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칠 듯한 고성 없이도 충분히 공포를 만들 수 있다. ‘암전’은 비록 약간 삐끗하긴 했지만 등장만으로도 반가운 한국형 공포영화다.
‘암전’은 신인감독 미정(서예지 분)이 상영금지 된 공포영화의 실체를 찾아가며 마주한 기이한 사건을 그린 공포영화로, 해외 유수 영화제에서 작품성을 인정받은 ‘도살자’를 연출한 김진원 감독의 입봉작이다.
미정은 공포영화에 집착하는 인물이다. 내용은 모르겠지만 썩 괜찮은 단편영화를 찍은 후 장편영화를 내놓지 못해 쫓기듯 시나리오를 쓰고, 모티브를 찾아 나선다. 영화 초반부에는 감독으로서 성공에 대한 욕망이 미정을 움직이는 원동력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과거의 아픔이 현재 미정의 집념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다. 미정은 곧 자신의 아픔을 치환하기 위해 공포영화 만드는 행위에 집착하는 인물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영화 ‘암전’ 포스터 사진=TCO㈜더콘텐츠온 |
욕망과 집착에 휩싸인 인간은 멈추는 방법을 모른다. 미정도 재현(진선규 분)의 경고를 무시한 채 내달리다가 끔찍한 일을 경험한다. 이 가운데 공포영화이지만 관객을 깜짝 놀라게 하는 데만 몰두하지 않은 건 ‘암전’의 미덕이다. 두 인물, 그중에서도 특히 미정의 감정선 구축에 충분히 시간을 할애하고 공을 들여 자연스레 몰입도를 높였다. 이로써 인물의 그릇된 목표의식과 집착이 만나는 지점에서 오는 공포는 어느 귀신보다도 섬뜩하다는 걸 다시금 느끼게 한다.
감독은 미정이 타인과 대화할 때 정면샷을 주로 사용했다. 인물의 속내를 감추지 않고 오롯이 드러내는 장치다. 그럴 때마다 미정은 눈을 똑바로 뜬 채 제 목적을 말하고, 안경을 고쳐 쓰며 욕망에 한발자국 더 가까이 다가간다. 그렇게 욕망을 제어하지 못한 미정은 결국 재현의 길을 걷게 된다.
잘 가던 ‘암전’도 삐끗하는 순간이 있다. 후반부 본격적으로 귀신이 등장하면서 인간의 욕망이라는 테마와 귀신의 분위기가 이질감을 자아낸다. 인물의 감정에 기대어 이야기를 전개하다가 공포영화 같은 공포를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이라도 느낀 건지, 아쉬울 따름이다.
배우들의 열연은 나무랄 데 없이 빛난다. 서예지는 자연스러운 생활연기부터 장르적 연기까지 폭 넓게 넘나드는 배우라는 걸 다시 한번 입증했다. ‘암전’으로 첫 공포영화에 도전한 진선규 또한 안정감을 부여하며 맡은 바 역할을 충실히 소화한다. 15일 개봉. sunset@mkcultur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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