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매일 조혁연 기자] 거장은 그림 그리기 외에도 건축에도 애착과 심혈을 기울였다.
사연이 있었다.
'운보의 집'은 한국화가 운보 김기창(金基昶, 1913–2001)이 지은 집으로, 충북 청주시 청원구 내수읍 형동2길 92-41(형동리 393-1)에 위치하고 있다.
1932년 운보의 어머니 한윤명(韓潤明) 여사가 38세 젊은 나이에 갑자기 사망했고, 묘소는 운보의 집 뒤인 야산에 마련됐다.
1976년 화업(畫業) 동지였던 아내 우향 박래현(朴崍賢)이 결혼 30년 되던 그해에 57세 나이로 남편 운보 곁을 떠났다.
운보는 아내의 영면처를 어머니가 잠들어 있는 건너편 능선에 마련했다.
운보는 그후 두 여인의 묘소가 내려다보는 내수읍 형동리 일대의 땅 수만평을 매입하고, 1979년부터 정원을 품은 주거용 집을 본격적으로 짓기 시작했다.
운보는 어릴 적부터 막역한 친구이자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인 혜곡 최순우(崔淳雨, 1916~1984)와 운보의 집 건축 과정을 수시로 상의했다.
최순우는 이 과정에서 한때 직장 후배이자 고건축 이론과 실무에 정통한 와본 김동현(金東鉉, 1937~)을 운보에게 소개했다.
전통문화대학교 석좌교수를 역임한 그는 법주사 팔상전 해체 수리, 경주 안압지(월지) 발굴 경험 등을 갖고 있었다.
그는 이같은 경험을 바탕으로 운보의 집을 설계하고 공사를 지휘했다.
# 한남금북정맥에 기대어 배산임수를 하다 보통 주거용 집은 남향이나 동남향이 선호되나 운보의 집은 정서향(正西向)에 가깝다.
두 가지 배경이 작용했다.
현 운보의 집 뒤로는 상당산(상당산성)~이티재(초정약수 뒷고개)를 잇는 한남금북정맥이 내수들을 내려다보며 흐르고 있다.
이같은 입지에서 배산임수(背山臨水)를 하려면 집은 자연스럽게 서향이 될 수밖에 없다.
운보는 생전에 외할머니, 어머니, 아내 등 세 여인이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줬고, 그래서 늘 흠모했다고 말한 바 있다.
세 여인 중 두 분이 운보의 집이 내려다보이는 뒷산에서 영면하고 있다.
운보는 어머니와 아내의 영면처를 바라보기 위해 본채 연못 옆에 정자를 세웠다.
정자에서 동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본채 마루 너머로 어머니 묘소, 행랑채 지붕 너머로는 아내 묘소(후에 운보 합장)가 보인다.
이런 시선은 본채가 서향을 향하고 있어야만 가능하다.
1984년 공기 6년 만에 주거용 운보의 집이 완성됐다.
홑처마(☞)와 합각(☞) 양식의 운보의 집은 담장 안으로 본채와 행랑채가 구성돼 있고, 조경시설로는 연못, 정자, 꽃계단, 각종 수석 등이 들어서 있다.
담장 밖으로는 운보미술관, 예수의 생애 특별관, 수석공원, 조각공원 등이 위치한다.
운보의 집은 한국화가의 집답게 그림을 관람하는 것이 주된 방문 목적이다.
그러나 6년여 건축기간이 말해주듯 운보의 집이 간직한 전통한옥의 이모저모를 탐방하는 것도 또 다른 흥미를 안겨준다.
# 평면 형태, 창덕궁 수강재와 매우 비슷 운보의 집 여러 구성요소 가운데 눈여겨 볼 부분을 꼽으라면 ①문턱 없는 솟을대문 ②본채 지붕 평면의 구조 ③본채의 교창 ④본채를 360도 휘감은 쪽마루 ⑤앞마당의 전통 연못 ⑥각종 현판 ⑦관통석(貫通石) 등을 꼽을 수 있다.
