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알코올중독자, 왜 40대 돼야 병원에 오나” 병 키우는 사회에 쉼없는 경종
이해국 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게임중독 증상이 실제로 심각한 사회문제를 야기한다면 질병으로 봐야하고 치료가 시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해묵 기자/moo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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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중독’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이는 지난달 28일, 세계보건기구(WHO)가 제 72차 세계보건기구 총회를 열어 ‘게임중독’ 증상을 ‘게임이용장애’(Gaming disorder)라는 국제질병표준분류기준(ICD) 질병코드로 분류한다고 발표하면서 시작됐다. 이번 결정은 국내에서 격렬한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세계보건기구 중독분야 자문위원
주류 의학계에서는 게임에 지나치게 몰입할 경우 육체적 정신적 측면에서 많은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질병으로 분류해 중독 증상을 보인다면 당연히 치료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반면 일부 의학계에서는 게임 과몰입이 우울증이나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같은 질환과 연관된 ‘공존질환’으로, 게임만으로 ‘중독’이라 불릴 정도의 증상들이 유발되지 않는데 성급하게 질병으로 분류한 게 아니냐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게임 산업계에서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게임산업이 위축돼 향후 산업발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WHO의 발표가 나오자 한국게임학회, 한국게임산업협회 등 90여개 유관 단체는 ‘게임 질병코드 도입 반대를 위한 공동대책 위원회’를 만들었다. 지난달 29일 국회회관에서 열린 ‘WHO의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에 따른 긴급토론회’에서 게임업계 관계자들은 검은색 양복을 입고 근조 현수막을 내걸기도 했다.
국내에서 게임중독 문제점에 대해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는 이가 있다.
이해국(50) 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다. WHO 중독분야 자문위원이기도 한 그를 지난달 31일 의정부성모병원에서 만났다.
이 교수는 게임으로 중독증상을 보인다면 치료가 필요한 질병이라고 꾸준히 강조해왔다. 때문에 그는 요즘 게임업계에서는 가장 불편한 대상이 되고 있다. 프로게이머들 사이에서는 악명(?) 높은 의사이기도 하다.
일코올 중독자 치료율 5~10% 수준
이 교수는 “중독 전문 연구자들은 알코올이든 게임이든 관련 산업에서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기 때문에 충분히 예상했던 반응”이라며 “담배는 50년 이상, 알코올도 더 오랜 기간 업계와 중독 전문가들의 충돌이 있어 왔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행위중독 전문가로 게임중독 이슈에 앞서 알코올, 도박중독과 같은 연구를 오랫동안 진행해 왔다. 이런 연구에 중독(?)을 보인 이유는 무얼까.
이 교수는 “전공의 시절 책에서는 알코올 중독자가 20대에 가장 많이 발생한다고 봤는 데 실제 병원에 오는 환자는 대부분 40~50대였다. 왜 그럴까 의문이 들었다”며 “결국 20대에 알코올중독자가 됐지만 ‘애주가’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는 사회 때문에 20년 이상 병을 키우다 정상생활을 하기 힘들 정도로 망가져 병원을 찾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20년 이상된 병이 한번에 낫기는 쉽지 않지만 치료를 통한 중독자의 변화는 드라마틱하다. 술이나 도박만 하던 사람이 완전히 멀쩡해지기도 한다. 중독행동을 치료할 때의 성취감은 크고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실제 알코올중독 같은 행위중독자들의 치료율은 5~10%밖에 안된다. 조현병 치료 성공율이 50%인 것에 비하면 상당히 낮은 수치이다. 이 교수는 “진료실에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중독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책적인 접근이 필요하고 그러다보니 정책에 자연스레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스포츠 스타·아이돌 가수가 술광고라니
이 교수는 알코올 중독을 조장하는 사회분위기를 지적했다. 이 교수는 “몇년 전 국내 소주 광고에 한 스포츠 스타가 메인 모델로 나온 적이 있는 데 해외에선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이라며 “어린 여성 가수들도 자주 술광고 모델로 등장하는 데 이런 광고들로 청소년들이 술을 더 쉽고 친근하게 접하게 된다”고 우려했다.
