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교 인하대 교수는 “일본이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하면 앞으로 다양한 수출 품목을 언제든 심사할 수 있도록 해 놓고 서류 미비 등을 이유로 수출을 금지할 수 있게 된다”며 “언제든 한국을 칠 수 있는 ‘통상 무기’를 장착하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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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경제전쟁이 격화한 이상, 대일 의존도를 낮추고 기술독립을 이루는 것은 불가피한 과제가 됐다. 기업은 핵심 소재를 국산화하기 위한 기술개발에 나섰고, 정부 역시 소재·부품·장비산업의 국산화 제고와 국내 수요·공급 기업 간 긴밀한 협력을 지원하는 데 전방위적인 정책적 지원을 쏟고 있다.
정부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자동차, 전기전자, 기계금속, 기초화학 등 6개 분야 100대 핵심 품목을 국산화에 나서기로 했다. 고순도불화수소 등 안보상 수급 위험이 큰 20대 핵심 품목은 1년, 자립화에 시간이 필요한 80대 품목은 5년 내 공급을 안정화하는 것이 목표다. 핵심 기술 확보를 위한 R&D(연구개발) 투자도 활성화한다.
하지만 정부 대책이 당장 ‘발등의 불’을 끄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우려가 팽배하다. 정부가 대규모 예산을 쏟아 부어도 단기간에 주요 산업 핵심 소재·부품, 장비산업 경쟁력을 높이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해 대일 무역적자 241억달러 중 소재, 부품, 장비 적자가 224억달러로 대부분을 차지한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이 조사한 결과 51.6%가 일본 수출통제 조치가 경영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응답했다고 밝혔다. 일본의 수출규제로 인한 국내 대기업의 매출액 감소율은 평균 2.8%로 전망됐다. 영업이익도 평균 1.9% 감소할 것으로 예상됐다. 유환익 한경연 상무는 “설문조사 결과대로 영업이익이 1.9% 감소할 경우 1000대 기업의 평균 영업이익률이 5.3%임을 감안할 때, 업종에 따라 일부 기업들의 적자전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일본의 경제보복 악재로 당초 2%대 초반으로 예상되던 한국 성장률이 2% 아래로 떨어질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일본 수출규제로 한국의 올해 국내총생산(GDP)이 0.27~0.44% 감소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일본의 금융 보복 조치는 잠재적 위협이다. 금융당국은 일본이 금융 보복 조치에 나서더라도 당장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시장 일각선 장기화될 경우 파장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며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일본의 보복 조치가 장기화될 경우 국내 시중은행들의 외화차입 차질-국가 신용등급 하락-해외 기관투자가 자금 이탈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국내 시중은행들이 외국에서 신용이 약해 그동안 일본 시중은행들이 신용장에 보증서를 많이 써줬는데 이를 중단할 경우 충격파가 있을 수 있다. 우리 금융시장이 아직 변방인 만큼 한일 경제전쟁, 미중 무역분쟁 등 글로벌 위기감이 높아질 경우 가장 먼저 자금이탈이 나타날 수도 있다. 이에 대해 금융당국은 증권시장 및 대출에서도 일본 자금의 의존도가 높지 않다고 반박한다. 주식·채권 시장 전체 외국인자금 중 일본 비중은 각각 2.3%(13조원·6월 말 기준), 1.3%(1조6000억원)다. 대출은 2018년 말 국제투자대조표 기타투자 중 일본 비중은 6.5%(118억달러·약 13조6000억원)로 나타났다.
또한 국내은행의 일본계 외화차입금이 약 10조6000억원(6월 말 기준)으로 전체 외화차입금의 6.6% 수준으로 건전성에 문제없다고 평가한다. 외화여유자금 역시 3개월 내 만기가 도래하는 차입금보다 약 4조3000억원(37억달러) 많다.