①운보의 집 행랑채 솟을대문에는 문턱이 없다.
조선시대 사대부들은 초헌(軺軒)으로 불리는 외바퀴 수레를 타고 집을 출입하기 위해 대문에 문턱을 만들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 운보의 집은 유교식, 불교식 건축물이 아닌 조선시대 사대부 건물을 모델로 건축했다.
해동 김동연이 쓴 솟을대문의 '운보의집' 편액도 눈길을 끈다.
한글서체임에도 '비백'(飛白) 필법이 두드러져 편액의 격을 높이고 있다.
비백은 붓을 수직이 아닌 옆으로 뉘어 쓰는 측필법(側筆法)으로, 글씨 끝이 갈라지고 거친 질감이 드러난다.
추사 김정희(金正喜)와 달마도의 김명국(金明國)이 이 필법을 애용했다.
②고건축 전문가 신현실은 '인물관계로 본 운보의 집 정원의 조영 과정'(2018) 논문에서 '창덕궁 연경당은 궁궐에서 사대부 주택의 전형을 본떠 만든 왕실의 사대부 주택 체험 공간으로 운보의 집은 이 연경당을 기본으로 하여 변화를 준 것이다'(155쪽)라고 밝혔다.
주관적이지만 하늘에서 내려다본 운보의 집 지붕의 평면 형태는 그것보다는 창덕궁 수강재(壽康齋)를 모델로 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운보의 집 본채는 한글 'ㄴ'과 'ㄱ'을 합쳐 놓은 '┗┓' 모습이다.
굳이 작명을 하면 'ㄴ+ㄱ형 한글한옥'(혹은 ㄱ+ㄴ형 한글한옥)이다.
③운보의 집의 본채 벽면에는 민가에서는 잘 볼 수 없는, 울거미(문틀)가 가로로 좁게 긴 창문을 여러 개 만날 수 있다.
이른바 광창(光窓)의 일종인 교창(交窓)이다.
벽면 상부에 붙어 있는 광창과 교창은 채광(採光)이 주목적이다.
두 창문을 통해 들어온 햇살은 방안을 은은히 하면서 명랑하게 한다.
같은 기능을 지녔지만 광창과 교창은 창살(살대)을 어떻게 짰느냐에 따라 그 명칭을 구분한다.
광창은 주로 격자살로 창살을 짠다.
반면 교창은 빗살로 창살을 짠다.
빗살의 다른 말이 '교살'이다.
교창이 광창보다 고급스럽고 장식성을 높게 한다.
# 장석 많이 사용한 평난간, 튼튼하고 장식미 ④운보의 집 가운데 기능성이 가장 높은 것은 쪽마루(☞)로 여겨진다.
운보의 집 쪽마루는 여느 한옥과 달리 본채를 360도 둘러볼 수 있도록 설계했다.
쪽마루를 통해 본채 원하는 공간 어디든지 갈 수 있다.
쪽마루의 난간은 계자(鷄字) 난간이 아닌, 아(亞字) 형의 평난간을 설치했다.
일반적으로 고건축에서는 굽은 닭다리 모양을 한 계자난간이 장식성이 높기 때문에 보다 고급적인 것으로 여긴다.
그럼에도 운보의 집이 평난간을 처음부터 설치한 것은 운보가 유교적 절제와 검소함을 의도적으로 대목장에게 주문했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난간을 더 튼튼하게 보완한 장석(裝錫 ☞)은 장식미를 더 높이고 있다.
전통한옥의 쪽마루는 다리가 피곤하면 잠시 걸터앉아 쉴 수 있는 곳이고, 먹구름이 몰려오면 말리던 곡식을 신속히 옮길 수 있는 공간이다.
⑤운보의 집 앞마당에는 정자와 함께 전통 연못이 조성돼 있다.
앞서 언급한대로 운보가 어머니와 아내의 영면처를 의식해 숙고를 가장 많이 한 공간이다.
