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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9 (목)

현대미술 전문가가 골동품에서 길어올린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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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집광’ 박영택 경기대 교수

우리 골동품 60점에서 찾은

소박·무심·절제·실용의 미 예찬



한겨레

앤티크 수집 미학
박영택 지음/마음산책·1만6000원

그는 수집광(狂)이다. 수집벽(癖)을 어찌할 수 없다. 그는 고백한다. “수집은 모으는 것이자 동시에 지속해서 비우는 것이다. 잘 비우고 정리를 해야 좋은 수집이 된다 (…) 하지만 막상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나는 모든 것에 마음이 뺏기며 흔들리는 지극히 우유부단한 수집가다.” 그래서 미술평론가인 박영택 경기대 교수의 연구실은 수집품으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이제는 숙명처럼 받아들이는 듯도 하다. “남은 삶은 온갖 책과 문구류, 골동품, 갖가지 사물들로 빼곡히 채워진 둥지 같고 동굴 같은 곳에서 은거하듯 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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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교수는 2012년 낸 <수집 미학>에서 귀이개, 연필깎기, 성냥, 노트북, 카메라 등 일상의 사물들을 다뤘다. 이번에 출간한 <앤티크 수집 미학>에는 그동안 모은 수백점의 골동품들 가운데 가장 아끼는 60점에 대한 수집기와 감상, 애정을 담았다. 현대미술 전문가인 그가 골동품에 빠지게 된 것은 10년 전부터다. 그는 22일 저녁 서울 마포구의 한 공연장에서 열린 북토크에서 “울산의 한 작가의 작업실을 방문했는데 가야 시대의 토기 잔들이 눈에 들어왔고, 잔 하나를 선물받은 게 시작이었다”고 말했다. 이후 전국 각지와 일본, 중국 등지를 다니며 눈에 불을 켜고 토기 잔을 찾아다녔다. 가짜 골동품에 돈을 날리기도 했다고 한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스스로를 달랜다. “미술평론을 하는 나로서는 그 무엇보다도 안목이 가장 중요하다고 늘 생각한다 (…) 우리 고미술품, 골동품에 대한 사랑과 수집은 나로 하여금 조형에 대한 안목을 기르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나아가 한국의 미(美)에 눈을 뜬 계기가 되었고 우리 선조의 삶과 문화를 체득하는 기회였다.”

지은이는 60점의 골동품을 토기, 백자, 옹기, 석물, 목가구, 선비의 소품, 민속공예품, 생활용품, 연장, 서화 등으로 나눠 소개한다. 값비싼 골동품들이 아니고 비교적 저렴하게 구입했다고 한다. 그에게 이 물건들은 “모호한 텍스트이자 애매한 형상들, 기이한 질감을 동반한 낯선 존재들”이다. 그는 “오랜 세월 살아남아 내게 온 것들의 피부 깊숙한 곳에서 울려 나오는 소리에 신중하게 귀 기울인다.” 그런 뒤 ‘왜 이 물건들이 나를 사로잡았는지’ 그 비밀을 캐 글로 옮긴 게 <앤티크 수집 미학>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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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동품을 한 점 한 점 소개하는 지은이를 따라 가다 보면, 그가 이 물건들이 그려내는 소박함, 자연스러움, 무심함, 실용성 등에 사로잡혔음을 알게 된다. 오랜 시간과 삶의 더께가 쌓인, ‘땟물’에서 나오는 아름다움이다. 심지어 “나무로 대충 만든 듯한 목기가 주는 맛이 그렇게 좋았다”고 말한다. 강원도에서 만들어진 목기인 전함지(통나무를 까뀌나 자귀로 파내 만든 목기)를 설명하면서 “막 만든 것”이 좋다고 한다. “이 ‘막’이라는 말에는 엄청난 것이 내장되어 있다. 한국인의 선천적인 성향과 자신의 거주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파생한 미감, 조상으로부터 유전적으로 이어져온 기질, 선친에게 어깨너머로 익힌 지혜와 기술, 혹독한 자연 속에서 자신의 몸을 놀려서 이루어야 했던 노동의 축적 아래 구현된 방법 등이 마구 혼재되어 불현듯 몸 밖으로 밀고 나온, 그런 ‘막 만듦’으로서의 ‘막’이다.” 나무를 후벼 파 만든 그릇은 “단순하고 무식해” 보이지만 감동이 있다고 한다. “깊이가 있어야 무엇인가를 담을 수 있다. 담기 위해 빈 내부가 필요하고 자신이 지닌 재료의 바닥이 드러나야 그 내부는 비로소 가능하다. 그것이 진리다. 나는 이 소박하기 그지없는 목기의 바닥에서 그런 음성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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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동품에는 그것을 사용하던 그 시대 사람들의 바람과 삶의 태도가 담겨 있다. 그걸 듣고 읽으면서 더 깊이 골동품에 빠져든다. 제주도의 무덤 앞에 세워졌던 작고 귀여운 한 동자석은 두 손을 공손히 모아 숟가락을 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무덤 안에서도 굶주리지 말고 불로장생하라는 의미를 지닌” 것으로 지은이는 해석한다. 조선 시대 남성들의 주요 거주·활동 공간이던 사랑방의 목가구는 실용적이며 소박하고 절제미를 갖췄다. “선비들은 사랑방 역시 유교의 윤리관에 합당한 청빈검소한 성격으로 꾸미고자 했다. 장식이 배제된 간결하고 소탈한 목가구가 선호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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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가 골동품 수집 초보자일 때 좀 비싸게 구입했다는 ‘타구’(사랑방에서 선비들이 침이나 가래를 뱉는 데 쓴 용구)에서는 “홀로 있는 데서도 삼가고자 했던 선인들의 수양 방법과 정신”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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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대문구 서울풍물시장에서 구입한 물건 가운데 ‘연장통’에 가장 애착이 간다고 한다. 작은 나무통에 누군가 직접 만들어 사용하던 몇 개의 연장이 담겨 있다. “나는 이미 저것들을 사야 한다는 결연한 의지를 가졌고, 그 안색을 숨길 수 없어서 상인은 결코 에누리 없이 제값을 다 받고서야 내 손에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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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장통에는 노동을 하며 생을 이어온 한 인간의 삶이 들어 있다. “오늘도 연구실 테이블 한쪽에 놓아둔 저 연장통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노동자의 삶을, 노동하는 생애를 경건하게 생각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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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가 꽃과 새를 소재로 한 “무심하기 그지없는” “막 그린 것 같은” 민화를 마지막 작품으로 설명하는 대목에서 그의 생각이 잘 드러난다. “나로서는 이런 담담하고 소박한 그림이 더없이 감동적이다. 이는 그림이 솜씨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 마음의 문제기에 더 그렇다. 이 그림에는 현학적인 현대미술이 진즉에 잃어버린 순결하고 투명한 마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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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앞으로 ‘떡살’ ‘옹기’ ‘연장’을 더 수집해, 각각에 대한 책을 쓰고 싶다고 했다. “나는 사물들을 수집하고 바라보는 행위 안에 담긴 모종의 슬픔, 기억, 망실의 지연, 살아 있었던 시간들의 온전한 상기 등을 복잡하게 겪어내려는 것이다.”

황상철 기자 roseb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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