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주말]
[김두규의 國運風水]
전쟁 상흔 달래던 위로에서
불안 숙주 삼는 비즈니스로
서울의 점집들. 시대의 불안 속에서 운명과 사주가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 잡았다. /김두규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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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북한군의 남침은 치유할 수 없는 비극과 트라우마를 남겼다. 전장으로 간 아들의 전사 통지서가 날아들었고, 신랑의 행방은 묘연했다. 피란 중 헤어진 가족의 생사를 알 수 없었다. 통신과 행정안전망이 발달하지 못한 시절 국가는 무력했다. 용한 점쟁이와 사주 잘 보는 이를 찾았다. 전쟁은 무속과 사주 시장을 키웠다. 죽은 자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그리고 아직 돌아오지 않는 이의 귀환을 비는 굿도 있었고 점집도 있었다. 굿과 점은 가정과 마을 공동체의 의례였고, 실존의 불안을 달래는 기제였다. 그것은 문화였고, 때로는 위로였다. 이때 ‘운명’이란 단어는 슬픔과 절망에 대한 위로의 언어가 될 수 있었다.
1960년대,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전국에 많은 고속도로와 산업단지를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묘가 이장됐다. 흥망성쇠가 조상 묏자리에 있다고 믿었던 그 시절, 이장은 집안의 중차대한 사건이었다. 해방 이후 뒷골목으로 밀려난 풍수사들이 호황을 누렸다. 풍수 수요가 늘어나자 무속인과 사주 술사까지 ‘업종 변경’을 하거나 ‘겸업’을 했다.
1970년대 산업화로 자수성가 기업인과 신흥 부자들이 등장했다. 뜻밖의 부의 축적은 늘 불안을 동반했다. 이때 사주·무속·풍수·관상 등은 사업 판단과 확신을 위한 참고 자료가 됐다. 1980년대는 또 다른 불안의 시대였다. 대학 정원은 제한돼 있었고, 수험생은 넘쳐났다. 자녀가 어느 대학에 지원할지 묻고자 점집을 찾는 엄마들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그 당시 아파트 분양도 마찬가지였다. 아파트 당첨은 복권 당첨이었다. ‘문서 잡는 운’을 알기 위해 점집을 찾았다. 입시와 부동산은 ‘운명’을 일상적 상품과 소비 대상으로 만들었다. 사주와 무속에 대한 수요가 많아지자 이제 수요가 뜸해진 풍수사들이 다시 ‘업종 전환’을 하거나 ‘겸업’ 간판을 내걸었다.
1990년대 말 IMF 외환위기는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다. 하루아침에 회사가 문을 닫고, 가장은 직장을 잃었다. 평생 모은 집이 경매로 넘어갔다. 정직과 성실함으로 설명되지 않았다. 경제 위기는 사주와 무속의 또 다른 전성기를 만들었다.
지금 대한민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과거 왕조시대 지식인(특히 유학자)들은 도덕적 수양을 강조했지만, 공무원 선발[과거·科擧] 인원이 제한된 상황에서 모두가 취직할 수는 없었다. 그 당시에도 지식인들의 실업은 심각한 사회 문제였다. 어렵사리 관직을 얻더라도 뜻밖의 사화(士禍)·필화(筆禍)·정변으로 유배 가고 죽임을 당했다. 도덕적 수양으로 설명되지 않는 결과 앞에서 그들 역시 사주와 풍수를 통해 ‘운명’에 수긍했다. 운명은 개인이 타고날 때 부여받은 것이 아니라 사회 구조가 빚어낸 결과물이다. 지식인조차 사주·풍수·관상·무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충분히 위로가 될 수 있었고, 체념을 배울 수 있었고, 언젠가는 다시 때가 오리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최근 디즈니플러스가 ‘운명전쟁49’를 공개했다. 신점·사주·타로·관상 등 다양한 술사 49명이 모여 ‘운명을 해석하고 맞히는 능력’을 겨루는 서바이벌 예능이다. 제작진은 그들을 서로 경쟁시키며 “누가 더 정확히 맞히는가”로 예능을 만들었다. 단언한다. 맞힐 수 없다! 다만 찍을 뿐이다. 소 뒷걸음치다가 쥐 잡는 것이다. 운명이 하나의 콘텐츠가 됐고, 실존의 불안은 수익 모델이 됐다. 그 가운데 순직 소방관 사망을 다루는 장면까지 등장했다. 죽음은 원래 조심스럽게 다뤄야 할 애도와 추모의 영역이다. 그런데 이제 죽음조차 예능의 소재가 되고, 상품이 됐다.
‘운명 산업’의 가장 큰 특징은 인간의 불안과 궁금증을 숙주로 삼는다는 점이다. 이제 그것은 개인과 사회를 바꿔가고 있다. 개인의 좌절도 사회의 불합리도 모두 타고난 사주팔자나 돌아가신 조상의 영혼 탓으로 환원시킨다. 이때 운명은 위로가 아니라, 맑은 날씨를 가리는 검은 구름과 물안개가 된다. 지금의 ‘운명 산업’은 실존 개개인의 불안을 자본으로 바꾸는 구조적 악이다. 그 속에서 가장 먼저 상처받는 사람은 정신적·사회적 약자다. 운명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믿는 사회는 ‘불행한 의식(unglückliches Bewußtsein)’에 지배당한다. 불행한 의식은 개인과 사회를 불행하게 만든다.
선택의 문제이다. 운명을 자본에 맡길 것인가, 아니면 인문학의 영역으로 되돌릴 것인가? 스위스 정신의학자 융(C. G. Jung)은 “내면의 상황이 의식화되지 않을 때, 그것은 밖에서 ‘운명(Schicksal)’으로 드러난다”고 했다(‘Aion’, 1950). 의식화를 통해야 주체적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김두규 전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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