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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06 (금)

    [메아리] 무지의 장막 앞에 선 한국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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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부매일

    모 기관 신입사원 선발 면접관이 된 적이 있다.

    출신교와 지역, 나이 등 몇몇 개인 정보가 적혀있지 않았다.

    면접관들은 지원자의 인적 사항을 물어볼 수 없었고, 지원자는 이름, 수험 번호, 출신학교, 부모 직업 등 배경 정보를 언급할 수 없었다.

    '블라인드 면접(Blind interview)' 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생경하기는 어쩔 수 없었다.

    이는 '무지의 장막(Veil of ignorance)'에서 유래한 것으로 생각된다.

    '사회 구성원들이 자신의 사회적 지위, 재산, 능력, 성별, 인종 등 특정한 사실을 모르는 상태를 가정하여 공정하고 합리적인 정의(正義)의 원칙을 끌어내기 위한' 존 롤스의 사고 실험이다.

    정의로운 원칙은 '무지의 조건'에서 비롯된다는 얘기다.

    우리 정치가 블라인드 면접과 무지의 장막처럼 실행되면 얼마나 좋을까? 현재로선 희망 사항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정치의 풍경은 이 장막이 사라진 지 오래다.

    이미 '내편 네편'이 분명하게 갈라져 있어 지지 여부를 너무 잘 안다.

    절대 '상대의 처지에서 생각할 상황'이 아니다.

    역지사지(易地思之)가 애초에 물 건너갔다.

    정치권은 각각 유권자가 어떤 집단에 속해 있고,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다.

    이른바 맞춤형 구호와 공약을 쏟아낸다.

    청소년층은 취업 지원과 주거 보조, 노년층은 연금 인상, 자영업자는 세제 감면과 지원 등 말이다.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으로 둔갑하는 극단적 포플리즘화 한다.

    국가 자산의 파이가 늘어나지 않는 상황에서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 식이라는 점에서다.

    이해충돌로 모두가 공정한 혜택을 받는 '정의'는 분명 아니다.

    여기가 무지의 장막이 드리워야 하는 지점이다.

    무지의 장막 뒤에서 청소년층, 노년층, 자영업자에 대한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

    무지의 장막 뒤라면 내가 여당일지, 야당일지 알 수 없으므로 합리적 가치 중립에 설 수 있다.

    우리 정치가 지나치게 양극화된 상황에서 '무지의 장막'을 설치함은 물론 그것도 높으면 높을수록 좋다.

    무지의 장막 뒤에서 나(소속 정당)를 잊고 남(타 정당)의 처지를 고려하는 순간 우리 정치는 비로소 윤리의 숨결을 되찾을 수 있다.

    물론 이런 사고 실험이 쉽지 않지만, 정치가 '정의'를 향해 나아가는 최소한의 길이다.

    '모르는 게 약'이라는 역설을 우리 정치가 배워야 할 덕목이지 않을까? 김동우 K-메디치연구소 고문 정치,유권자,지방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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