문재인 대통령이 전북 전주시 효성첨단소재㈜ 전주공장에서 열린 탄소섬유 신규투자 협약식이 끝난 뒤 박전진 효성첨단소재 공장장의 설명을 들으며 기존 생산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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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이번 일본 경제보복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 산업 현주소를 점검하고 각종 경제정책, 규제를 대수술해 한국 경제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의미다.
홍성국 전 대우증권 사장은 “전 세계적으로 보호무역이 득세하고 있다. 한일 양국도 완전히 돌아가는 건 어려울 것 같다. 현재 내놓은 정부의 지원책은 바람직하다. 장기적으로 국내기업에 필요한 부분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아베가 알려준 셈”이라며 “일왕 즉위, 도쿄 올림픽, 미국대선 등 이벤트가 이어지기 때문에 연말연초가 되면 극단적인 국면에 변화도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도 중장기적으로 일본과의 관계 회복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성태윤 교수는 “정부의 경제 부문 대응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번 사안은 결국 일본과 관계를 회복시켜 해결해야 할 문제”라며 “국제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소재·부품·장비 산업을 육성하는 것은 의미가 있지만 일본을 대체한다는 개념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단기간에 이 분야에서 국제경쟁력을 확보하기는 어렵다. 일시적으로 지원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일본 수출규제 대응을 포함, 우리 경제 전반의 활력을 높일 수 있는 방안 마련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높다. 정부가 여전히 우리 경제를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보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KDI의 한 관계자는 “일본 수출규제가 성장률에는 바로 영향을 미치지는 않겠지만 그렇잖아도 2%대를 위협받고 있던 상황이었던 만큼 정부에서 성장정책에 좀 더 방점을 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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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일과 관련한 아세안 활용법과 관련해 전문가들은 상호호혜적 입장에서 아세안을 바라보고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박번순 고려대 교수는 “아세안을 경제적인 측면보다 상생의 입장에서 더 바라봐야 한다. 아세안이 원하는, 우리가 어떻게 전자, 자동차 등의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앞설 수 있는지 그런 노하우에 대한 기대를 충족시켜 주는 방향이 맞다고 본다”고 강조해다. 아세안의 기업을 성장시켜 우리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나가자는 것이다.
지소미아 파기… 日 수출 제한 추가 확대 가능성
직격탄 염려되는 국내 산업은?
일본이 안보상 우호국 명단인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하며 타격을 입을 수 있는 산업이 반도체·디스플레이에서 전방위적으로 확산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면 무기로 전용될 우려가 있는 ‘전략물자’ 1100여 개 품목이 포괄허가에서 일일이 허가를 받아야 하는 ‘개별허가’ 대상으로 바뀐다. 일본 의존도가 높고 산업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반도체를 첫 타깃으로 삼은 만큼 추후 한국경제에 당장 타격을 줄 수 있는 품목부터 규제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미래 먹거리 산업으로 주력하는 전기차나 일본 의존도가 높은 화학, 정밀기계, 반도체·디스플레이 등이 타깃이 될 수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제출한 서면 질의 답변서에서 “화이트리스트 제외가 현실화되면 수출제한대상이 확대될 우려가 있다”며 “추가 보복에 대해 발생 가능한 모든 경우를 염두에 두고 관계 부처가 긴밀히 공조해 철저히 대비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반도체·디스플레이 단기간 내수화 어려워
가장 피해가 예상되는 분야는 역시 IT, 반도체다. 지난 7월 초 제재 대상에 포함된 3개 품목 이외에도 웨이퍼, PR, 반도체 공정장비, 패키징용 부품 소재 등은 일본 의존도가 절대적으로 높고 단기간 대체가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일본이 수출을 통제할 경우 생산에 차질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고 한두 가지 소재라도 공급 차질이 발생하면 생산 자체가 불가능해질 수도 있다. 반도체 생산에 문제가 발생하면 국내 반도체 업체 매출에도 연쇄적으로 차질이 불가피하다.
디스플레이 분야 역시 OLED 증착용 마스크, 증착 장비, 식각 장비는 일본 의존도도 높고 단기간 대체가 어려운 분야로 꼽힌다.
