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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07 (토)

    [이갑수의 일생의 일상]서라벌 계곡의 봄꽃 옆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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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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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 아니 서라벌은 이름만으로도 현묘하다. 저물 무렵 기차에서 내리니 역광장의 무덤이 나를 쳐다본다. 무슨 말을 하려는가, ‘경주 방내리고분군 1호 돌방무덤’. 부산에서 온 꽃동무들과 만나 시간이 남아 김유신 묘에 들렀다가 숙소로 가기로 했다.

    소슬한 입구에 ‘화랑도와 세속오계’ 안내판이 있다. 신라 진평왕 때의 원광법사는 수나라에서 불교를 공부하고 돌아와 ‘가슬갑사’라는 절에 머물렀는데 어느 날 귀산과 추항이라는 두 젊은이가 찾아왔다. “법사님, 올바르게 살아가기 위해 지켜야 할 법도를 가르쳐 주십시오.” 들은 척도 아니하고 냇가에서 발만 씻던 원광법사가 한마디한다. “그냥 바르게 살면 되지 방법이 따로 있는가?”

    봄꽃 찾아 향한 곳은 안강읍 삼기산의 금곡사 계곡. 어제 만난 원광법사의 부도탑이 있는 곳이다. 세상의 모든 산마다 그럴 확률이 높지만 특히 경주 근처로 꽃산행 오면 꼭 경험하는 바다. 골짜기가 안내하는 대로 가다가 어느 굽이에서 목적한 꽃을 찾아 흩어지면 나는 ‘나’라는 열린 괄호를 닫으려 저 모르는 계곡이 다하는 곳까지 혼자라도 쭉 계속 걸어가고 싶지만, 간이 작은 나는 발병도 아니 났는데도 그저 몇 발짝 못 간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기만 하는데, 그럴 때면 꼭 저 골에서 무슨 기척이 들리는 것이라서, 처음엔 고대로부터의 기별인가 하다가 그것은 점점 가까이 오다가 급기야 그이는 점점 자라서 무덤 같은 머리만 보이다가 이내 사람 꼴이 되더니 두 팔을 흔들며 가까이에 와서는 신라인에서 바로 경상도 사람으로 변신하는 것이었다. 오늘은 화랑의 흉내라도 내볼까. 흥을 깰까 말까 망설이고 있는데 그이가 먼저 반쯤 말을 놓으며 사투리를 툭 꺼냈다. “어디서 왔능교. 몸살끼가 있어 안 되겠다 싶어 나왔는데 아따 너무 돌아댕깃뿟네. 여서 쪼깨만 가면 부도탑이라요.”

    여기는 어디인가. 대낮에도 오리무중인 서라벌 아닌가. 뒹구는 돌도 식은 별로 보이는 곳. 개울물에 제 낯짝 비춰보는 바위 옆에 변산바람꽃, 너도바람꽃, 복수초가 화들짝 피어 있다. 피는 데에 무슨 기예가 필요할까. 꽃에게 물어보면 답은 몇해 전 김연아 선수가 이미 해두었다. “그냥 피는 거지. 생각은 무슨 생각. 아, 그냥 피는 거지.”

    이갑수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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