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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15 (일)

    암 투병 숨기고 핵무장 주장 후 별세한 이상희 전 국방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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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하원 기자의 외교·안보 막전막후 ]

    1년 전 본지 인터뷰서 “미국이 북핵 인정하며

    군축회담 추진하면 우리도 핵 무장 해야” 주장

    “국가안보는 죽고 사는 생존 문제”유언처럼 남겨

    연명 치료 거부하고 담담하게 남은 생애 정리

    이상희 전 국방부 장관의 부고를 받은 것은 지난 10일 점심 식사를 할 때였습니다. 이 장관의 측근인 김경덕 전 국방부 개혁실장(예비역 소장)의 전화번호가 제 휴대폰에 떴을 때 그의 별세를 직감했습니다. 악성 암으로 투병 중인 이 장관을 올해 들어 만나지 못한 것을 자책하며 장례식장을 다녀왔습니다.

    분당 서울대병원의 장례식장에서 이 장관을 기리는 이들을 만나고 귀가하면서 1년 전 그와 했던 인터뷰를 떠올렸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4년 만의 복귀를 앞두고 여러 우려가 나올 때였습니다. 이때 이 장관은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은 닉슨 대통령이 미 7사단을 철수시키고, 카터 대통령이 주한미군 철수를 추진하자 핵 능력을 갖춰야겠다고 판단했다. 이를 위기로만 보지 않고 기회로 삼았다”며 “트럼프에게 돈을 바치기보다 미군 철수를 감수하고 핵무장을 해야 한다”고 주장, 논쟁을 일으켰습니다. 전직 국방부 장관이 공개적으로 이같은 발언을 한 것은 처음이어서 파장이 클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인터뷰 후에야 그가 악성 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장관은 자신의 마지막 공개 발언이 된 본지 인터뷰를 통해 우리 사회에 직설적인 문제 제기를 한 셈이었습니다.

    “확장억제는 신기루…자력 방위 준비해야”

    이 장관의 이같은 발언을 처음 들은 것은 지난해 1월 9일이었습니다. 조선일보는 매년 이 장관이 깊숙이 관계해 온 한국국가전략연구원(KRINS), 미국의 브루킹스연구소와 함께 안보 콘퍼런스를 열어왔습니다. 14년째 이어지는 행사로 첫날은 공개 세션으로 진행되고, 둘째 날에는 비공개로 한국의 안보 현안을 종합적으로 논의하는 토론회가 열립니다.

    조선일보

    2024년 1월 8일 서울 플라자 호텔에서 열린 한국국가전략연구원 - 미국브루킹스연구소 국제회의에서 미국 신행정부 출범과 인ㆍ태 및 한반도에서의 한미 협력을 주제로 제1섹션이 진행되고 있다. 왼쪽부터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 앤드류 여 브루킹스연구소 한국석좌 , 김 숙 전 주유엔대사,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 이호령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이날 회의에 이어 9일 비공개 세션에서 이상희 전 국방부 장관이 트럼프 2기의 상황을 전제로 핵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운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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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초에 열리는 이 콘퍼런스는 한국 외교·안보 분야의 주요 전문가들이 참석할 정도로 비중있는 회의로 자리 잡았습니다. 청와대, 외교부, 국방부, 통일부의 핵심 인사들도 적지 않게 참석합니다. 제가 조선일보 외교안보 에디터 자격으로 매년 참여하는 여러 1.5트랙 행사 중에서도 가장 밀도 높은 토론이 이뤄지는 자리였습니다.

    지난해 회의 둘째 날 비공개 세션에서는 특히 긴장감이 높았습니다. 트럼프가 2024년 대선에서 다시 당선된 후 여러 우려가 나오는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상대로 이날 회의에선 대만 유사 사태가 발생할 경우 한국의 역할을 둘러싸고 참석자들 사이에서도 첨예한 의견 차이가 나타났습니다.

