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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07 (토)

    “전기차 충전기 바꿔줄게” 로비에… 멀쩡한 기계 뜯는 아파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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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치 업체들, 정부 보조금 타려

    “최신형 기기로 무료 교체" 접근

    공사 따내려 쓴 영업 비용 등은

    충전요금 올려 충당… 주민 피해

    조선일보

    지난 4일 찾은 서울 성동구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 신규 전기차 충전기 설치 공사를 위한 자재들이 주차장 한켠에 놓여있다./한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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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 중구의 1200여 세대 A 아파트는 작년 12월 지하 주차장에 설치된 전기차 충전기 47대를 교체했다. 2024년 12월 아파트 준공 당시 설치돼 1년 3개월밖에 안 됐는데도 전부 철거하고 다른 업체 충전기로 바꾼 것이다. 설치 직후 새 업체는 완속 충전 요금을 1kWh당 295원에서 324.4원으로 10% 인상했다.

    서울 강동구의 한 대단지 아파트도 지난달 설 연휴 기간 충전기 300여 대를 다른 업체 충전기로 바꿨다. 새 업체는 충전 가격을 기존 1kWh당 160원에서 6개월 뒤부터는 배에 가까운 297원으로 올린다고 공지했다. 주민 이모(41)씨는 “멀쩡한 기계를 바꾼 것도 이해가 안 되지만 그 부담을 입주민에게 전가하는 건 대놓고 업체 배불리기 하겠다는 것 아니냐”고 했다.

    전국 아파트 단지들이 ‘전기차 충전기 교체’로 몸살을 앓고 있다. 업체들이 경쟁 끝에 계약을 따낸 뒤 잇따라 충전 요금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아파트 단지에선 주민 모르게 입주자대표회의가 충전기 교체를 결정해 ‘업체에 뒷돈을 받은 것 아니냐’는 의혹도 불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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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김현국


    멀쩡한 충전기를 뜯어내고 새 기기를 설치하는 ‘자원 낭비’가 전국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벌어지는 건 업체 간 경쟁이 치열해진 탓이다. 지난 2024년 8월 인천 청라 지하 주차장에서 발생한 벤츠 전기차 화재로 지난해 11월부터 업체들의 책임보험 가입, 3년 주기 안전 점검 등이 의무화되면서 관리 부담이 늘었다. 업체 수가 늘면서 영업비 지출도 늘고 있다. 수익성이 악화된 업체들은 아파트와 7~10년 장기 계약을 맺은 뒤 충전 단가를 올리는 방식으로 활로를 찾고 있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충전기 설치 업체에 공사비의 절반(최대 220만원)까지 보조금을 지원한다. 서울시 등 각 지방자치단체도 별도 예산으로 충전기 한 대당 25만~60만원의 추가 보조금을 지급한다. 노후 장비를 교체하라는 취지다. 그러나 일부 업체는 보조금을 경쟁사 물량을 뺏기 위한 실탄으로 활용하고 있다. 서울 지역의 한 아파트 입대의 관계자는 “최근 여러 업체가 ‘단돈 1원도 안 들이고 최신형으로 바꿔주겠다’며 접근해 온다”고 했다.

    기후부 관계자는 “무분별한 교체로 보조금이 남용되지 않도록 사후 점검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본지가 전국 아파트 10곳을 조사해 봤더니 충전기 성능에 문제가 없는데도 교체하거나 설치한 지 3년이 안 된 충전기를 교체한 경우가 4곳이었다. 전기차 충전 요금은 업체가 원가와 운영비 등을 반영해 책정한 뒤 정부에 보고만 하면 되는 구조다. 그렇다 보니 시장 선점을 위해 출혈 경쟁을 벌인 업체들은 안전 관리 비용 등을 앞세우면서 충전 요금을 끌어올리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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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일 찾은 서울 성동구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 한 전기차 차량이 새로 설치된 충전기를 이용해 충전 중이다./한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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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전기 교체를 둘러싸고 주민 간 갈등도 벌어지고 있다. 서울 성동구의 한 대형 아파트는 지난달 전기 충전기 100여 개를 교체했는데, 주민들이 사전 공지를 충분히 받지 못해 논란이 불거졌다. 입주민 인터넷 카페에선 ‘리베이트 의혹을 해명하라’ ‘계약서 내용을 공개하라’는 게시물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이 아파트 관리 소장은 “사익을 추구한 적이 없다”고 해명했지만 결국 사퇴했다.

    기후부에 따르면 전국의 전기차 충전소 1곳당 전기차 대수를 뜻하는 차충비는 올해 1월 기준 1.9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10.0)의 20% 수준이다. 그만큼 개별 충전소의 가동률이 낮다는 의미다. 이호근 대덕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충전기를 설치하면 무조건 보조금을 지급하는 현행 방식이 아니라 충전 이용률에 따라 지원금을 주는 ‘사후 인센티브’ 제도로 바꿔야 업체들이 요금을 낮추고 서비스 경쟁을 할 것”이라고 했다.

    그간 업체들이 출혈 경쟁을 하면서 충전 요금을 앞다퉈 낮춰왔던 만큼 ‘요금 현실화’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정부가 전기차 확대를 위해 각종 비용을 부담해 왔다”며 “전기차 보급이 점차 늘면 그에 맞춰 혜택을 조금씩 줄여 가야 한다”고 했다.

    [한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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