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유족과 일본 시민단체 모여 관람 뒤 ‘관객과의 대화’
“최근 일본의 경제보복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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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2월, 강화도에 살던 이희자(76)씨의 아버지는 일본군에 강제동원됐다. 이씨가 갓 돌을 지날 무렵이었다. “빨리 돌아오겠다”며 집을 나선 아버지의 소식은 해방 뒤에도 들려오지 않았다. ‘태평양전쟁피해자유족회’ 활동을 하며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 헤맨 이씨는 1997년에서야 아버지가 일본의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된 사실을 알아냈다. 강제동원 피해자인 아버지가 일본 천황을 위해 목숨 바친 ‘신’으로 모셔졌다는 사실에 이씨는 분노했다. 그로부터 23년 뒤인 현재, 이씨는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보추협) 공동 대표가 돼 야스쿠니신사에 합사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명예회복을 위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15일 오후 2시께 서울 용산구 식민지역사박물관에서 야스쿠니 신사에 묻힌 이씨 아버지 위패의 합사 취하 소송을 다룬 영화 <안녕, 사요나라> 상영회가 열렸다. 광복절을 맞아 박물관에 온 시민 20여명이 상영회를 찾았다. 식민지역사박물 영화의 주인공인 이씨와, 이씨와 함께 일본에서 강제동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온 야노 히데키(69) 일본 ‘강제동원 문제해결과 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 사무국장이 관객과의 대화를 위해 자리했다.
영화 <안녕, 사요나라>는 야스쿠니 신사와 일본 정부를 상대로 아버지의 야스쿠니 신사 합사 취하 소송을 하고 있는 이씨와 피해자들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다. 이씨를 포함한 유족들과 피해자들은 2001년, 2003년, 2013년 일본 법원에 일본 정부와 야스쿠니신사를 상대로 무단 합사를 철폐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피해자들이 소송을 제기하면 돈 문제로만 보는 것 같다”며 위자료는 1엔을 청구했다. 하지만 번번이 기각되거나 패소했다. 일본 재판부는 “일본 정부는 종교시설(야스쿠니신사)에 관여할 수 없다”는 논리를 펼쳤다.
이씨는 관객과의 대화에서 “일본은 자신만의 논리로 합사를 강행하고 강제동원 문제도 사과하지 않고 있다”며 “그럴수록 포기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씨는 “전쟁에 끌려간 조선 청년 수만명이 ‘일본 천황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며 신사에 모셔진 상태다. 심지어는 전쟁에서 살아남은 이까지 합사됐다”고 말했다. 이어 이씨는 지난해 대법원이 원고 승소로 결론 지은 ‘신일철주금’과 ‘미쓰비시중공업’ 강제동원 판결을 언급하며 “(일본이 잘못을 인정하지 않아도) 포기하지 않아야 이긴다”고 강조했다. 이씨는 “강제동원 피해 할아버지들이 생전에 ‘일본은 우리가 죽고 그만두는 것을 바라니 절대 포기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그 뜻을 이어가야 한다”며 “최근 일본의 경제보복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씨는 지금껏 일본을 상대로 한 재판을 이어올 수 있었던 힘에 대해 양심적인 일본 시민들의 도움을 꼽았다. 이씨는 “일본분들이 재판을 안 도와줬다면 우리도 그만뒀을 것이다. 그런데 그분들이 끝까지 피해자들을 도우니 우리도 감사한 마음에 지치지 않을 수 있었다. 많은 이들이 함께 해줘 외롭지가 않다”고 말했다.
히데키 사무국장은 한국인 피해자와 일본 시민들의 이런 연대에 대해 “거대 기업을 상대로 힘 없는 사람들이 오랜 기간 투쟁해오고 있다”고 평했다. 히데키 사무국장은 “미쓰비시처럼 코끼리 같은 기업을 상대로 힘이 없고 작은 사람들이 30년 가까이 투쟁을 했다.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수차례 재판을 하는 어려운 길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지난해 승소판결까지 얻어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일본의 경제 보복을 언급하며 “일본은 두렵고 조급한 마음으로 경제 보복을 하고 있다. 이 또한 어려운 상황지만 강제동원 피해자가 살아있는 동안 싸우면 이 상황을 돌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고 강조했다.
충청남도 천안시 ‘망향의 동산’엔 이씨 아버지의 비석이 있다. 이름을 포함해 어떤 것도 적혀있지 않은 ‘백비’다. 이씨는 이날 언제 이름을 새길 것이냐는 <한겨레>의 질문에 “야스쿠니 신사에서 아버지의 이름을 빼 오는 그날 이름을 비석에 새기겠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이 땅의 젊은이들이 슬기롭게 문제를 해결해나가 한일 간 평화를 가져와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관객과의 대화 자리를 찾은 고등학생 김민주(17)씨는 “수십년 간 싸워오신 것에 감사하다. 앞으로는 저희 10대가 활동을 이어나가겠다”고 화답했다.
김민제 기자 summ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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