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Midjourne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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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밤, 아파트 문간방에 누워 책을 읽고 있을 때다. 어디선가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가슴이 철렁했다. 어느 집에 강도가 들었나? 손발이 묶여 작게 SOS를 치나? 남자 목소리였다. 두리번거리며 소리 나는 방향을 찾았다. 욕실 쪽 방구석이다. 귀를 벽에 바짝 댔다. “살려주세요….” 천장에서 거미줄을 타고 내려오는 거미처럼 조심스러운 음성. 희미하지만 분명 사람 목소리다. 귀신이 아니다. 곧바로 112에 신고했다.
경비 아저씨와 위층으로 올라가 벨을 눌렀다. 부부는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봤는지 아무 소리도 못 들었다고 했다. 잠옷 바람으로 나온 그 집 아저씨까지 가세해 한층 더 올라가 벨을 눌렀다. 인기척이 없다. 문을 두드렸다. 옆집에서 거긴 할아버지 혼자 산다고 했다. 그때 경찰차와 소방차가 도착했다. 큰일인 줄 알고 두 개 구에서 출동하는 바람에 열 명도 넘게 몰려왔다. 경찰관이 문에 귀를 대더니 다들 조용히 하라고 했다. “할아버지! 비밀번호! 대문 비밀번호!” 사연인즉, 할아버지가 욕실에 갇혀 몇 시간이나 쓰러져 있다가 안 되겠다 싶어 하수구에 대고 외쳐댔고, 배관을 타고 내려온 미미한 소리를 내가 들었던 거다.
알베르 카뮈는 삶과 죽음에 대한 철학적 에세이 ‘시지프 신화’에서 “인간은 스스로 자신이 살아가는 날들의 주인이라는 것을 안다”고 했다. 시지프는 신들로부터 끊임없이 산꼭대기로 바위를 굴려 올리는 형벌을 받는다. 힘들게 정상에 오른 환희도 잠시, 바위가 떨어져 다시 끔찍한 육체노동이 반복된다.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의 굴레를 묵묵히 수행하며 인간은 바위보다 강해진다. 끝까지 생을 포기하지 않은 할아버지는 갇힌 욕실 하수구 앞에서도 살아가는 날들의 주인이었다. 그 강인함에서 빛나는 존엄을 본다. 우리는 어쩌면 눈앞의 고된 형벌에 마음이 꺾여, 이토록 간절하고 고귀한 자기 생을 못 보고 지나치는 건 아닐까.
[정수윤 작가·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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