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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13 (금)

    [김경식의 이세계 ESG]대한상의 사태, 경제단체의 자기 진화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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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향신문

    지난 2월3일 대한상의는 영국 이민 컨설팅사인 헨리앤드파트너스의 보고서를 인용해 “한국의 고액 자산가 순유출이 2025년 2400명으로 급증해 세계 4위”라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언론 보도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자료의 신빙성에 의혹이 제기됐다. 급기야 대통령은 2월7일 “고의적인 가짜뉴스”라고 공개적으로 대한상의를 비판했다. 이에 상의는 곧 사과문을 발표했고 회장은 “임원진 전원의 재신임을 묻겠다”고 수습하는 상황까지 왔다.

    대한상의에서 왜 이런 일이 일어났고, 다른 경제단체는 자유로울 수 있는가? 이러한 의문에 답하기 위해 나의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원인과 대책을 논의하고자 한다.

    1997년 말 외환위기가 시작되기 전, 나는 한 30대 그룹 기조실 과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당시 정부는 연결재무제표와 결합재무제표 도입을 추진했다. 연결재무제표는 모회사의 출자회사 지분율을 기준으로 재무제표를 합산하는 제도이고, 결합재무제표는 동일 대주주(총수)가 지배하는 기업집단 전체를 합산하는 제도다.

    이러한 제도 도입이 필요했던 이유는 당시 재벌들이 모회사의 종잣돈으로 순환출자를 하고, 상호지급보증과 내부거래를 통해 계열사를 늘리는 방식으로 몸집(부실)을 키웠으나, 개별회사 재무제표만으로는 부실 실태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현 한국경제인협회) 등 경제단체는 극렬히 반대했다. 이유로 경쟁사에 경영정보가 노출된다는 명목을 내세웠지만, 실제로 가장 우려하던 것은 재벌 그룹 전체의 숨겨진 부채 규모와 내부거래가 공개된다는 것이었다.

    회원사 의존에 갇힌 구조적 한계

    이 와중에 동남아발 금융위기가 터졌고 결국 재벌의 과도한 차입 경영이 단초가 되어 외환위기를 초래했다. 결과적으로 30대 재벌 중 16개 재벌이 해체되었고 연결·결합재무제표는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도입됐다. 이후 결합재무제표는 국제회계기준(IFRS)과의 불일치, 지주회사제 도입 등으로 폐지되고 현재는 연결재무제표가 정착되었다. 뒤늦게라도 정착시킨 회계제도의 투명성이 오늘날 산업 발전을 뒷받침했고 세계적인 기업 조직을 여럿 탄생시키는 밑거름이 되었다.

    그러면 당시 전경련은 왜 그렇게 극렬히 반대를 했고, 30년이 지난 지금 대한상의는 왜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을 하게 되었는가? 경제 현안이 있을 때 통상 경제 6단체가 거론된다. 대한상의, 한국무역협회, 중소기업중앙회, 중견기업연합회는 관련 법률에 의해 설립된 단체이고, 전경련과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민법에 의해 설립된 사단법인이다.

    이들 6개 단체 운영은 모두 회원이 납부하는 회비로 이뤄진다. 그런데 회비 징수의 법적 근거가 없는 전경련과 경총은 대그룹 회원의 시혜성 회비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회비를 내는 주인의 요구사항을 대변해야 하는 숙명이 있다.

    대그룹 회원의 요구사항은 그룹별 우선순위가 다르고 시대가치와 상반되는 것이 많다는 게 경제단체 사무국의 고민이다. 상속, 노사, 내부거래, 지배구조, 중대재해, 탄소중립, 양극화 등 7대 현안은 그룹별 우선순위가 다르니 요구사항도 천차만별이다.

    한편 외환위기 이후 진화해온 시민운동은 대그룹의 일탈은 물론 일상에 대한 감시를 높이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와 2015년 파리협정으로 기업엔 더 엄격한 ESG 경영이 요구되고 있다. 또한 미디어와 SNS 수단은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시민단체 활동은 갈수록 다양화하고 국제연대도 높아지고 있다. 대그룹은 이러한 시대 변화에 대응해 ‘공개적 대응’은 경제단체에 요구하게 된다. 공개적 대응이란 공개적으로 우호적 여론을 조성하고 제도화하는 것이고 그 한 수단이 보도자료다.

    내가 근무했던 회사는 2000년 같은 철강회사인 인천제철에 합병되었다. 합병회사는 외환위기의 단초를 제공했던 한보철강을 인수하고 그곳에 일관제철소를 건설했다. 현대그룹 창업 회장이 그토록 염원했지만 경쟁사의 반대로 이루지 못했던 제철소였다. 2006년 제철소 기공식 때는 당시 대통령이 참석해 축사를 할 정도였지만, 경쟁사 회장은 한국철강협회 회장임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그만큼 견제와 어려움이 많았던 시기였다.

    사회적 가치 선도·경쟁력 높여야

    당시 나는 전경련과 많은 업무를 협업했다. 정부와 국회를 상대로 독점보다 경쟁 체제의 장점을 알리고 전기요금 합리화, 투자세액공제 연장, 할당관세 적용, 상계관세 및 불법 수입품 대응 등 산업경쟁력을 높이는 데 경제단체의 지원이 큰 힘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보여준 사무국 직원들의 조직에 대한 애정과 회원사를 향한 헌신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다시 현재로 돌아와, 대통령과 정부 관료가 대한상의의 책임을 추궁하고 회장이 임원들의 일괄 사표를 받는 사태가 벌어졌다. 대그룹 회원사들은 지출한 회비에 상응하는 대가를 경제단체에 요구하기 마련이다. 이번 대한상의 보도자료 사태도 이러한 요구에 부응하려다 억지스러운 주장과 데이터를 꿰맞춘 결과라 볼 수 있다.

    ESG 경영 실천 요구가 높아질수록 일부 그룹은 단체의 태생적 한계를 이용해 입맛에 맞는 실적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제는 대그룹 회원사들이 앞장서서 사회적 가치에 부합하는 ESG 경영을 실천해야 한다. 경제단체 또한 기업들보다 한발 앞서 ‘미래 가치를 제시하는 자기 진화’를 이루어야 할 절실한 시점이다.

    ‘보이지 않는 손’으로 잘 알려진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보다 17년 앞서 출간한 <도덕감정론>에서, 사회의 번영은 무한한 이기심이 아니라 ‘공평한 관찰자’의 시선에서 부끄럽지 않은 ‘정의에 의해 제어된 야심(野心)’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설파했다. 오늘날 기업에 요구되는 ESG 경영 또한 이러한 ‘공평한 관찰자’의 시선을 내면화하는 과정과 맞닿아 있다.

    경제단체가 이번 사건을 계기 삼아, 특정 회원사의 반ESG적 현안을 대변하는 대리인에서 벗어나 산업경쟁력을 높이고 사회적 가치를 선도하는 본연의 역할을 상기할 수 있기를 바란다.

    경향신문

    김경식 ESG ESG네트워크 대표


    김경식 ESG ESG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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