    당시 KRINS 명예이사장이었던 이 장관은 자신의 발언 차례가 되자 준비해 온 자료를 꺼내 읽으며 발언했습니다. “한국은 미국의 확장억제(핵우산)가 유사시 작동할 것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미국 없이도 한국의 미래 안전 보장 대책을 준비해야 한다. 트럼프 2기에 주한미군이 용병화되면, 주한미군 철수를 감수하더라도 핵무장을 해야 한다.”

    순간 회의장의 공기가 달라졌습니다. 대한민국 국방장관을 지낸 인사가 이런 주장을 밝히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었습니다. 비공개 회의라 하더라도 전직 장관들은 대개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발언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달랐습니다.

    그의 발언은 트럼프 2기 출범 가능성이 높아지던 시점과 맞물려 의미 있게 들렸습니다. 회의가 끝난 후, 이 장관에게 다가가 발언 배경 설명을 들으면서 그와 인터뷰를 해서 독자들에게 알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편집국으로 돌아와 선우정 당시 편집국장에게 보고, 지면을 확보했습니다.

    “용병화된 주한미군이 유사시 검을 든다는 보장이 없다”

    이 장관에게 정식으로 인터뷰를 요청해 그를 다시 만난 것은 지난해 1월 22일, 트럼프 취임 후 이틀 만이었습니다. 그는 인터뷰가 시작하자마자 트럼프의 취임 당일 발언을 꺼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취임 첫날 북한을 핵보유국이라고 지칭했다. 이것은 매우 심각한 신호다. 미국이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하며 군축 협상을 추진한다면 대한민국의 핵무장도 인정해야 한다.”

    이 장관은 트럼프의 발언이 매우 위험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미국은 자신들에게 위협이 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문제만 해결하는 군축 협상을 할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 되면 미국에는 위협이 사라지고 한국에는 핵 위협이 그대로 남는다.”

    (이 장관이 우려했던 상황은 한국에서 먼저 나타났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올해 1월 21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전제한 군축 협상 접근법을 공개적으로 제시했습니다. 이 대통령은 “1단계로 핵 활동 중단 협상을 하고 이후 군축 협상을 하자”고 밝혔습니다. 완전한 비핵화를 목표로 하는 기존 접근에서 현실적 대응으로 전환하겠다는 것이지만, 결국 북한이 가장 바라는 정책을 제안했다는 비판이 제기됐습니다.)

    이 장관은 미국의 확장억제가 완전한 안전 보장을 제공한다는 믿음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확장억제는 신기루일 수 있다. 미국의 능력은 인정하지만 유사시 행동 의지는 장담할 수 없다. 트럼프는 동맹을 거래로 보는 사람이다. 주한미군을 돈 받고 파견된 용병처럼 본다면 그들이 유사시 검을 들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

    그는 한국의 선택지를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핵 없는 상태에서 북한 위협에 끌려다니며 트럼프에게 돈을 바치기보다는 미군 철수를 감수하고 핵무장을 해야 한다. 장기적으로 미국 없이도 가능한 안보 체제를 준비해야 한다.”

    조선일보

    이상희 전 국방장관이 악성 암과 투병 중이던 지난해1월 마지막 공개 발언이 된 본지 인터뷰에서 주장한 3단계 한국 핵 무장론.


    3단계 한국 핵 무장론... NO TEST, NO CLAIM, NO SANCTION

    제가 이날 인터뷰에서 놀란 것은 그가 구체적인 방법까지 제시한 겁니다. 한국은 미국의 묵인하에 핵확산금지조약(NPT) 10조의 비상사태 규정에 따라 NPT를 탈퇴해야 한다. 한미원자력 협정 폐기로 재처리 및 우라늄 농축 권한 확보 후, 핵실험 안 하고 핵보유국이 된 이스라엘 모델을 채택하면 된다. 이때 3NO(NO TEST, NO CLAIM, NO SANCTION) 정책이 필요하다. 이는 ①핵실험 하지 않고②핵무장 밝히지 않고③제재받지 않는다는 의미다.”

