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대법원은 1968년 처음 내려진 판례를 유지해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병역법 위반죄 처벌이 합당하다고 판단해 왔다. 지난 2004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서도 결과는 같았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1일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여호와의 증인’ 신도 오승헌(34)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창원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오씨는 2013년 현역 입영하라는 통지에 불응해 1‧2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날 판결은 대법관 13명 중 8명이 무죄 취지 의견을 냈고, 4명이 반대의견을 냈다. 1명은 법리를 다르게 해석했으나 무죄 취지에는 뜻을 같이했다.
대법관 다수는 "원심은 양심적 병역거부가 병역법상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아무런 심리 없이 병역법 위반 혐의를 유죄로 판단했다"며 "법리를 오해해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않은 잘못이 있다"고 했다.
이번 사건의 핵심 쟁점은 양심적 병역거부가 병역법에 규정된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는지다. 병역법 88조 1항은 현역 입영 또는 소집 통지서를 받은 사람이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하지 않거나 소집에 불응하면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대해 대법관 다수는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은 병역의무를 이행하는 것이 자신의 인격적 존재가치를 스스로 파멸시키기 때문에 불이행에 따른 어떤 제재도 감수하고 병역의무 이행을 거부하고 있다"며 "이들에게 집총과 군사훈련을 수반하는 병역의무를 부과하고 불이행을 형사처벌하는 것은 양심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고, 본질적 위협이 된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법관들은 "양심적 병역 거부자에게 제재를 가하는 것은 소수자에 대한 관용이라는 자유민주주의에 위배된다"며 "양심적 병역거부는 병역법상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했다.
개별 사안에 대한 판단 방안도 제시했다. 대법관 다수는 "정당한 사유로 인정되는 양심은 신념이 확고하며, 진실한 것이고 삶의 일부가 아닌 전부가 그 영향 아래 있으며 좀처럼 쉽게 바꾸지 않는 것"이라며 "구체적 사건에서 피고인이 양심적 병역거부를 주장하면 깊고 확고하며 진실한 것인지를 심사해야 하고, 이는 성질상 양심과 관련있는 간접·정황사실을 증명하는 방법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신빙성을 검사가 탄핵하는 방식으로 증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소영·조희대·박상옥·이기택 대법관은 반대의견을 냈다. 김 대법관 등은 "병역법상 정당한 사유는 질병 등 객관적이고 일반적 사정에 한정해야 한다"며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한 양심적 병역거부와 같이 개인의 신념·가치·세계관 등 주관적 사유를 정당하다고 볼 수 없다. 이는 법률 해석의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고 했다. 김 대법관 등은 "양심적 병역거부는 병역 의무지가 스스로 선택해 자신의 양심을 외부로 실현하는 것이므로 상대적이고, 국방의 의무 실현을 위해 제한할 수 있다"며 "제한 자체가 양심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이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하는 게 아니다"라고 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이번 판단에 따라 양심적 병역거부 소송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31일을 기준으로 대법원에서 심리 중인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은 모두 227건이다. 모두 무죄 취지의 선고가 내려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다만 이미 유죄 확정 판결을 받은 경우에는 구제받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판결은 소급돼 적용되지 않고 재판이 진행 중인 사건에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정부 차원의 특별 사면도 거론되고 있다.
[오경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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