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2.27 (금)

    [시론]‘민주시민교육’은 경험이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민주주의는 제도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시민이 공적 사안을 이해하고 참여할 때 비로소 살아 움직인다. 최근 탄핵 국면에서 시민들이 헌법적 가치를 지켜낸 경험은 민주주의의 위기가 제도보다 시민의 판단과 행동에 달려 있음을 보여주었다. 민주시민교육 강화도 학생들이 ‘관전자’가 아니라 ‘판단하는 주체’로 성장하도록 돕는 과제다. 그러나 선언만으로 역량이 길러지진 않는다. 핵심은 민주주의의 현재를 학생의 판단과 참여 경험으로 어떻게 연결하느냐에 있으며, 이런 성찰 없이 해법부터 제시하는 접근은 민주시민교육의 핵심을 놓칠 위험이 크다.

    이러한 위험은 국가교육위원회 민주시민교육특위와 교육부 학교시민교육자문위 구성에서도 드러난다. 도덕·윤리 전공 비중이 높은 것은 정치와 민주주의를 교실의 경험으로 조직해온 시민교육 전문성이 중심에 놓여 있는지 묻게 한다.

    민주시민교육의 핵심은 학생들이 현실의 정치·사회 문제를 이해하고, 갈등 속에서 판단하며 토론하는 능력을 기르는 데 있다. 그러나 현재의 구성은 정치와 민주주의를 교실의 경험으로 조직해온 시민교육의 전문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국가가 민주시민교육을 판단과 참여의 교육이 아니라 태도나 품성의 교육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게 한다.

    이 문제의식은 중학교 근현대사 시수 확대 및 고등학교 역사 선택과목 신설 논의에서도 반복된다. 먼저 중학교 근현대사 시수 확대는 신중해야 한다. 특정 영역 시수 확대는 교육과정 전체의 시수 배분과 학교 자율시간 운영에 영향을 미치는 편제 조정이므로, 사회적 합의가 필수다. 이는 학교의 자율적 운영 공간을 축소하고, 민주시민교육의 중핵인 정치·헌법·민주주의 학습을 약화시킬 수 있다. 고등학교 근현대사 선택과목 신설 역시 의문이다. 불과 얼마 전 시민의 판단과 참여로 민주주의의 위기를 넘긴 경험이 생생한 지금, 이러한 경험을 학생들에게 민주주의를 직접 판단하고 토론해볼 학습의 기회로 삼아야 할 때, 논쟁적 쟁점을 직접 다루기 어려운 근현대사 내용을 선택과목으로 분리하는 방식이 학생들에게 시급하고 본질적인 민주시민교육의 해법인지 되묻게 된다. 이미 초중고 전 과정에서 한국사는 필수과목으로 민주시민교육의 자원이 되어왔다. 그럼에도 근현대사 비중 문제를 선택과목 신설로 대응하려는 접근은 민주시민교육을 교육과정 전체의 구조 속에서 다루기보다 특정 영역의 확장으로 우회하려는 인상을 준다. 역사비평 과목 구상은 같은 맥락에서 재검토가 요구된다.

    오늘날 학생들이 마주하는 공적 사안은 정치적 주장과 사회적 갈등, 사실과 평가가 뒤섞인 채 제시되며, 학교가 이를 공적으로 논쟁하고 성찰하는 장이 되지 못할 경우, 학생들은 오히려 미디어 등 다른 경로를 통해 편향된 정보에 노출될 위험이 커진다. 지금 필요한 것은 과거에 대한 학습을 넘어 현실의 정치와 민주주의를 실제 삶의 문제로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는 시민의 역량이다. 민주시민교육 강화가 목표라면 정치·헌법·민주주의와 직결된 학습 경험 보장이 우선이다.

    도덕·윤리 중심의 논의 구조와 역사 시수 확대 및 선택과목 신설은 서로 다른 대응처럼 보이지만, 학생들이 ‘지금 여기의 민주주의’를 직접 이해하고 판단해야 할 핵심을 놓치고 있다는 점에서 맞닿아 있다. 이는 민주시민교육을 학생의 현재 삶과 분리된 지식이나 태도 교육으로 축소할 위험을 안고 있다. 민주시민교육의 본질은 학생이 일상에서 마주하는 정치·사회적 갈등을 외면하지 않고, 그 의미를 따져 묻고 토론하며 스스로 판단하도록 돕는 데 있다. 개인의 품성 형성이나 과거에 대한 학습을 넘어, 이런 경험이 반복될 때 민주주의를 지켜줄 진짜 시민이 길러진다. 결국 이는 공교육이 민주주의의 핵심 쟁점을 피해 갈 것인지, 아니면 학생이 민주주의의 현재를 주체적으로 마주하게 할 것인지의 문제다.

    경향신문

    은지용 서울대 사회교육과 교수


    은지용 서울대 사회교육과 교수

    ▶ 매일 라이브 경향티비, 재밌고 효과빠른 시사 소화제!
    ▶ 더보기|이 뉴스,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 점선면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