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조화환` 놓인 정문…교정 곳곳서 불만 터져나와
"공부 열심히 하고 싶어 온 게 무슨 잘못이냐"
"불과 0.39점 미달, 약 올린다는 느낌마저 들어"
전국각지 학부모 250여명 교육청 앞 집회도
20일 오후 1시쯤 전북 전주 상산고 교문에 ‘교육감은 우리학교 살려내라’라는 리본이 달린 근조화환이 놓여있다.(사진=신중섭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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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전라북도)=이데일리 신중섭 기자] “우리가 도대체 뭘 잘못해서 이런 결과가 나온 건가요. 제발 학교를 살려주세요.”
20일 오후 12시30분쯤 전라북도 전주시 상산고 교정 내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전북의 자부심, 상산고를 지켜 주세요`라는 플래카드가 걸린 교문 앞에는 `교육감은 우리학교 살려내라`는 리본이 달린 근조화환이 놓여 있었다. 이날 오전 11시 전북도교육청 발표에 따라 자율형사립고(자사고)인 상산고가 자사고 지정 취소 절차를 밟게 돼서다. 평가결과 상산고는 79.61점을 얻어 재지정 기준점(80점)에 0.39점 모자라 자사고 지위를 잃을 위기에 처했다.
교정에 들어서자 점심시간에 밖으로 나온 학생들이 운동장과 벤치 등에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학생들은 근심 가득한 얼굴을 한 채 “이번 평가는 부당하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대학입시 준비가 한창인 고3 학생들조차 재지정 결과 발표를 확인하기 위해 종일 스마트폰만 바라봤다고 했다. 운동장에서 만난 3학년 이진하 군은 “불과 0.39점 차이로 지정 취소가 됐다는 소식을 확인하는 순간 교실에선 `일부러 약 올리는 것 아니냐`는 소리가 터져나왔다”고 전했다. 2학년 박주원 양도 “평가결과 발표 후 4교시 내내 친구들과 평가 이야기만 했다”며 “선생님께서 재지정은 학교에 맡겨두고 우리들에게는 마음 쓰지 말라고 하셨지만 걱정되는 건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특히 상산고의 경우 전국에서 학생을 모집하는 전국 단위 자사고인 탓에 다른 지역에서 온 학생들의 상심이 컸다. 2학년인 구나현 양은 “잘 하는 게 딱히 없어 그나마 공부를 더 열심히 하려고 서울에서 이 곳까지 왔다”며 “춤 잘 추고 노래가 하고 싶은 학생들은 예고를, 과학을 잘하는 아이들은 과학고를 가는데 우리는 도대체 뭘 잘못해서 이런 결과를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울분을 토했다. 이어 “어른들은 우리를 정치적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 같다”며 “학교를 살려달라”고 호소했다.
지난해 2학기 서울 자사고인 이화여고에서 전학을 왔다는 2학년 조모 양은 “상산고 진학을 위해 면접을 거쳐 노력 끝에 전학을 왔는데 자사고에서 일반고로 전학 온 꼴이 됐다”며 “정말 슬프지만 잘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토로했다.
대다수 학생들은 평가의 부당함에 대해 앞다퉈 억울함을 표했다. 3학년 서종민 군은 “80점이라는 기준점수 자체가 말이 안된다고 생각한다”며 “시도교육청에 따라 어떤 곳은 70점이면 자사고가 되는데 우리는 무려 80점에 약간 모자르다는 이유로 일반고가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2학년인 심세원 양도 “79.61점이면 아마 평가를 받는 전국 자사고 중 가장 높은 점수일 것”이라며 “유독 높은 평가기준을 적용받은 우리 학교가 가장 큰 피해자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학생 뿐 아니라 교정을 오가는 교사들의 표정도 심란해 보였다. 교사들은 이번 결과 발표가 시험을 앞두고 있는 학생들의 공부에 미칠 영향을 염려하고 있었다. 한 교사가 동요하는 학생들을 다독이자 학생들은 오히려 “선생님 힘드시죠”, “선생님 힘내세요”라며 위로했다. 고3 서종민 군은 “재지정 진통을 겪어오면서 선생님들 뿐 아니라 학생들도 교육이나 학습 외적인 부분에 신경을 쓰게 됐다”며 “온전히 공부를 하고 싶다는 마음 밖에 없는데 교육청이 나서서 학습권을 침해한다는 생각까지 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상산고 학부모들도 이날 오전 9시부터 전국 각지에서 모이기 시작해 재지정 결과가 발표된 오전 11시를 기점으로 250여명이 전북도교육청 앞에 운집했다. 학부모들은 `전북 교육이 죽었다`는 의미로 도교육청 앞에 근조화환을 세우고 검정색 의상을 맞춰 입은 채 내리쬐는 햇볕 속에서 `부당한 자사고 평가 즉각 시정하라`라는 손피켓을 모자로 삼아 집회를 진행했다. 학부모들은 이날로 116일째 도교육청 앞에서 피켓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상산고 1·3학년에 두 아들이 재학 중이라는 정모(49)씨는 “일반고 바뀌게 된다면 학교와 교사 모두 일반고 교육과정으로 전환하는 데 행정적인 역량을 쏟아야 한다”며 “결국 일반고 전환 과정에서 학교는 학생 교육에 집중하지 못하게 되고 결국 피해를 보는 건 학생들”이라고 밝혔다.
집회를 마치고 학부모 회의를 위해 상산고로 이동하던 1학년 학부모 정현주(46)씨는 “이번 결과를 어느정도 예상은 했지만 입학한 지 불과 몇 개월 만에 이런 결과를 받게 됐다”고 씁쓸해 했다. 이어 “0.39라는 점수차를 듣고 헛웃음만 나왔다”며 “우리가 바라는 건 최소한 공정한 평가만 해달라는 건데 이번 결과는 유치원생이 봐도 공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상산고와 경기 안산동산고 등을 시작으로 올해 자사고 재지정 평가 대상인 전국 24개교의 평가결과가 잇따라 발표된다. 하지만 첫 타자라고 할 수 있는 상산고와 동산고 모두 지정 취소 절차를 밟게 되면서 시작부터 자사고 갈등이 격화하고 있다.
20일 오후 1시쯤 전북 전주 상산고의 교정. 점심 시간 교정을 걷고 있는 학생들(사진=신중섭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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