    인터뷰 후, 약 보름이 지났을 때 이 장관이 점심 식사를 제안해서 그의 측근 몇 명과 함께 만났습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자신이 투병 중인 사실을 밝혔습니다. “2023년 전립선암 판정받았다. 악성이라고 하더라. 의사에게 내 여명(餘命)이 얼마인지를 물었다. 2~4년이라고 들었다. 그러면 앞으로 최대 2년 남았다는 것인데 마음이 편하다. 나는 더 이상 치료받지 않는다. 남은 시간을 즐기려고 한다.”

    저는 자신이 앓고 있는 중병을 이렇게 객관적으로 담담하게 말하는 이를 처음 봤습니다. 그제서야 그동안 언론 인터뷰 요청을 마다했던 그가 본지 요청에 응한 이유를 깨달았습니다. 자칫 오해와 논란을 일으킬 수도 있지만, 평생 나라 지키는 군인으로 살았던 그가 마지막으로 중요한 메시지를 던졌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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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 12월 이상희 전 국방부 장관이 주간조선과 신년 인터뷰를 하고 있다./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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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약(文弱)하고 상무(尙武)정신 무너진 사회에서 돋보였던 무인(武人)

    제가 20여 년간 가까이 접한 이 장관은 전형적인 무인(武人)이었습니다. 국가 안보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리더십에 반해 그를 따르는 후배도 많았지만, 직설적이고 타협하기 싫어하는 꼬장꼬장한 성격 탓에 그를 싫어하는 선후배도 적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문약(文弱)하고, 상무(尙武) 정신이 무너진 대한민국에서 돋보였던 무인이었던 것은 분명했습니다. 퇴임 후 대한민국의 활로를 만들기 위해 치열하게 논쟁하고, 발표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일관되게 북한 문제에서 분명한 입장을 표명해 왔습니다. 제가 워싱턴 특파원으로 근무하던 시절 그는 장관직을 마친 후, 브루킹스연구소에 초빙돼 왔습니다. 2010년 그는 이 연구소 홈페이지에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그는 “대북 정책을 대응형 접근에서 주도형 접근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김정일 체제가 교체되거나 북한 정권이 소멸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변화될 수 있다면 이를 추진할 용기가 필요하다.” 그는 북한이 핵을 포기할 의사가 없으며, 협상은 시간 벌기일 뿐이라는 판단도 내렸습니다. 그의 분석과 대안이 당시 받아들여졌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해 이 장관의 본지 인터뷰는 이렇게 끝을 맺습니다.

    - 핵무장 반대론자들은 핵무장할 경우 미국과 국제사회에서 경제 제재받을 것을 우려하는데.

    “국가 안보는 죽고 사는 생존(生存) 문제고, 경제는 얼마나 잘사느냐는 민생(民生) 문제다. 핵을 포기하고 안보가 망가지면 모든 것이 하룻밤에 무너지는 것을 우크라이나에서도 보고 있지 않느냐.”

    지금 생각해보니, 이 장관은 자신의 유언처럼 이 얘기를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이 장관은 지난해 4월 자신의 어머니 장례를 치렀던 장례식장의 같은 방에서 세상과 작별했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P.S.

    이 글을 마감 중 일때 이 장관의 별세 소식을 들은 베웰 벨 전 주한미군사령관이 추모사를 보낸 것을 알게 됐습니다. 벨 전 사령관은 “대한민국의 위대한 애국자이자 비교 불가한 전사(戰士)를 잃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대한민국이란 위대한 국가를 지키기 위해 우리가 함께 전투에 나갔다면 나는 기꺼이 그에게 나의 목숨을 맡겼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일반인들도 그렇지만, 특히 군인들 사이에서 ‘내 목숨을 맡긴다’는 말은 신뢰의 상징입니다. 다른 어떤 말보다 이 장관에 대한 추모의 깊이를 느끼게 하는 듯 합니다.

    [이하원 외교안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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