다만 수출규제를 강하게 할 경우 미국·유럽 등 세계 IT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우려가 높아 단기적으로 일본의 수출 통제 강화의 영향이 있지는 않을 것이란 예측이 힘을 얻고 있다. 국내 메모리반도체업체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디램은 72.3%, 낸드는 45.1%에 달하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메모리 제품 양산에 차질을 발생시킬 정도로 관련 수출품의 제재를 강화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 국내 메모리 및 반도체 산업의 성장에 부정적 영향을 줄 가능성은 높다. 반도체업체들이 일본 의존도가 높은 실리콘 웨이퍼, 포토레지스트, 전공정 장비 등의 대체 공급업체를 단기간에 대체하지 못할 경우 일본에서 공급을 통제하는 방식으로 우리나라 반도체 기업의 차세대 기술, 공정 개발 및 증설 투자 등을 제한할 가능성이 있다. 이럴 경우 장기적으로 국내 반도체산업의 경쟁력이 약화되고 성장성이 둔화될 위험이 있다.
디스플레이 분야에서도 일부 장비는 단기적으로 대체가 쉽지 않아 향후 국내 패널업체들의 설비 투자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대표적인 장비가 디스플레이용 노광장비로 일본의 니콘과 캐논이 과점하고 있는 장비다. LCD뿐만 아니라 OLED 생산에도 반드시 필요한 장비이기 때문에 향후 국내 패널업체들이 중소형 및 대형 OLED 증설투자 시 공급이 원활치 않을 경우 투자에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자동차 부품 의존도 높지만 사이클 길어 내수화 가능해
차량 제조는 규제의 영향에서 자유롭지만 기계 설비는 장기화될 경우 차질이 예상되는 분야로 꼽힌다. 자동차 산업의 영향은 차량 제조, 기계 설비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차량 제조의 경우 일본부품 사용 비중이 낮아 영향이 거의 없다. 지속된 자동차부품 국산화 노력으로 내연기관차 부품 국산화율은 1980년대에 이미 90% 도달했으며 현재는 95% 이상이기 때문이다. 나머지 5%에서도 일본 비중이 제한적이며 이 또한 5년마다 신모델이 출시되는 점과 부품납품 경쟁이 치열하고 멀티 벤더를 운영하는 업종 특성상 장기적으로 대체 가능하다.
의존도가 높은 부품도 사이클상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5년마다 신모델이 출시되는 신차 사이클 특성상 단기 부품 대체는 어렵지만 중장기적으로 대체 가능하기 때문이다. 현대차의 경우 수소탱크 제작에 필요한 카본섬유를 일본업체를 통해 공급 받고 있지만 공장이 한국에 위치하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이 발행한 ‘탈(脫)재팬: 코리아 리쇼어링’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산 원료를 다변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여 영향은 제한적으로 관측된다”며 “쌍용차와 르노삼성이 핵심부품인 변속기를 일본에서 수입 중이지만 해당 부품은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되어 관계가 없다”고 설명했다.
한편 차량용 반도체의 경우 국산 반도체 사용량이 적고 일부 사용부품도 6개월가량의 재고가 남아있어 현재 화이트리스트 배제에 따른 영향도 적은 편이다. 친환경차의 경우 배터리 소재가 단기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 대체가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소차의 경우 수소탱크에 쓰이는 카본섬유의 원소 재가 일본산이 많으나 생산공장(도레이)이 한국에 위치하고 있고, 조달처를 다변화할 수 있기 때문에 영향이 크지 않다.
반대로 한국의 주력 수출품에 비관세장벽을 세울 가능성도 점쳐진다. 일본은 우리나라 농식품과 수산물의 최대 수출 시장이다. 특히 지난해 파프리카 수출액 가운데 일본 비중은 99%에 달했다. 현지 언론은 최근 일본 정부가 반도체 소재에 이어 한국 농식품을 추가 규제 품목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김병수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08호 (2019년 9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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