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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이슈 강제징용 피해자와 소송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에 1억씩 배상’ 판결 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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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대법원 전원합의체, “일본기업에 배상의무 있다”

“한일협정으로 개인청구권이 소멸한 건 아니다”

소송 13년, 재상고 5년여 만에 확정판결 나와

‘재판거래’ 수사, 한일관계에 큰 영향 미칠 듯

군 위안부, 원폭 등 다른 ‘반인도적 불법행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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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해당 일본기업이 배상해야 한다는 대법원 최종 확정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김명수 대법원장)는 30일 여운택씨 등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인 ㈜신일철주금(옛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재상고심에서 신일철주금의 재상고를 기각해 여씨 등 원고들에게 1억원씩을 배상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전원합의체는 이날 판결에서 2012년 5월 대법원 1부(주심 김능환 당시 대법관) 판결을 대부분 그대로 재확인했다.

이번 판결은 여씨 등이 소송을 제기한 지 13년8개월만이다. 여씨 등은 1941~43년 신일본제철의 전신인 일본제철의 일본 공장에 강제동원돼 고된 노역을 했으나 임금을 전혀 받지 못한 채 해방 뒤 귀국했다. 여씨 등은 1997년 일본 법원에 임금과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으나 2003년 패소가 확정됐다. 이어 2005년 국내 법원에 소송을 내, 2012년 5월 대법원 1부에서 원고승소 취지의 파기환송 판결을 받았다.

대법원은 2013년 7월 환송후 원심인 서울고법 민사19부가 대법원 환송 판결의 취지대로 여씨 등 원고들에게 1억원씩을 배상하라고 판결한 이후에도 5년 넘게 재상고심 심리와 선고를 미뤄왔다. 이 사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의 법원행정처가 재판을 늦추거나 대법원 판결의 결론을 뒤집는 방안을 박근혜 정부 청와대와 논의하는 등 ‘재판거래’를 해온 사실이 드러나,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대법원이 뒤늦게야 이 사건을 지난 7월 전원합의체에 회부해 선고를 서두른 것은, ‘재판거래’ 의혹에 따른 사법 불신이 깊어질 것을 우려한 때문으로 보인다.

이번 대법원 확정판결로 여씨 등 강제동원 피해자들과 유족들이 일본기업을 상대로 배상을 받을 길이 열렸다. 그러나 이번 사건의 피고인 신일철주금이나 함께 대법원 판단을 받은 미쓰비시중공업의 국내 재산에 대해 가압류 등으로 배상을 강제할 방안이 마땅치 않아, 실제 배상을 받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이와 관련해 일본 정부와 언론은 대법원 판결 이전부터 강한 반발을 예고하는 등 한일관계에 미칠 파장이 만만찮을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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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이날 판결에서 주요 쟁점 대부분에 대해 2012년 5월 대법원 소부 판결의 판단이 옳다고 인정했다.

전원합의체는 ‘여씨 등 원고패소로 확정된 일본 법원의 판결 효력’에 대해 “일본의 식민지배가 합법이라는 전제 아래 일제강점기의 법령이 유효하다고 판단한 일본판결은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자체를 불법이라고 보는 대한민국 헌법의 핵심적 가치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므로, ‘대한민국의 선량한 풍속이나 사회질서’에 위반되는 일본판결의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혀 여씨 등이 국내 법원에서 다시 소송을 낼 수 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또 “현재의 신일본제철이 여씨 등을 강제동원한 옛 일본제철을 그대로 승계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며, 여씨 등 피해자들이 옛 일본제철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을 신일철주금에도 행사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이와 함께 “여씨 등이 2005년 2월 국내 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당시까지도 피해자들이 피고 일본기업을 상대로 대한민국에서 객관적으로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있었다고 할 것이므로, 일본기업이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는 것은 권리남용이어서 허용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들 3개 쟁점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단은 2012년 5월 대법원 소부 판단과 같다.

핵심 쟁점인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한일협정)으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소멸했는지’에 대해,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7대6 의견으로 ‘피해자들의 개인청구권은 한일협정에도 불구하고 소멸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전원합의체 다수의견은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일본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일본기업의 반인도적 불법행위를 전제로 하는 강제동원 피해자의 일본기업에 대한 위자료 청구권’이어서 한일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다수의견은 “따라서 한일협정으로 피해자들의 개인적 손해배상청구권이 소멸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다수의견은 그 이유로 △청구권 협정으로 일본이 대한민국 정부에 지급한 경제협력자금이 권리 문제의 해결과 법적 대가 관계라고 보기 어렵고 △일본 정부가 강제동원 피해의 법적 배상을 원천적으로 부인하면서, 한-일 정부가 일본의 한반도 지배의 성격에 대해 합의에 이르지 못한 점 등에 들었다.

‘반인도적 불법행위’ 등의 이유로 개인청구권이 소멸하지 않았다는 대법원의 이런 판단은 강제동원은 물론 원자폭탄 한국인 피해자와 일본군위안부 등 다른 ‘반인도적 불법행위’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여 주목된다. 앞서, 2005년 8월 민관합동위원회는 원폭, 강제동원, 위안부 문제를 열거하며 “일본 정부·군 등 국가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청구권협정에 의해 해결된 것으로 볼 수 없고,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이 남아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런 다수의견에 대해 권순일·조재연 대법관은 “개인 청구권은 한일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며, 한일협정에 따라 피해자들의 권리행사가 제한된다”고 반대의견을 밝혔다. 이기택 대법관은 “손해배상청구권은 한일협정의 적용대상이 아니라는 2012년 5월 대법원 소 환송판결의 기속력에 따라 이번에도 같은 판결을 해야 한다”고 다수의견의 결론에 찬동하는 취지의 별개의견을 밝혔다. 김소영·이동원·노정희 대법관은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은 한일협정의 적용대상에는 포함되지만, 이는 대한민국의 외교적 보호권이 포기된 것에 불구하므로 피해자들은 일본기업을 상대로 우리나라에서 개인적으로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별개의견을 냈다.

여현호 선임기자 yeop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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