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둘째 주 수요일 피케팅에 참가했을 때 광화문광장 남단에서 한 여성청년이 제주항공 참사를 특검해야 한다고 외치고 있었다. 이분은 삼각대에 휴대전화를 설치하고, 확성기를 바닥에 놓고 혼자 외치는 중이었다. 제주항공 참사는 발생한 지 1년이 넘도록 단 한 명의 책임자도 처벌받지 않았다. 문제로 지적된 콘크리트 둔덕에 대해서도 국토교통부는 1년 넘게 책임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다가, 올해 초에야 규정 위반 사실을 인정했다. 이런 사정을 알고 있었으므로 나는 제주항공 참사의 진실을 밝히라는 이 여성분의 외침에 고개를 끄덕이며 피케팅을 시작했다.
그런데 우리가 자리를 잡고 피케팅을 시작하자 이분의 발언 내용이 조금 달라졌다. “어째서 어떤 참사는 10년이 넘도록 세금을 들여 진실을 밝히면서 어떤 죽음은 잊어버리라 하냐”는 것이다. 다른 여러 가지 참신한 주장도 내놓았는데 그중에는 음모론에 가까운 내용도 있었다. 제주항공 참사 자체가 가짜뉴스라고 주장하다 처벌을 받은 유튜버가 있었기 때문에 나는 이런 발언을 들으면서 긴장과 고민이 점점 깊어졌다.
그런데 또 이분은 피해자들이 고통받고 있으니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정상적인 주장도 내놓았다. 제주항공 참사 피해자들이 기자회견에서 직접 발언하는 장면이나 뉴스 보도 등을 휴대전화로 방송하기도 했다. 광화문광장에서 참사 유가족이 초동수사 미흡을 비판하며 울부짖는 목소리를 들으니 2014년 여름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에서 아이들의 휴대전화 영상을 틀어놓았을 때가 생각났다. 동혁이 어머님이 오열하며 쓰러지셨던 것이 생각났다. 옆에 계시던 다른 어머님들 마음은 어떨지 생각했다.
6시40분이 되었다. 우리가 피케팅을 마치고 모이기 시작하자 정체 모를 여성분이 애국가를 틀었다. 현대 애국가가 아니라 ‘올드 랭 사인’ 곡조에 맞춰 가요처럼 부른 버전이었다. 우리는 한 줄로 서서 광장 북단을 향해 걸어갔다. 그러자 이 여성분이 따라오기 시작했다. 확성기로 미국 국가를 되풀이해 틀면서 계속 따라왔다.
이 여자분이 따라오지만 않았어도 내가 이렇게까지 혼란스럽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체 뭘 주장하고 싶은 건지 알 수 없었다. 미국 국가를 몇번 반복 재생하다 질렸는지 찬송가 ‘마귀들과 싸울지라’도 한 번 틀었다. 그리고 또 미국 국가를 틀었다. 우리가 광장 남단으로 돌아와 사진을 찍고 횡단보도로 향하자 ‘YMCA’ 노래를 틀기 시작했다. 다행히 횡단보도를 건너서 따라오지는 않았다.
참사 피해자를 조롱하는 자들은 오래전부터 보았다. 피해자나 사회적 약자를 조롱하고 모욕하는 콘셉트로 동영상 플랫폼에서 수익을 내려는 자들도 꽤 많이 보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렇게 혼란스러운 사람은 처음 보았다. 민형사상 책임을 피하기 위해 자기 나름대로 ‘교묘한’ 대본을 짠 것일까? 그렇다면 너무 교묘해서 전혀 이해되지 않았으니 성공했다고 봐야 하나?
이런 개인을 욕하기는 쉽다. 그런데 참사 피해자나 사회적 약자를 조롱하고 그 모습을 방송하는 행위가 수익이나 명성을 얻는 방편으로 여겨진다면 사회가 그만큼 병들어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혐오팔이로 커리어를 구축할 수 있는 사회는 분명히 비정상이다.
내란과 서부지법 폭동은 그 비정상적인 사회의 한 증상일 뿐이었는지도 모른다. 매우 거대하고 충격적인 증상들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증상이었을 뿐이고 근본 원인이 되는 질병은 전혀 낫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세월호 참사 12주기가 이제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벌써 12년이 지났는데 참사의 진실은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다. 제주항공 참사도 그렇지만 음모론이 떠돌고 비뚤어진 인간들이 나서서 온갖 2차 가해를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정부가 제대로 진실을 밝히지 않기 때문이다. 책임자를 처벌하지 않기 때문이다. 참사 없는 안전 사회를 요구하며, 모든 피해자분께 연대의 마음을 전한다.
정보라 소설가 |
정보라 소설가
▶ 매일 라이브 경향티비, 재밌고 효과빠른 시사 소화제!
▶ 더보기|이 뉴스,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 점선면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