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정민 파리 특파원 |
미확인 드론 한 대가 비행기 1000대 운항을 중단시키고 승객 14만 명의 발을 묶은 이달 19일 영국 개트윅 공항 사태는 영국인들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공항 전체가 전산화되었지만 수십만 원짜리 드론 한 대로 기간 교통망을 마비시킬 수 있음이 확인되면서 승객들의 불안감은 커졌다.
드론 하나에 크리스마스 휴가를 망쳐버린 영국인들은 서로 이렇게 묻고 있다. 대체 ‘노딜 브렉시트’가 되면 영국은 어떻게 되는 거냐고. 내년 3월 30일 영국이 유럽연합(EU)을 떠나는 브렉시트 데드라인은 100일도 남지 않았는데 영국과 유럽은 이후 어떤 상황을 맞는 건지 합의된 게 없다. 합의 없이 떠나는 노딜 브렉시트의 불확실성은 드론 한 대 정도가 아닌 그야말로 핵폭탄급이다.
이지젯 브리티시에어라인 등 영국 국적 비행기들은 휴가지로 각광받는 크로아티아와 포르투갈 등 여러 EU 회원국에 내년 항공편 증편을 전제로 항공권을 이미 팔아놓았다. 그러나 EU가 노딜 브렉시트의 경우 항공기 운항 횟수를 올해 수준으로 제한하기로 한 만큼 증편을 상정하고 판매한 항공편은 모두 취소될 가능성이 커졌다.
영국과 유럽 대륙을 오가는 트럭 운전사들은 2020년부터는 국경을 넘을 때마다 출입국 절차를 거쳐야 한다. 비용과 시간이 크게 늘어난다. 농수산업자, 제조업자, 유통업자 등에게 치명타다.
당장 유럽의 다른 나라에서 살거나 공부하고 있는 영국인들은 노딜 브렉시트 이후 본인뿐 아니라 가족의 체류 신분, 비자 등급, 운전면허증 유효 여부, 세금 체계 등이 어떻게 될지 몰라 좌불안석이다. 이 모든 것이 그들의 생활과 생업에 직결되는 문제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도 느긋한 이들이 있다. 바로 영국 정치인들이다.
이달 19일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와 제1야당인 노동당의 제러미 코빈 대표는 설전을 벌였다. 그런데 브렉시트 이후 국민의 삶을 걱정하는 논쟁이 아니었다. 서로 인신공격을 하다가 코빈 대표가 “멍청한 여자”라고 발언했느냐 안 했느냐를 두고 벌어진 해프닝이었다.
2016년 6월 브렉시트 국민투표 국면부터 지금까지 영국 정치인들의 행태는 거의 ‘먹튀’ 수준이다. 당시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당내 리더십 위기를 타개하고자 브렉시트 국민투표 승부수를 던졌다. 부결될 것이라는 여론조사만 믿은 무모한 승부수는 지금까지 계속되는 EU 탈퇴파와 잔류파의 분열의 씨앗이 됐다. 본인은 무대에서 사라졌을 뿐이다.
당시 EU 탈퇴파는 브렉시트가 되면 영국이 매주 EU에 퍼주고 있는 3억5000만 파운드(약 5940억 원)를 자국 무상 의료에 쓸 수 있다고 선전했다. 그러나 EU를 탈퇴하려면 이른바 ‘이혼 합의금’으로 EU에 내줘야 하는 390억 파운드(약 57조 원)는 외면했다. 이런 혹세무민의 책임은 누구도 지지 않고 있다.
메이 총리는 EU와 수차례 브렉시트 협상안에 합의해 놓고도 국내 의회를 설득하지 못해 국가적 망신을 무릅쓰고 재협상을 요구하고 있다. 코빈 대표는 메이 총리의 안에 무조건 반대하면서도 도대체 어쩌자는 것인지 대안이 없다. 브렉시트를 원하지 않는 것처럼 말하지만 정작 다시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하자는 말은 입 밖에 꺼내지 않고 있다. 조금만 더 흔들면 메이 총리가 낙마할 것 같으니 총리 불신임 카드로 정권을 잡겠다는 심산이다.
이 상황에서 피해를 보는 건 국민뿐이다. 귀족 출신이 대부분인 영국 의원들은 브렉시트가 어떻게 되든 밥 굶을 일은 없기 때문이다.
동정민 파리 특파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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