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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09 (월)

    천연기념물된 <더 글로리>의 청주 압각수···도박에 음주 흡연까지 ‘몸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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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향신문

    충북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2가 중앙공원에서 지난 6일 노인들이 모여 윷놀이를 하고 있다. 이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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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6일 오후 충북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2가 중앙공원. 아름드리 은행나무인 압각수 주변으로 노인들이 삼삼오오 몰려들었다. 이내 공원을 가득 채우는 ‘잘그락’ 소리와 함께 윷판이 벌어졌다. 윷가락이 바닥에 뒹굴 때마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돈이 오갔다. 돈을 두고 실랑이를 벌이거나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도 보였다.

    음주와 흡연이 금지된 공원에서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는 모습도 심심찮게 목격됐다. 한 노인은 압각수 위에 올라가 나무에 기대 휴식을 취하기도 했다. 압각수 앞 바닥에는 검은 점 여러개가 윷놀이 판처럼 찍혀 있었다.

    천연기념물인 충북 청주 중앙공원의 ‘청주 압각수’가 윷놀이 도박과 음주·흡연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8일 국가유산청에 따르면 압각수는 지난달 12일 국가지정 자연유산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수령 900년으로 추정되는 이 은행나무는 <동국여지승람> 등 여러 문헌에 등장하는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가치에 준하는 보호를 받아야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나무 주변에서 윷놀이를 빙자한 도박과 음주·흡연 행위가 수십 년째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경찰 집계를 보면 지난해 이 일대에서 접수된 112 신고는 총 283건으로, 이 중 도박·폭력 등 범죄 신고가 181건(64%)에 달한다. 행패·소란 등 질서 유지 관련 신고도 60건이었다. 지난해 5월 중앙공원 일대에서 상습도박을 벌인 70대 A씨 등 5명이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천연기념물 등재가 확정된 후인 올 1~2월에도 벌써 42건의 신고가 112에 접수됐다.

    경향신문

    충북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2가 중앙공원 압각수 앞 바닥에 윷놀이 판으로 보이는 검은점 여러개가 찍혀 있다. 이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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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압각수와 중앙공원은 넷플릭스의 인기 드라마인 <더 글로리>의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관광지로도 각광받고 있다. 문화관광해설사 A씨(70)는 “중국과 싱가포르, 일본, 대만 등 외국인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지만 무질서 행위로 안내하기가 민망할 때가 많다”며 “관광객들이 눈살을 찌푸리며 피하는 일도 있다”고 말했다.

    압각수도 훼손 위험에 노출돼 있다. 어른 무릎 높이의 낮은 울타리는 시민들의 접근을 막기에 역부족이라는 게 청주시의 설명이다.

    청주시 관계자는 “일부 노인들이 보호구역 안으로 들어가 나무 밑동에 기대거나 올라가는 행위가 반복되면서 안전사고 위험은 물론 나무 생육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올해 예산을 세워 울타리를 높이는 공사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무료 급식이 열리는 중앙공원은 시내 중심에 있어 접근성이 좋다. 경제적으로 취약한 노년층이 모여 소일거리 삼는 윷놀이가 곧잘 도박으로 번진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현재 도박은 경찰, 음주·흡연은 보건소, 상행위는 청주시 공원관리과 등이 맡고 있어 체계적인 대응이 어렵다.

    백상민 청주시 공원관리과 주무관은 “이틀에 한 번꼴로 민원이 들어와 주 3~5회 중앙공원에 나가고 있지만 부서마다 권한이 달라 대응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김현진 청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홀로 사는 어르신들이 외로움을 해소하기 위해 중앙공원에 찾아오면서 벌어지는 일”이라며 “청주시 등 지역사회가 장기적인 시각을 갖고 노인 놀이 문화를 개선하고 집 근처에서의 돌봄·여가 체계를 구축하는 등 구조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삭 기자 isak84@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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