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움직임이 가능해진 것은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겼기 때문일 테다. 하지만 그 믿음은 홀로 오롯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내가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를 격려하고 인정해 준 사람들이 있었고, 지난한 성장의 시간을 함께 버텨준 선후배와 동료, 조직과 공동체가 있었다. 그런 지지가 있었기에 스스로를 믿고 한 발을 내딛을 수 있었다. 그렇게 조금씩 발을 내딛다 보면, 우리는 비로소 스스로 서는 법을 배운다.
‘일의 미래’를 이야기하며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을 만나고 연구하다 보니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하게 됐다. 지금 자신의 길을 걷는 사람들일수록, 그 길이 결코 혼자만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며칠 전 만난 20년차 디자이너는 독립 초기 몇년이 가장 두려웠다고 말했다. “늘 있던 선배가 더 이상 없으니까 작업을 어디서 끝내야 할지 판단하는 것조차 무섭더라고요.” 그가 이후에도 자신의 길을 헤쳐갈 수 있었던 건, 결국 앞선 조직에서의 경험이 쌓아준 자신감과 고객의 믿음, 새로 만난 동료들의 지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경력자만 뽑는 시대에, 신입들은 대체 어디서 경력을 쌓느냐’는 질문은 인공지능(AI) 이전에도 있었다. 다만 이번에는 패러다임이 달라졌다. AI가 특정 직업이나 직무를 대체하는 것에 모두가 주목할 때, 사실 가장 먼저 사라진 것은 신입의 자리였다. 왜 아무것도 모르는 젊은이를 뽑아 가르치며 키워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 자체가 노골적으로 제기되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그나마 수련 기간 동안 맡기던 단순한 업무들이 있었고, 그 일을 하며 신입들은 조금이라도 생산성에 기여하며 배우고 성장했다. 그러나 이제 그 일들은 AI가 훨씬 더 빠르고 정확하게 해낸다. 사람을 키울 명분이 사라졌다.
그렇다면 AI 에이전트와 함께 문제를 푸는 솔로프리너(solopreneur)의 길이 대안이 될 수 있을까. 그 화려함의 이면에는 사실 동료도 피드백도 없이 무한경쟁 시장에 놓인 개인들이 있다. 노동시장에 처음 진입하는 이들뿐 아니라 이미 자립한 이들조차도 나 홀로 생산하고, 운 좋게 선택받기를 기대하는 경쟁에 놓인다. 피드백 없이 쉽사리 소멸하는 생산물을 지속적으로 마주하며, 우리는 스스로 확신을 갖기까지 훨씬 더 오랜 시간을 보내야 할지도 모른다. 네트워크 같은 사회적 뿌리조차 없는 노동시장 진입층에게는, 자립으로 향하는 그 시작점이 더더욱 요원할 것이다.
AI 시대의 문제는 일자리 감소보다도, 미숙함을 품어내던 사회적 환대가 사라지고 있다는 데 있지 않을까. 옆에 자리를 조금 내어주고, 함께 시간을 쓰며 가르치고 키우는 공간이 있어야 사회 속에서 막 자라나기 시작한 작은 새싹들이 자신감을 얻고 나무로 성장할 수 있다. 그런 기반이 없다면, 푸르른 숲도 생겨날 수 없다.
유재연 국가AI전략위원회 사회분과장 |
유재연 국가AI전략위원회 사회분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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