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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9 (목)

김영란 전 대법관 “계층이동 사다리 막아선 안돼…좌절감 완화 제도 만들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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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과 정의’ 출간 기자간담회

삼성 X파일·PD수첩 광우병 보도…

‘정치적 판결’ 고찰하는 책 펴내

“판사들, 결론 올바른가 질문해야”

‘기득권 세습화’에도 의견 표명

“개천서 용 나는 사다리 있어야”

조국 장관 자격 논란엔 말 아껴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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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와 ‘양승태 대법원’을 거치며 사법부와 정치의 포개짐이 격렬한 사회적 파장을 낳은 가운데, 한국의 첫 여성 대법관인 김영란(63·대법원 양형위원회 위원장) 아주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가 새 책 <판결과 정의>(창비)를 펴냈다.

17일 서울 중구 정동의 한 음식점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판결의 ‘정치성’을 언급했다. “정치적 판결이 전혀 안 생길 수는 없습니다. 삼성 엑스파일 사건, 피디(PD)수첩 광우병 보도 사건 등은 정치적인 판결이었습니다. 그런 정치적 판결은 왜 생기며, 판사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또 삼권분립과 관련해서도 문제의식을 가지고 책을 쓰게 됐습니다.”

1981년부터 2010년까지 꼬박 29년을 법원에서 일한 그는 이번 책에서 대법관 퇴임 후 선고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중 성희롱 교수의 해임결정 취소 소송, 가습기 살균제 사건, 강원랜드 사건, 키코(KIKO) 사건, 삼성 엑스파일 사건, 피디수첩 광우병 보도 사건 등을 통해 가부장제, 자유방임주의, 과거사 청산, 정치의 사법화 등 쟁점을 분석한다. 판결을 할 때 판사들이 오로지 법리만으로 판단하는 것이 가능한지, ‘대법관들이 자신에게 허용된 자유를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살핀 대목이 돋보인다.

“(판사들은) 정치적 판결을 일반 사람들 이상으로는 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판사들은 법조문을 해석하는 훈련을 몇십년 동안 받고 99.9%는 그렇게 법리적으로 판단합니다. 그러나 때론 정치적 관점에 따른 선택을 했을 때 그 결론이 올바른가 질문만 해도 좀더 나은 판결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한겨레

김 전 대법관은 ‘정치적’ 판결에 대해 “예민한 이념적 갈등이나 대립하는 정치적 문제에서 결국은 정치적 편향의 틀로 갈릴 뿐이라는 얘기를 책에 썼다”며 “우리 얘기가 아니라 미국 사례인데, 미국 연방대법원과 우리가 비슷한 모습”이라고 말했다.

이용훈 대법원장이 취임한 뒤 대법원이 시도한 ‘과거사 청산’이 용두사미에 그치고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대법원이 과거사 문제를 아예 덮어버리는 ‘정리’의 수순을 밟으면서 커다란 한계를 낳았다고 그는 보았다. “과거사 청산에 대해 쓰는 게 가장 어려웠습니다. 다른 나라 사례를 통해 우리가 어떻게 했어야 하는가 생각을 하면서 대법원 판결에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썼습니다. 법리적 오류를 지적하고 싶었는데 힘들고 어려웠습니다.”

최근 우리 사회의 뜨거운 화두가 된 기득권의 세습화 문제로 판사 사회 역시 상류층의 독식이 되어가고 있으며 이들이 내리는 판결도 한계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지적에 대해 김 전 대법관은 “(판사들에게) 당신들이 어릴 때부터 쌓아온 지식 외에 좀더 넓고 깊게 생각하는 시각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이 책의 목적이기도 했다”고 밝혔다. 그는 “개천에서 용 나는 게 어려워지는 사회는 발전 없는 사회라는 데 동의하며 개천에서 용을 나게 하는 사다리를 걷어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판사 선발 제도에서도 (계층 이동의) 사다리를 막아버리는 것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이 고학력 사회이고 계층 이동이 쉬웠기에 최근 그만큼 좌절감도 많이 느낄 텐데, 그것이 우리 사회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 좌절감을 완화하고 열망을 실현하도록 제도를 구성해가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이날 조국 법무부 장관의 자격 문제를 둘러싼 여론과 대입제도개편공론화위원회 위원장 경험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으나 김 전 대법관은 사안의 민감성을 고려해선지 말을 아꼈다.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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