전통연못은 주역 천원지방(天圓地方) 원리에 따라 가운데 둥근 섬이 있고 둘레는 사각형으로 조성하는 것이 상례이다.
운보의 연못은 '천원'의 상징을 둥근 모양의 돌거북 하나로 처리했다.
수면 공간이 좁았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대신 최근 새롭게 조성한 담장 밖 연못은 천원지방 원리에 따라 가운데 둥근 섬을 설치했다.
운보의 작품 <하경>(夏景)>(1986)에는 정자, 연못, 너럭바위, 붉은 비단잉어 등이 세부 소재로 등장한다.
영락없는 지금의 본채 앞마당 모습이다.
너럭바위에서 팔을 괴고 배를 드러낸 채 낮잠을 즐기는 사람은 아마도 운보 자신일 것이다.
연못 석조 입수부도 이채로운 모습을 하고 있다.
물이 곧바로 연못으로 들어가지 않고 바닥의 돌함지에 한번 떨어진 후 물길 기울기를 따라 유입된다.
이같은 구조는 물을 한 번 필터링하고, 이후 물 속도를 줄이는 효과를 가져온다.
앞서 설계자 김동현 박사가 경주 안압지를 발굴한 경험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안압지에는 같은 구조의 돌함지가 2개 발굴됐다.
조선 과학의 자랑인 물시계도 이같은 구조를 지녔다.
물항아리의 일종인 파수호(播水壺) 3개를 계단식으로 설치, 물이 흘러내리는 속도를 일정하게 조절했다.
# 동쪽문 위에는 추사글씨 '露葵黃梁社(노규황량사)' ⑥운보의 집에는 앞서 언급한 솟을대문 외에도 여러 개의 편액과 현판이 달려 있다.
이중 가장 주목을 받는 편액 글씨는 본채 동쪽문 위에 걸려 있는 '露葵黃梁社(노규황량사)'이다.
편액 끝에 '玩堂(완당)'이라는 낙관이 찍혀 있는 것으로 봐 추사의 글씨가 분명해 보인다.
다섯 글자에도 서각임에도 불구하고 끝이 갈라지는 등 추사 글씨체의 주요 특징의 하나인 비백 질감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露葵黃梁社'는 '아욱국(露葵)과 조밥(黃梁)을 먹으며 생활하는 사람의 거처(社)'이라는 뜻으로, 근검한 생활을 표현했다.
다산 정약용의 문장을 추사가 글씨로 썼다.
본채 실내에 걸려 있는 '雲甫畵禪'(운보화선), '雲甫畫房'(운보화방) 편액 글씨는 노산 이은상(李殷相)과 월북화가 이석호(李碩鎬)가 썼다는 얘기가 있으나 낙관이 불분명, 확인은 필요해 보인다.
⑦본채 뒤뜰에는 꽃계단(화계)이 조성돼 있고, 그 중간에 기와지붕을 얹은 연가(煙家) 굴뚝이 우뚝 서 있다.
연가굴뚝의 문양전(紋樣塼)에는 해, 학, 소나무 등 십장생이 돋을새김 돼 있다.
십장생은 운보의 '바보 산수화'(☞)에 단골로 등장하는 전통 소재들이다.
⑧본채는 물론 담장 밖 곳곳에는 구멍 뚫린 수석인 '관통석(貫通石)이 유난히 많이 놓여 있다.
애호가들 사이에 '관통석은 부와 행운을 가져온다는 속설이 있다.
수석은 남한강산이 가장 많고 대부분 거석이다.
2001년 운보는 즐겨 신던 빨간 양말과 흰 고무신을 뒤로 하고 노환으로 타계, 연못 정자에서 늘 그리워하던 아내 우향 곁에 묻혔다.
그는 1990년대 <중부매일> 서상숙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빨간색은 삶의 에너지, 흰색은 민족을 상징한다"고 자주 언급했다.
그의 미술혼을 웅변한 말이었다.