많은 의사들이 병원 또는 실험실에서 진료나 연구에 몰두하는 것과 달리 이 교수는 자의반 타의반 사회적인 현상과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한다. 88학번인 이 교수는 386세대의 끝 자락으로 민주화운동에 영향을 받아 진보적인 사고를 갖고 있다.
이 교수는 “의과대학 시절 청년의사들이라는 단체에 속해 대중운동을 하면서 사회정책에 많은 관심을 갖고 참여했다”며 “정신건강 영역에서는 진료실 안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바깥세상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고 언급했다. 아울러 이 교수는 당시 함께 대학을 다녔던 공대생들 중 많은 이들이 게임업계로 진출했다고 했다.
그는 “MB정부 시절 일자리가 많이 줄어들자 유능한 공대생들이 당장 돈이 되는 게임업계로 많이 갔다”며 “정부도 IT산업의 중심에 게임을 올려 놓고 적극적으로 지원했지만 그로 인한 부작용은 간과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번 WHO의 게임이용 장애가 질병으로 분류되는데 힘을 보탰다. 지난 2014년에 WHO가 게임이 정신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하고 각국의 연구 자료를 수집할 때 이 교수는 태스크포스(TF) 자문위원으로 참여했다.
이 교수는 “게임중독이 정신건강에 악영향을 준다는 보고서를 수집해보니 1000여개로 도박중독 보고서에 비해 2배가 넘었다”며 “35개국 70여명의 중독연구자가 참여해 분석한 결과 게임이 공중보건학적으로 대응이 필요한 행위중독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 교수의 행위중독에 대한 전문성은 일본 언론에서 이 교수를 직접 찾아와 자문을 구할 정도다. 지난해 교도통신, 요미우리신문, 산케이신문 기자와 일본 외무성 담당 사무관 등이 직접 이 교수를 만났다. 2020년 이후 최소 3개 이상의 카지노가 생기는 일본이 이에따른 도박중독 대책을 세우기 위한 차원이었다. 이자리에서 일본측 관계자는 자국민 카지노 입장 허용을 먼저 경험한 한국의 도박중독 치료에 대해 상세히 질문했다.
스마트폰 사주는 부모도 중독 원인 제공
이 교수는 게임 중독과 관련해서는 무엇보다 게임의 접근성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했다. 마약이나 도박에 비해 거의 모든 사람이 스마트폰을 가진 만큼 게임에 대한 접근성은 100%에 가깝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현재 게임 비즈니스 모델은 무료로 게임을 하게 해 주고 오랫동안 머물게 하면서 돈을 쓰게 만드는 방식”이라며 “게임은 근본적으로 즐거움을 주는 대상이지만 이런 환경 때문에 중독증상이 발생할 수 있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더구나 국내 스마트폰 사용 환경은 오히려 게임을 하도록 더 부추긴다. 이 교수는 “해외에서는 스마트폰을 판매할 때 ‘우리 기기는 아이들이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안전 장치가 마련돼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반면 국내 스마트폰은 아예 게임 앱을 처음부터 넣어서 판매한다”며 “스마트폰을 사주는 부모가 오히려 게임중독을 유발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에겐 학생인 아들과 딸이 있다. “(아이들에게 게임을) 일주일에 2번, 한번에 2시간씩은 허용해 줍니다. 하지만 끊임없이 게임이 중독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을 주지시켜 주고 있죠”
WHO가 ‘게임이용 장애’로 정의하고 치료가 필요한 것으로 판단하는 경우는 욕구를 참지 못하고 다른 일상생활보다 게임을 우선시하며 삶에 문제가 생겨도 게임을 중단하지 못하는 증상이 12개월 이상 지속될 때다. 이 교수는 “98%가 건강하게 사용해도 2%가 중독증상을 보인다면 이들을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를 생각해봐야 한다”며 “게임이용 장애를 질병으로 분류하자는 건 이런 중독자들을 치료하자는 것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게임산업이 위축되거나 퇴보할 것이라는 생각은 잘못된 접근이다. 오히려 보호 장치가 마련된다면 보다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계기가 되고 결국 게임산업이 발전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태열ㆍ손인규 기자/kt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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