고들이 문제 삼은 표현을 삭제하지 않고 출판·배포해선 안 된다고 결정했고, 이후 전씨 측은 해당 부분만 검게 가려 2판을 발간했다.
본안 소송에서도 1심과 2심 모두 원고의 손을 즐어줬다. 2018년 9월 1심은 전씨 부자가 5·18 단체 네곳에 각 1500만원, 조영대 신부에 1000만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또 회고록 속 표현 70개 중 69개를 삭제하지 않으면 출판·배포를 금지하게 했다.
2심도 2022년 9월 같은 액수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다만 전씨는 2심 재판 진행 중이던 2021년 11월 사망해 부인 이씨가 소송을 수계하게 됐다. 2심은 검토한 63개 표현 중 51개를 전부 또는 일부 삭제하라고 명령했다.
회고록 중 북한군 개입설과 계엄군의 헬기 사격을 부인한 부분, 계엄군이 자위권 발동 차원에서 총기를 사용했다는 주장 등은 1·2심 모두 객관적인 근거가 없는 허위 사실이라고 판단했다. 2심은 시위대 장갑차에 계엄군 병사가 깔려 숨졌다고 기술한 것 역시 허위 사실이라고 봤다. 그러나 전씨가 회고록을 쓸 당시 허위임을 알고 있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워, 이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은 묻지 않았다. 광주교도소 습격 사건은 시민군의 공격이 있었던 것은 허위로 볼 수 없지만, 수감된 간첩을 해방하기 위해 북한 측이 개입했다는 주장은 허위라고 판단했다.
전직 대통령 고 전두환씨가 회고록에서 5·18 민주화 운동을 왜곡하고 관련자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손해를 배상하라는 판결이 12일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이날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박강배 5·18기념재단 상임이사(가운데)와 김정호 변호사가 입장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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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대법원은 회고록에 허위 사실을 적시해 5·18 단체들의 사회적 평가가 침해됐고, 전씨에게 위법성 조각 사유가 없다는 원심 판단을 유지했다. 대법원은 “5·18 민주화운동의 전개 과정과 관련 확정판결의 내용, 관련자들의 진술 및 과거사 진상규명위원회 조사 결과 등을 종합하면 각 표현이 적시한 사실들은 모두 허위임이 증명됐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전씨 측은 회고록이 5·18 단체들의 명칭을 직접 명시하지 않아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단체들의 활동 경과와 회고록 서술방식을 볼 때 일반 독자라면 각 표현이 5·18 단체들을 지목하는 것임을 알아차릴 수 있어 명예훼손의 피해자로 특정할 수 있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전씨 측은 “표현들이 허위라고 하더라도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다”고도 주장했으나, 대법원은 대부분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대법원은 전씨가 계엄군 헬기 사격 관련 허위 사실을 적시하고 모욕적 표현으로 조비오 신부를 경멸한 것이 그 조카인 조영대 신부의 추모 감정 등을 침해한 것으로 조 신부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원심 판단도 유지했다.
언론중재법에 따르면 사망한 사람의 인격권이 침해된 경우 그 배우자와 직계비속, 직계존속, 형제자매가 순위에 따라 유족으로서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정한다. 그런데 조영대 신부가 조비오 신부의 직계존비속이나 형제자매에 해당하지 않아 청구인 적격이 없다는 것이 전씨 측 주장이었다.
대법원은 이에 대해 가톨릭 신부가 통상적으로 직계비속을 둘 수 없는 점, 조영대 신부가 조비오 신부의 조카로 그 뒤를 이어 가톨릭 신부가 돼 함께 봉직하고 직계혈족에 버금갈 정도로 밀접한 친분을 형성해온 점 등을 들어 청구권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어떤 표현이 사망한 사람에 대해 허위 사실 적시나 모욕적·경멸적인 인신공격에 해당해 명예를 훼손하거나 인격권을 침해한 경우 민법상 손해배상청구 등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은 해당 조항에 규정된 유족으로 한정되지 않는다는 점과 그 구체적인 판단 기준에 관한 법리를 최초로 설시했다”고 밝혔다.
전씨는 별도의 형사 재판에서는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1심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의 유죄를 선고받았고, 항소심은 피고인의 사망에 따른 공소기각 결정으로 종료됐다.
김정화 기자 cle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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