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이천시 보험개발원자동차기술연구소에서 관계자들이 나이롱 환자를 잡아내기 위해 차 사고와 부상의 인과 관계를 확인하는 실험에서 충돌 후 데이터를 측정하고 있다./ 고운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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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에 사는 A(41)씨는 지난 2023년 교차로에서 후진하던 차량으로부터 접촉 사고를 당했다. 차량이 멈춰서 있는 상황에서 발생한 경미한 사고였지만, A씨는 디스크 치료를 받겠다며 3년째 한방병원을 전전하고 있다. A씨가 한방병원 3곳에 낸 진료비만 1352만원으로, 이는 전부 A씨가 가입한 손해보험사에서 납부했다. 지금도 A씨는 매달 한 번씩 한방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10만원씩 보험금을 청구하고 있다.
A씨와 같은 소위 ‘나이롱 환자’들을 방지하기 위해 금융 당국이 추진하는 ‘8주 룰’이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당초 다음 달 1일 시행하는 것을 목표로 금융 당국과 보험사가 실무 준비를 마쳤지만, 한의업계와 소비자단체 등이 진료권을 침해한다고 극렬하게 반대하면서 무기한 연장된 상황이다. 8주 룰은 자동차 사고 경상 환자가 8주 이상 치료를 받는 경우 자동차손해배상진흥원 심의를 거쳐 보험금을 지급하는 제도다. 정부는 치료가 필요한지 심의하는 절차를 개선해 조만간 8주 룰을 시행한다는 방침이지만, 그 사이 자동차보험 누수는 커진다는 비판이 나온다.
25일 손해보험업계에 따르면, 지난 2024년 기준 경상 환자 가운데 8주를 초과해 치료받은 비율은 8%에 그쳤다. 4주 이하 치료 환자가 80%로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삼성화재·현대해상·KB손해보험·DB손해보험 등 대형 손보사 4곳에서 경상 환자 가운데 보험금을 많이 타간 상위 5%(7만5407명)를 살펴보니 1인당 진료비가 403만2000원에 달했다. 상위 5%가 총 3040억원가량을 보험금으로 받은 것이다. 손보사 4곳 전체 보험금(1조3498억원)의 23%에 달하는 규모다. 손보사 관계자는 “단순 염좌로 2~3년씩 치료를 받으면서 보험금 수천만원을 타내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했다.
국토교통부는 작년부터 이 같은 나이롱 환자들을 방지하기 위해 8주 룰 도입에 나섰다. 작년 6월 자동차손해배상법 시행령 개정안을 내놓고 시행일을 1월 1일로 지정했다. 하지만 이를 두고 의료 업계가 경상 환자의 치료권을 제한한다며 극렬히 반대하고 나서면서 도입 시기 미뤄졌다. 이후 올해 1월 금융감독원이 8주 룰에 맞춰 보험업 감독 업무 시행 세칙 개정안을 예고하면서 시행 시점을 3월 1일로 지정했다. 그러나 또다시 갈등이 빚어지며 도입 시점 미뤄졌다. 그리고 국토부와 금감원은 8주 룰을 4월 1일에 시행하는 것으로 내부 계획을 잡고 실무 준비에 나섰지만, 이마저 미뤄진 것이다.
그 사이 나이롱 환자들로 인한 피해는 누적되고 있다. 지난 2월 주요 손해보험사 자동차보험 손해율은 84.5~89.2%를 기록했다. 손해율은 보험사가 받은 보험료 대비 지급한 보험금 비율을 뜻한다. 통상 보험료를 받아 20%가량은 운용비로 쓰이기 때문에, 손해율이 80%를 넘어설 경우 보험사가 적자를 보게 된다. 자동차보험 손해율은 수년째 80%를 상회하고 있다. 이에 올해 4년 만에 자동차보험료를 1.3~1.4% 인상하기도 했다.
이에 나이롱 환자로 인한 자동차보험 누수가 커질수록 피해를 보는 건 일반 국민들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보험사 관계자는 “나이롱 환자로 인해 보험사들이 적자를 보면 결국 일반 가입자들의 보험료를 올릴 수밖에 없다”며 “10%도 안 되는 장기 치료 경상 환자 때문에 보험료가 오르는 건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할 것”이라고 했다.
의료기관과 소비자단체는 8주 룰이 진료권을 침해한다는 입장이다. 시민단체 금융정의연대는 18일 금융감독원에 의견서를 내고 “경상 환자도 장기간의 치료가 필요하거나 만성 통증·후유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며 “상해의 경중만으로 일률적으로 (치료 필요성을) 판단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8주 룰을 시행하더라도 보험료 인하 혜택은 미비할 것이고, 비용 절감 효과는 고스란히 보험사 이익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했다.
[강우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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