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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27 (금)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스피노자, 두보, 기차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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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향신문

    가끔 밥상을 지나 하늘로도 눈길을 던져야 한다. 절박한 공부를 할 때 스피노자의 <에티카>는 피할 수 없는 문헌이었다. 인간의 감정을 분석하고 벽돌처럼 벼려서 기하학적 질서로 배치한 책. 막상 펼치면 겨우 발목에 찰랑대는 내 깜냥으로는 도무지 난공불락이다. 그래도 관련 강의도 챙겨보고 해설서를 들추며 <에티카>의 세계를 기웃거린다.

    나는 아직 목숨의 바탕 위에 있으니 여기에 그때까지 머무른다. 사는 동안 그냥 사는 건 아니라서 눈앞의 풍경과 시간 앞의 사태와 엮여 들어간다. 어떤 종교는 전지전능한 신(神)이 세계를 창조했다 하고 또 어떤 철학은 인간의 필요에 따라 신을 요청하였다고도 한다. 어떤 경우든 신은 세계의 바깥에 초월해 있어 그곳으로 가는 길은 칼같이 차단되어 있다. 기도로 단련해도 죽음을 지불하고서야 도달할 수 있다.

    스피노자는 그게 아니란다. 우리가 신 안에 있는 게 아니라 신도 우리 안에 함께 있다는 것. 저기 자연이 곧 신이며, 사람은 죄 자연이 잠깐 이곳으로 파견한 존재인바 기적이나 우연에 기대지 말고 본성에 따라 그 지복을 누리라는 것. 우리는 이 우주와 이미 완벽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

    인간 정신의 총화인 한시도 도저하기 이를 데 없는 세계다. 철학이 명제로 세계를 묶는다면, 문학은 언어로 그 결을 다시 꿰는 일. 이백과 쌍벽을 이루는 두보는 세공하듯 한자를 고르고 골라 시의 기하학처럼 작품을 완성했다. 그러고도 어불경인사불휴(語不驚人死不休·내 글이 사람을 놀라게 하지 못하면 죽어서도 무덤 밖으로 뛰쳐나오리)라는 경천동지할 문장으로 이쪽과 저쪽을 끈끈하게 연결하였다.

    설날 연휴. 낮에는 저쪽의 둘레와 발바닥을 맞대보는 산책, 밤에는 한 벌목꾼의 일생을 다룬 영화 <기차의 꿈>을 보았다. 마지막 장면. 생의 절반을 고독으로 채운 주인공은 경비행기를 타고 그간 디뎠던 곳을 하늘의 시선으로 내려다본다.

    그리고 이런 내레이션. “(그는) 이 세상에 왔을 때처럼 고요하게 잠자리에서 생을 마쳤다. (……) 그 봄날 어디가 위인지 아래인지 감각이 사라졌던 그때 마침내 모든 것과 연결되었음을 느꼈다.” 아, 연결! 나는 연결이라는 저 단어에 확, 연결되면서 번개처럼 세 사람을 삼각형으로 그려보았다.

    이갑수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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