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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17 (화)

    [하승우의 풀뿌리]이상한 불출마선언과 정당공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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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월, 완주군의회가 주최한 지역소멸 대비와 주민자치 1번지 대토론회에 발표자로 참여했다. 중앙정치에서 광역권 통합이 뜨거운 이슈라면, 당시 완주군에서는 전주시와 완주군의 통합이 중요한 사안이었다. 토론회장에는 지방의원만이 아니라 많은 주민이 모였고, 대다수는 통합을 반대했지만 통합에 찬성하는 사람들도 참여해서 발언을 했다. 행정통합에 직접 영향을 받는 완주군청은 왜 이리 조용할까 의문이 생겼지만 지방의회라도 열심히 대응해서 다행이라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토론회 이후 통합 논의가 잠잠해졌다고 해서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지난 2월26일에 완주군의회 의장이 갑자기 지방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지역의 유력 정치인과 국회의원이 나서서 통합 찬성을 압박하자 의장은 “의회의 독립성과 지방자치의 원칙을 정면으로 흔드는 압박”이라고 반발하며 불출마를 선언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주민 대다수가 반대하니 출마를 해서 그 뜻을 이어받는 것이 당선에 유리할 텐데 왜 불출마를 선택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전라북도는 더불어민주당의 공천을 받으면 당선이 거의 확정되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당의 공천을 받지 못한 사람은 무소속으로 출마해야 하는데, 무소속으로 당선되는 경우도 있지만 개인이 감당해야 할 몫이 커지고 당선 가능성은 낮아진다. 그런데 국회의원들이 시도당 위원장을 맡고 공천과정에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니 지방의원들은 그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공천의 기준은 무엇인가

    그러다 보니 공천(public recommendation)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자격 없는 사람이 후보로 확정되기도 하고, 매번 그 과정에서 잡음이 커졌다. 때로는 공천을 빌미로 돈을 주고받는 비리도 발생했다. 이런 문제 때문인지 민주당은 지난 1월 말에 현역 국회의원과 지역위원장을 대부분 배제하고 후보자추천관리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밝혔지만, 완주군의 상황을 보면 별로 효과가 없는 듯하다.

    물론 형식적인 절차가 정해져 있기에 옛날처럼 소수의 사람들이 정당의 공천과정을 쥐락펴락하기는 어렵다. 대부분의 정당은 그 공천과정을 민주적으로 관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민주당의 강령은 공천과정에 시민과 당원의 참여를 보장하고, 당규에서 후보자의 심사기준을 당의 가치와 비전에 맞는 ‘정체성’, 당과 국가, 지역사회에 대한 ‘기여도’, 의정활동 능력, 도덕성, 당선 가능성으로 규정하고 있다. 국민의힘도 당규에 현지 실태조사, 여론조사 결과, 당 기여도 평가결과 등을 종합해서 후보로 정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다.

    이렇게 분명한 기준이 있는 것 같지만 정체성이나 기여도는 아주 모호한 기준이기도 하다. 만약 행정통합에 대한 찬반이 정체성이나 기여도의 기준이 될 만큼 당 안팎에서 충분히 논의가 되었다면 그것이 공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하지만 통합의 이유와 방식, 기대효과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그것이 공천을 좌우한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런 공천은 유권자의 선택을 심각하게 제약하기 때문에 대의민주주의를 약화시킨다.

    1991년에 지방자치제가 부활했을 당시에는 정당이 기초의원 후보를 공천하지 않았다. 그러다 2006년부터 정당공천제가 실시되었고, 그 명분은 정당의 역할을 활성화시켜서 연고주의가 강한 지역정치를 개혁하겠다는 것이었다. 기초의원 정당공천제를 실시한 지 20년이 되었으니 이제는 그간의 평가를 할 때가 되었다.

    스스로 무너진 정당공천제 취지

    지금의 상황을 보면 명분은 무색해졌고 부정적인 효과만 불거지고 있다. 그래서 정당공천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예전에 비해 훨씬 커졌다. 영남과 호남의 경우 정당의 공천이 당선으로 이어지니 무투표 당선만큼 선거의 의미가 없어졌다. 민주당과 국민의힘 두 거대정당이 똑같이 일으키는 문제이고, 말뿐인 정치개혁으론 해결될 수 없는 심각한 폐해이다.

    그동안은 부정적인 효과가 있더라도 선거에서 사람보다 정책이 중심이 되고 좋은 정당을 만들고 활성화시키려면 정당공천제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해왔다. 하지만 그 취지가 무너진 상황에서 언제 출현할지 모를 좋은 정당을 마냥 기다릴 수는 없다. 이제는 기초의원에 대한 정당공천제를 근본적으로 되짚어봐야 한다.

    경향신문

    하승우 이후연구소 소장


    하승우 이후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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