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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2.28 (토)

    성찰하는 재판, 존중받는 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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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튼, 주말]

    [김황식의 풍경이 있는 세상]

    조선일보

    일러스트=유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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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에 나오는 엘로힘은 하나님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러나 엘로힘이 재판관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이처럼 엘로힘이라는 말이 하나님과 재판관을 모두 가리키는 것으로 쓰이는 것은, 고대 이스라엘에서 재판은 원래 하나님께 속하는 일이지만 인간인 재판관이 하나님을 대신하여 재판한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즉, 재판관은 하나님의 권위를 위임받은 자라는 의미에서 엘로힘이라는 호칭이 사용되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인 재판관은 자신이 절대적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그 직책을 수행해야 하며, 불의한 재판관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시편 82편)입니다. 재판은 이처럼 신성하고 두렵고 떨리는 일입니다.

    이러한 종교적 관점을 떠나서 현대 국가의 재판관은 국가로부터 재판의 일을 위임받은 자로서 사회 공동체의 양심을 대표하는 자입니다. 설사 재판관이 인간적인 면에서나 그가 행한 재판에 흠이 있더라도 권위를 인정하여 그 판단을 일단 존중하고, 재판의 잘못은 3심 제도를 통해 바로잡고 최종심 판단에는 승복함으로써 사회 질서를 유지하자는 것이 현대 문명 사회 사법제도의 본뜻입니다. 현재로서는 이보다 더 나은 제도는 없습니다. 이를 흔들려는 시도는 어느 것이나 잘못입니다.

    재판관은 법정에서 법복을 입고 또 일부 국가에서는 가발까지 쓰고 재판합니다. 이는 장식적 꾸밈이 아닙니다. 재판의 성격과 재판관의 권위를 상징적으로 나타내기 위한 것입니다. 재판관은 자연인인 개인으로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법질서를 대표하여 재판하는 것이며, 재판관이 입은 법복은 재판관의 신상이나 취향 등 개인적 요소를 가린 재판의 공적 성격을 명백히 하기 위한 장치입니다. 또한, 재판관에게 설사 흠이 있더라도 법복으로 가려주어 흠이 없는 존재로 간주해 주자는 사회적 약속이기도 합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재판이나 법관에 대하여 과도하게 불신을 드러내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사건의 담당 법관이 누구인가를 알아보고, 그 사람의 성향·출신지 등을 따져 재판 결과를 예단하고, 판결이 나오면 불합리한 근거들을 들어 평가합니다. 심지어 그러한 일을 정치권이 주도하기도 합니다. 자신들의 이해에 맞추어 재판과 법관을 유도·조종하기 위한 방책으로도 보입니다. 참으로 부끄럽고 걱정스러운 일입니다. 이러한 사태에 이른 것에 법원이나 법관들에게 책임이 없는지 생각해 볼 필요도 있지만, 우리 사회가 과도하게 분화·대립된 결과가 법원에까지 영향을 주고 있는 탓입니다. 이런 때일수록 법원과 법관은 흔들리지 않고 제 갈 길을 가야 합니다. 그 길은 법관이 혼자 보고 혼자 느끼는 주관적 양심의 길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함께 보고 함께 느끼는 객관적 양심의 길이어야 합니다.

    헌법은 법관에게 법률과 양심에 따라 재판할 것을 요구합니다. 이 경우의 양심은 바로 개인의 소신이 아니라 공동선을 추구하는 사회 공동체의 객관적·이성적 합의를 의미합니다. 법관이 따라야 할 ‘양심’을 뜻하는 ‘conscience’라는 말이 ‘함께’라는 뜻의 ‘con’과 ‘본다’ ‘지식’이라는 뜻의 ‘scientia’가 합쳐져 만들어진 단어임에서도 이를 알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독일 법조계에는 “자기 신념에 어긋나는 설교를 하는 성직자는 존경할 수 없지만, 자기 소신에 어긋나는 판결을 하는 법관은 존경받아 마땅하다”는 신조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성직자가 자기 양심에 어긋나는 설교를 하는 것은 명백한 위선이지만, 법관은 자기 소신이 공동체적 양심에 어긋날 때 개인적 소신을 꺾고 공동체적 양심에 따라 재판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양심을 법관 개개인의 소신에 따른 것으로 본다면 같은 사건이라도 법관이 누구냐에 따라 구구해질 것입니다. 예컨대 진보 성향이나 보수 성향이냐에 따라 재판 결과가 달라진다면 재판에 대한 사회적 불신은 커져 사회는 불안정해질 것입니다. 이를 막기 위하여 법관 개개인은 내가 진정으로 주관적 감정을 배제하고 사회 공동체를 대표하는 위치에서 재판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성찰해야 할 것이고, 담당 법관보다 사건 내용을 잘 알 수 없는 사람들은 재판을 과도하게 비판하는 일은 삼가야 할 것입니다.

    [김황식 전 국무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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