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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8 (목)

이슈 '미중 무역' 갈등과 협상

미국發 환율전쟁…대공황 탈출부터 중국 무역전쟁 도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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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미국 5달러(아래쪽)와 중국 100위안 지폐. 미국 재무부가 5일(현지시간)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전격 지정함에 따라 글로벌 환율전쟁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사진=로이터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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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꺼풀 벗긴 글로벌 이슈-232] 미국이 5일(현지시간) 중국을 전격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면서 무역전쟁이 환율전쟁으로 확산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틈만 날 때마다 다른 나라의 통화가치가 너무 낮다며 불만을 표출했다. 그런데 사실 미국은 자국 경제가 휘청일 때마다 달러 약세를 유도한 전력이 있다.

사상 최대 글로벌 경제위기라고 불리는 1930년대 대공황 시절 프랭클린 루스벨트 당시 미국 대통령은 경기 회복을 위해 달러가치를 대폭 절하했다. 먼저 1933년 4월 통화량 확대를 위해 금본위제를 이탈했다. 이듬해 1월 달러가치 절하를 단행해 온스당 20.67달러였던 금값을 35달러까지 끌어올렸다. 달러값이 무려 69%가량 떨어진 셈이다. 이 같은 조치로 미국 산업생산이 연간 10%씩 증가했다. 미국 상품의 수출경쟁력이 강화된 덕분이다.

다음번 미국이 주도한 환율전쟁은 1971년에 일어났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달러와 금을 바꿔주는 금태환의 정지를 선언한 것이다. 이 사건으로 '브레턴우즈 체제'가 무너졌다. 달러 신뢰도는 급락하고 금값은 폭등했다. 1971년 4월부터 1978년 10월까지 엔화와 마르크화 대비 달러값이 각각 39%와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후 미국은 급격히 성장한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 또다시 환율전쟁을 일으켰다. 1985년 9월 주요 선진 5개국(G5)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들은 뉴욕 플라자호텔에 모여 달러화 약세 유도에 동의했다. 이후 달러화는 엔화와 마르크화 등 주요 통화에 대해 큰 폭의 약세를 보였다. 플라자 합의는 달러 약세를 용인한 국제 공조가 이뤄진 결과다. 이 합의가 가능했던 이유는 세계 최대 경제국인 미국이 어려움을 겪으면 세계경제에 좋을 것이 없다는 인식이 깔린 덕분이었다.

일본의 미국 수출품 가격은 오를 수밖에 없었다. 엔화값이 높아진 만큼 수입품을 더 싸게 샀고, 해외 부동산 매수에 적극 나섰다. 하지만 시중에 돈이 넘쳐나면서 1980년대 후반 일본 경제는 거품 시대에 접어들게 됐다. 하지만 거품을 잡기 위해 일본 중앙은행이 금리를 올리자 부동산은 폭락하고 가격경쟁력이 없던 수출품이 창고에 쌓이면서 수많은 기업들이 도산했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이 시작된 것이다.

2008년 미국에서 발생한 금융위기는 한동안 잠자던 환율전쟁의 망령을 깨웠다.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로 시작된 경기 침체를 벗어나기 위해 미국은 달러화를 대량 살포했다. 통화량이 늘면서 기축통화인 달러값이 떨어졌고, 이는 전 세계적인 무역분쟁을 야기했다. 기두 만테가 브라질 재무장관은 2010년 미국의 양적완화로 신흥국 화폐 가치가 오르고 경제가 위기에 빠져들었다며 미국을 비난했다. 여기에 대응해 유럽과 일본도 경쟁적으로 금리를 낮추고 유동성을 확대했다. 이런 사례에서 보듯 지금까지 발생한 환율전쟁의 공통점은 모두 미국이 주도했다는 점이다. 대공황 이래 미국은 자국 경제 상황에 따라 달러화 가치를 올렸다 내렸다 한 것이다.

현재 미국의 타깃은 무역전쟁 상대방인 중국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이 위안화값을 조작하고 있다고 연일 주장하고 있다. 이제 달러당 위안화값이 7위안대를 넘어섰다. 달러당 7위안을 넘은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진행 중이던 2008년 이후 11년 만이다. 중국은 앞서 상대해야 했던 일본, 유럽 국가와는 상황이 현저히 다르다. 중국은 외환시장 개방을 최소화하고 있다. 중국은 플라자 합의 이후 일본과 같은 거품 붕괴를 경계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중국이 위안화를 대폭 절상하게 되면 수출 채산성이 악화된다. 이는 고용에 직격탄을 줄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중국은 현재 미국의 '환율조작국' 지정 공격에 강경 대응을 하고 있다. 중국은 위안화 약세를 계속 용인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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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가 끝난 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준은 이날 지난 2008년 12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년 7개월 만에 기준금리인 연방기금금리(FFR)를 기존 2.25~2.50%에서 2.00~2.25%로 0.25%포인트 내렸다. /사진=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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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 격화로 불확실성이 커지자 글로벌 경기 침체를 경계하는 신호음이 커지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를 포함한 수많은 국가들의 중앙은행들이 경기 부양을 위한 금리 인하를 단행하고 금융시장에서 불황 흉조가 감지되는 가운데 안전자산을 향한 투자자들의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미국과 독일 등 선진국 국채 수익률이 한없이 내려가고 있다. 국채는 가격과 수익률이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 대표적 안전자산인 금값도 6년여 만에 최고로 치솟았다.

[김덕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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