운보의 집 뒤뜰은 지금은 겨울 기운이 남아 있어 조금 황량하다.
봄기운이 무르익으면 'ㄴ+ㄱ형 한글한옥', 꽃계단, 연가굴뚝, 사괴석(四塊石) 담장(☞) 등이 어우러져 운보가 생전에 묵음(默音)으로 그렸던 '바보 산수화'가 실제 풍경으로 변할 것이다.
(재)운보문화재단은 1년여의 시설 개선 작업을 마무리 하고 3월 19일 오전 10시 30분 재개관 행사를 가질 예정이다.
이와 함께 그동안 공방으로 사용되던 입구쪽 건물을 '예수의 생애 특별관'으로 새 단장, 매주 월요일과 명절을 제외하고 관람객을 연중 맞게 된다.
# 탐방 후기: 내수성당의 '쌍둥이 그림'을 보는 듯한 전율 운보는 연작 <예수의 생애>를 1950년대 그렸다.
이때는 교회를 다녔다.
그는 72세 때인 1985년 가톨릭으로 개종, 베드로라는 세례명을 받았다.
1984년 그는 청주 운보의 집으로 거처를 옮긴 후 내수읍 내수성당을 다녔다.
내수성당 유리창에는 수녀를 주제로 한 스테인글라스(Stained glass, 일명 유리그림)가 있다.
스테인글라스 속 수녀는 고개를 15도 정도 비스듬히 기울이고 위를 바라보고 있다.
어디서 많이 보던 모습이다.
전율이 느껴질 정도로 운보의 그림 <성당과 수녀와 비둘기>(1975)에 나오는 그 수녀와 많이 닮았다.
시간상 내수성당 스테인글라스와 <성당과 수녀와 비둘기>는 관련성이 잘 입증되지 않는다.
성당 관계자에 따르면 내수성당 스테인글라스는 운보 작고 1년 전인 2000년 개보수 공사 때 설치했다.
그런 면에서 영향을 줬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운보와 관련된 스토리텔링 소재를 적극 발굴, 지역 관광상품으로 연계할 필요가 있다.
운보의 집을 'ㄴ+ㄱ형 한글한옥'(또는 ㄱ+ㄴ형 한글한옥)으로 네이밍(이름짓기)하는 것도 그래서 필요해 보인다.
1444년 봄 세종대왕은 초정약수에 거둥, 훈민정음을 숙제거리로 가져와 반포를 앞두고 정리작업을 했다.
운보의 집에서 작은 고개 하나 넘으면 한양도성 밖에서 유일하게 훈민정음 정리작업을 한 초정약수가 위치하고 있다.
세종대왕은 또 그해 가을 운보의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증평 시화역의 역둔토를 대상으로 전분6등법, 연분9등법의 토지 공법(貢法)을 시험했다.
세무역사 전공자들은 시화역을 '한국 조세사의 못자리'라고 부르고 있다.
# 용어 설명 ☞ 홑처마: 서까래를 한 개의 열만 사용한 처마 ☞ 합각: 용마루 아래에 형성되는 삼각형 벽면 ☞ 쪽마루: 외벽 처마 아래에 설치한 좁은 마루 ☞ 장석: ㄱ꺽쇠 등 모서리나 부재의 접합 부분에 사용되는 금속 장식 ☞ 바보 산수화: 어린이 같은 순진한 마음으로 그린 그림 ☞ 사괴석 담장: 사각형의 화강암 돌이 석재로 들어간 담장 두 여인에 대한 그리움을 건축으로 승화… 공사기간 무려 6년연못정자서 어머니·아내 묘소 바라보게 설계본채 지붕 흔치 않은 'ㄴ+ㄱ형 한글' 평면구조'바보 산수화' 태동 공간 운보 주요 그림 모티브'360도 쪽마루' 등 한옥 우수 기능 골고루 갖춰교창·연가 굴뚝 등은 한옥 품격 더욱 드높여 운보의집,청주운보의집,김기창,김기창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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