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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0 (토)

이슈 5·18 민주화 운동 진상 규명

[5공 전사-8화]외신이 전한 ‘12·12’ ‘5·18’ 한국 도서관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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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타임’ 1979~1980 관련 보도

찢기고 검정 칠…2건만 살아남아

외신 확인할 근거 검열로 지워내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 보관된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TIME)’에서 1979~1980년 한국 관련 기사를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국회도서관과 함께 한국을 대표하는 도서관인 국립중앙도서관도 마찬가지다.

박정희 유신체제가 무너진 10·26과 신군부 반란인 12·12, 5·18민주화운동 등을 다룬 기사는 수록된 쪽의 전체나 일부가 찢겨나가거나, 문장들이 검게 칠해져 있다(사진). 전두환 신군부, 제5공화국 언론 검열의 생생한 증거가 4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고스란히 남은 것이다.

1970~1980년대 외국 언론은 10·26, 12·12, 5·18, 전두환 대통령 집권에 이르기까지 한국 정치상황을 예의주시하며 기록했다. 연이은 군부 권위주의 정권의 등장에 한국 민주주의가 질식 상태에 놓였던 시기다.

경향신문 <제5공화국 전사(前史)> 특별취재팀이 국회도서관이 소장한 1979~1980년 발간 타임지를 전수조사한 결과, 99권 약 6000쪽에 한국 관련 기사는 18건이다. 이 가운데 신군부의 ‘가위질’을 피한 기사는 단 2건뿐이다. 하나는 1979년 2월 한국을 다녀간 미 상원의원들이 지미 카터 대통령에게 ‘주한미군 철수 중단’을 요구했다는 내용이다. 다른 하나는 한국의 뱀술과 뱀탕을 소개하는 기사다. 신군부에 유리하거나 정치상황에 영향을 주지 않는 기사만 남겼다.

찢기고, 검은 칠이 된 외신은 언론을 통제와 검열의 대상으로 삼았던 전두환 신군부의 행태를 입증하는 증거다. 집권 정당성이 취약했던 신군부는 외신의 통제되지 않은 관점이 국내로 확산되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 국내 언론은 사전검열을 통해 좌지우지했다. 편집권을 건드리기 어려운 외신은 사후검열로 비판의 흔적을 지운 것이다.

5·18 직후 타임지가 보도한 ‘전두환 : 가려진 독재자(Chun: A Shadowy Strongman)’ 기사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인터뷰만 남긴 채 모두 삭제됐다.

<5공 전사>는 검열을 거쳐 ‘입맛에 맞게’ 조정된 외신을 인용하거나, 다시 한번 왜곡했다. <5공 전사>에서 12·12를 기록한 부분에는 ‘정승화 총장은 의혹의 인물’이라며 타임지가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비판한 것처럼 인용돼 있다. 하지만 해당 기사의 원문을 찾아보면 “정승화 총장은 정치에 한 번도 간섭한 적이 없는 청렴한 장교로 명성이 높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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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군부 집권 쿠데타라는 외신보도 ‘유언비어’로 규정…기사 지우고 잘라내

미국 ‘타임’ 1979~1980 관련 보도

찢기고 검정 칠…2건만 살아남아

외신 확인할 근거 검열로 지워내


국회도서관과 국립중앙도서관뿐만이 아니다. 국내 다른 주요 도서관이 소장한 1970~1980년대 ‘타임’에도 당시 한국 관련 기사는 모조리 훼손돼 있다. 국립중앙도서관 관계자는 “이화여대·충북대·서울시립대 등 1970년대 타임지를 소장하고 있는 주요 대학과 유관기관에 문의했으나 해당 쪽은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밝혔다.

외신을 대하는 전두환 신군부의 태도는 극히 편의적이었다. <5공 전사>는 10·26을 보도한 외신을 나열하며 “외국인들이 보는 견해는 비교적 정확했다”고 기록했다. 반면 신군부의 12·12 보도엔 태도를 바꾼다. “미국의 주간지 뉴스위크나 타임지 등 외국의 신문과 잡지들은 12·12 사건을 툭하면 ‘12·12 쿠데타’라 부르고 있다. 그것은 확실한 내용을 검토한 끝에 신중하게 성격을 검토해 부여한 명칭이 아니라, 흔히 저널리즘이 그렇듯 단순히 유언비어에 근거해 책임없이 부르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자신들의 집권 정당화에 맞지 않는 외신은 유언비어로 규정한 것이다. <5공 전사> 편찬자들은 “외국의 반응은 하나같이 부정확한 정보 위에서 12·12 사건을 10·26 사건의 수사를 마무리 짓기 위한 당연한 조치로 보기보다는 군부 내 권력투쟁으로 보지 않으면, 민주주의 발전에 역행하는 것으로 속단했다”라고도 적었다.

대부분의 외신기사는 통째 사라졌지만 몇몇 기사는 일부가 남았다. 타임지는 1979년 11월19일 ‘평소 같은 서울의 정상영업(Normality Business as usual in Seoul)’이란 기사에서 10·26 이후 평온을 되찾은 한국의 풍경을 그렸다. 그러나 기사 속의 “승계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최규하 대통령은 권력승계 방식을 찾기 위해 군 지도부, 주요 장관들과 회의를 이어가고 있다. 대권의 주요 경쟁자인 김종필 전 총리와 정일권 전 총리는 지지를 모을 것으로 예상됐지만, 여태껏 나서지 않고 있다”는 부분은 검게 칠해져 있다.

5·18 직후 보도된 ‘전두환 : 가려진 독재자(Chun: A Shadowy Strongman)’ 기사는 당시 서울에서 일어난 학생 시위, 군을 활용한 정권의 보복, 군사행동을 주도한 전두환의 부상 등을 기록했다. 타임지는 “군사행동의 주역은 최규하 대통령의 나약한 내각에 가려진 숨은 군 독재자 전두환”이라며 “전두환은 정치적 야심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암살한 혐의자 김재규가 담당했던 중앙정보부장직에 스스로를 임명했다”고 꼬집고 있다. 물론 이 부분은 잘려나가고 “한국 정치가 걱정스러운 방향으로 가고 있다. 우리는 우리 조건에 맞는 정치 체제를 개발해야 한다”는 전 전 대통령 인터뷰만 남았다. 1980년 11월 ‘전두환에 찬성하다(Yes to Chun)’란 기사는 5공화국 헌법개정 국민투표를 소개하며 전두환의 대통령 당선 가능성을 점쳤다. 해당 기사에서 잘려나간 단락을 확인한 결과 “(전두환의) 법 개정에는 인신보호제도가 포함됐지만, 불행히도 사형선고에 항소한 김대중 같은 정치적 숙적에게는 너무 늦은 조치였다”는 내용이다.

신군부는 외신을 검열하면서도 자신들의 취약한 정당성 때문에 미국의 지지를 갈망하는 태도를 보였다. <5공 전사>는 전 전 대통령의 방미를 “방미성과는 어떤 의미에서 60년대 이래 최대의 것”이라고 대대적으로 포장했다.

조형국 기자 situati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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