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속이 정체성을 대신하는 환경에서 자원과 기회가 집중된 수도 서울은 좀처럼 이탈하기 어려운 견고한 중심이 됐다. 내가 프리랜서로 일하면서도 서울을 떠나지 못했던 이유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자유롭다고 말하기 어렵다. 누군가는 세상 물정 모른 선택이라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결혼이나 투자 목적이 아닌 ‘다른 삶’을 기대하며 이주를 고민 중이다. 그 삶의 모습은 아직 분명하지 않다. 다만 부딪쳐야 또렷해질 거라는 감각이 있다.
그곳이 어디든, 몇가지 꼭 충족해야 할 조건은 세울 수 있었다. 우선 KTX 정차역이 있는 도시일 것. 이주에 대한 결심은 비교적 선명하지만, 서울과 완전히 끊어지는 것이 두렵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지금까지 해온 취재와 글쓰기를 이어가고, 고향집을 오가려면 대중교통 접근성이 필수다.
또 하나는 1억원대로 내 집 마련이 가능한 지역일 것. 서울 집값을 기준으로는 변변한 전세조차 구하기 어려운 예산이지만, 20년 넘게 이어온 월세살이를 감안해 감당 가능한 범위를 가늠해본 결과다. 여러 조건을 기준으로 견주는 동안 접근성과 가격 사이에서 많은 지역이 걸러졌고, 내 앞에 놓인 현실적이면서도 가장 마음이 기우는 선택지가 강릉이었다.
인터넷 플랫폼으로 매물을 살펴보는 동안 ‘이게 가능한 거였어?’ 놀라게 될 만큼 서울과 지역의 간극은 예상보다 훨씬 컸다. 시세를 들은 친구들은 “집값은 원래 그래야 하는 거 아니야?” “서울 상급지 아파트 한 채 값이면 네가 본 아파트 한 라인을 몽땅 살 수 있는 거 아니니?” 하며 울분과 탄식이 뒤섞인 반응을 쏟아냈다.
강릉과 그 인접 지역을 자주 오가긴 했지만, 일이나 여행이 아니라 본격적으로 ‘살기 위한 곳’으로 마주한 도시는 이전보다 낯설게 느껴졌다. 그러자 자연스레 물음이 따라왔다. 작가, 기자, 칼럼니스트… 지금까지 나를 설명해주던 이름들을 유지하며 삶의 환경을 바꾸는 게 과연 내가 바라는 다른 삶일까? 이 도시에서 전과 다른 일을 하며 살 수는 없을까?
연고 없는 이에게 낯선 지역을 알아가는 첫 창구는 결국 검색창이다. 묘한 기대감으로 ‘강릉 일자리’를 두드려봤지만, 화면은 생각보다 고요했고 검색창을 붙잡고 있을수록 ‘다른 일’의 윤곽은 오히려 흐릿해졌다. 예컨대 어디에나 수시로 올라오는 공공일자리나, 관광도시 강릉의 관광·서비스업 채용 수요는 결코 적지 않다. 그러나 그것이 곧장 ‘내 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 같았다.
취재차 지역을 오갈 때마다 자주 듣는 말이 있다. “할 일은 많은데 일할 사람이 없어요.” 농촌이든 소도시든, 현장에서는 비슷한 하소연이 반복된다. 분명 필요한 일손이 존재하지만, 그 일손은 표준화된 채용 공고의 형태로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누군가는 일자리가 없다고, 누군가는 사람이 없다고 하지만 결국 부족한 것은 정보가 아니라 서로를 발견할 통로다.
문제는 이 간극이 개인의 정보력이나 우연에 맡겨져 있다는 점이다. 그 사이 기회들은 소리 없이 사그라진다. 한국 사회에서 사람을 이동시키려는 정책은 반복되지만, 정작 이동 이후의 삶을 지탱할 연결 구조가 촘촘하게 설계되어 있는지 되묻게 된다. 분명 존재하지만 눈에 띄지 않는 기회 사이를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건너갈 수 있을까.
정책이 숫자에 매몰되어 사람을 옮기는 데만 급급할 때, 정작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시스템의 구멍을 메우는 사람과 사람의 연결이다. 누군가를 살게 하는 것은 화려한 조감도가 아니라 낯선 이의 손을 잡아줄 ‘사람’이라는 사실에 정책이 응답해주길 기대하는 건 너무 큰 바람일까. 이주라는 말이 아직 어색하게 입안을 맴돌지만, 나는 그 손을 찾아 또다시 강릉행 KTX를 예매한다.
서진영 <로컬 씨, 어디에 사세요?> 저자 |
서진영 <로컬 씨, 어디에 사세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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