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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이슈 수돗물 유충 사태

[르포]"생수로 조리합니다" '붉은 수돗물 사태'에 인천 식당가도 직격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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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적수(赤水)’ 2차 피해…상인들도 ‘울상’
손님 잡으려 ‘생수 조리’ 앞다퉈 광고
7~8월 대목까지 놓치면 어쩌나 걱정
지원·보상 등 모두 ‘합동조사’ 이후에나

13일 오전 인천 서구 원당동 한 음식점. 가게 밖 창문에는 ‘음식을 전부 생수로 조리합니다’라고 적힌 종이가 붙어있었다. 가게 안에도 ‘생수로 조리합니다’ ‘어려운 시기 함께 이겨냅시다’ 등이 적힌 종이가 군데군데 걸려 있었다. 이 가게뿐 아니었다. 인천 서구에는 생수를 쓴다는 안내문을 써 붙인 음식점이나 카페가 여럿 있었다.

붉은 수돗물이 나오는 이른바 ‘인천 적수(赤水)사태'가 2주째에 접어들었지만, 아직까지 원인도 밝혀지지 않아 시민 불안은 사그라지지 않고 있었다. 가족 단위 외식이 확 줄었고, 음식점 매출도 덩달아 추락하고 있다. ‘2차 피해’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음식점이나 카페들 입장에선 ‘수돗물’이 아닌 ‘생수’를 사용한다고 알리는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손주도 먹이는 음식’…생수 조리 홍보하는 음식점들
서구 검단동에서 일식라면집을 운영하는 서진아(34)씨는 가게 공식 인스타그램에 ‘생수로 조리한다’는 공지 글을 올렸다. 서씨는 "손님들이 육수를 드셔야 하는 만큼 민감해 해서 당장 생수로 조리를 시작했다"며 "생수에 필터까지 비용은 10%정도 증가했는데, 외식 자체를 꺼리는 분위기라 매출은 20%정도 감소했다"고 했다.

서구 검암동에서 반찬가게를 운영하는 장영미(60)씨는 가게 문 앞에 ‘손주도 먹는 음식입니다. 안심하고 드세요’ 하고 큼지막하게 써 붙였다. 장씨는 기자에게 직접 생수로 반찬을 조리하는 모습도 보여줬다. 그는 "매일 오전 재료 손질을 시작하기 전에 수돗물 호스에 필터를 새로 갈아끼우고 있다"며 "3만원 짜리 필터가 약 4~5시간 정도면 갈색빛으로 붉게 변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매일 무거운 생수통을 나르느라 죽을 맛"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애를 쓰고 있지만 떨어지는 매출은 걷잡을 수 없다. 그나마 인근 학교들이 적수 사태로 급식을 중단해 도시락을 준비하는 엄마들의 발길 덕에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장씨는 "돈도 돈이지만 빨리 아이들이 걱정하지 않고 음식을 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정수기 물 대신 페트(PET)병 생수를 손님들에게 주는 식당들도 있었다. 서구 원당동 한 음식점. 이곳은 손님이 오면 1ℓ짜리 생수 1병을 냉장고에서 꺼내왔다. 주인 하영범(52)씨는 손님이 올 때마다 직접 생수병을 따서 컵에 물을 따라주고 있었다. 허씨는 "지난 3일 정수기 필터를 교체했는데도 손님들이 자꾸 불안해해서 아예 생수로 바꿔 버렸다"며 "음식점은 위생이나 신뢰를 잃으면 안되기 때문에 이렇게라도 고객들을 안심시켜야 한다"고 했다.

음료 파는 가게들 사정은 더 심각하다. 검단동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권윤정(38)씨는 이날 이틀 만에 가게문을 열었다. 지난 10일 적수 사태에 대한 공포가 치솟으면서 손님 발길이 뚝 끊겼다는 것이다. 권씨는 어쩔 수 없이 가게 문을 닫고서 이틀 동안 쉬었다. 다시 문을 연 권씨는 "생수로 만듭니다"라는 표지판을 내건 뒤, 생수와 수돗물이 아닌 별도로 구입한 얼음을 사용해 음료를 만들었다. 권씨는 "오전 매출은 평소 대비 반 토막 났다. 커피나 음료는 전부 물로 만들기 때문에 거부감이 더 큰 것 같다"며 "인천시나 정부 누구도 제대로 책임지지 않으려는 것 같아 화가 난다"고 했다.

◇"지금이 대목인데"…사태 장기화에 상인들 생계 ‘막막’
적수 사태는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인천시에 따르면 인천 서구와 중구 영종도 지역 적수 관련 민원은 지난 10일 1664건, 11일 1586건에 이르고 있다. 자영업자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도 사태가 길어지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적수의 원인도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정부합동조사반은 지난달 30일 서울 풍납취수장과 성산가압장 전기설비 법정검사를 할 때 수돗물 공급 체계를 전환하는 과정에서 내부 침전물이 떨어져 이같은 문제가 생긴 것으로 추정만 할 뿐이다. 정부 합동 조사반은 2주가량 서울 풍납취수장에서 인천 서구 가정집 수도꼭지까지 수돗물 공급 전 과정을 조사하며 적수 발생 원인과 수질을 확인하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생수지원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인천시는 지난 12일 적수 발생 지역에 특별교부금 5억원을 편성했지만, 아직 주민들에게 직접 지원이 이뤄진 것은 없는 상태다. 인천상수도본부는 "정확한 경위를 파악하기 위해 조사도 정부합동조사단에 일임한 상태"라며 "명확한 원인이 밝혀져야 주민들 피해에 대한 보상과 물 지원 협의도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인천=최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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