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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26 (목)

    [문화와 삶]희망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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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는 독일 숙소의 창문을 살펴보더니 말했다. “훌륭하군!” 지은 지 100년도 더 된 건물의 창문이 얼마나 그 만듦새가 좋은지 열고 닫기도 쉽고 아귀가 딱 맞아서 닫으면 바깥에서 절대 열 수 없어 그 원리가 기가 막힌다는 것이다. 엄마는 주먹으로 벽을 콩콩 두드렸다. “벽도 아주 두꺼운 게, 폭탄이라도 터뜨리지 않으면 부수기도 어렵겠어!” 그리고 외쳤다. “독일, 이 똑똑한 놈들!”

    밀라노의 두오모 성당을 보면서도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먼 곳에서부터 거대한 빛이 뿜어져 나오는 듯한 하얀 대리석의 건물과 가까이 갈수록 끝도 없이 솟아 있는 화려한 첨탑들에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압도적으로 아름답구나. 이태리, 이 지독한 놈들!” 파리의 에펠탑을 보았을 때는 이렇게 말했다. “저놈의 쇳덩이가 뭐길래 저렇게 예쁘단 말이냐!” 도리어 쓴 표정을 짓더니 이내 두 손을 들었다. “프랑스 놈들아, 내가 졌다!”

    엄마와의 유럽 여행에서 가장 걱정이 되었던 것은 돈도 아니요 이동도 아니요 다툼이었다. 인터넷에 유명한 가족여행 금지어 십계명이 있다. ‘아직 멀었냐?’ ‘겨우 이거 보러 왔냐?’ 등 주옥같은 명대사들이 금지어로 올라와 있다. 우리 엄마도 평소 칭찬보다 불평에 일가견이 있다. 여행에서는 꼭 한 번씩 대판 싸웠고, 작년 대만 여행을 다녀오고서 “그래서 우리가 갔던 나라가 어디라고?”라는 충격적인 말을 남긴 전적도 있었다.

    엄마와 나는 10일 동안 3개국을 이동했다. 저예산 여행으로 대중교통을 타거나 걸어 다녔다. 덕분에 매일 꼬박 2만보씩 걸었다. 감히 20대 청춘에게도 힘든 여정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엄마는 10일 내내 단마디도 불평이 없었다. 앓아눕거나 힘들어하는 법도 없었다. ‘이제 그만 숙소로 돌아가자’는 말은 낌새조차 없었다. 엄마가 여행하는 동안 한 말은 단 세 가지였다. 좋다, 여긴 더 좋다, 여긴 최고로 좋다. 엄마의 퍼스널 컬러는 유럽이었다.

    유럽도 엄마를 사랑했다. 이 통통하고 귀여운 아줌마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었다. 길 가던 아줌마와 대뜸 서로 예쁘다며 대화를 텄고, 지하철에서 바이올린을 켜던 아저씨는 엄마에게 찐한 윙크를 날렸다. 분명 엄마는 한국어로 말하고 있는데 모두가 엄마의 말을 알아듣고 생글생글 웃으며 대답해주었다. 엄마는 어디서나 눈을 빛내며 보이는 모든 것을 궁금해했다. 이를테면 엄마는 어딜 가나 물이 흐르고 있으면 냅다 물었다. “이게 센강이지?” 나는 말했다. “이건 아르노(피렌체)강이야.” 밀라노에서도 물었다. “여기가 센강이지?” “여기는 나빌리오 운하야.” 이윽고 파리에서도 물었다. “여기가 센강이네.” 나는 신이 나서 답했다. “엄마, 맞아!” 엄마를 보며 낚시는 낚일 때까지 던지는 것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엄마가 그중에서도 가장 사랑한 것은 베를린에서 본 베를린 필하모니였다. 엄마는 웅장한 공연장에서부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연주가 시작되었고, 과연 세계 최고로 손꼽히는 오케스트라답게 관객들 모두 감격과 흥분 속에서 공연에 몰입하고 있었다. 마지막 곡은 특히 아름다웠는데 혼란과 절망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빛을 웅장한 음악으로 표현한 듯했다. 그때 잠시 연주 소리가 잦아드는 구간이 있었고, 잠시 숨을 참듯 몇초에 가까운 짧은 침묵이 장내를 채웠다. 그 순간 어디선가 아이 같은 탄성이 낭랑하게 울려퍼졌다. “이야아~” 바로 엄마였다. 수백명으로 가득 찬 정적 속에 한 아줌마의 감동 신음이 울려퍼진 것이다. 공연이 끝나고 모두의 기립박수가 이어지는 와중에 퍼스트 바이올리니스트가 엄마를 향해 엄지를 들어 보였다.

    공연장을 나서며 엄마가 말했다. “평생 잊지 못할 거야. 특히 마지막, 희망의 봄이었지?” 마지막 곡은 그 유명한 드보르자크의 신세계로부터였다. 그렇지만, 나는 엄마가 지은 제목이 훨씬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향신문

    양다솔 작가


    양다솔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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