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한국을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과 경기 파주시 캠프 보니파스 북쪽의 최북단 ‘오울렛 초소’를 찾아 북한 쪽을 살펴보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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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둘러싼 한국과 미국 간 갈등이 양국의 공고한 신뢰관계에 균열을 가져 왔다고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가 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최근 미국의 일방적인 시리아 철군에서 보듯, 철저히 이해득실을 따져 접근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거래식 동맹관’이 미국을 향한 믿음에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것이다.
신문은 이날 서울발 기사를 통해 난항을 겪는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협상(SMA)으로 인해 한국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역할과 위상을 재평가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전했다. 현재 미국은 기존 방위비 분담금(1조389억원)의 5배가 넘는 50억달러를 한국에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표적인 게 보수진영 일각에서 제기되는 핵무장론이다. 원유철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난달 한 토론회에서 “주한미군이 갑자기 철수하면 핵우산이 사라질 것”이라며 “유럽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식 핵 공유처럼 한미연합사령부의 핵보유를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원 의원은 핵무장의 이유로 ‘트럼프 리스크’를 지목했다. 예측 불가능한 지도자인 트럼프라면 진짜 미군을 한국에서 빼낼 수도 있다고 보고 우리도 북한 핵ㆍ미사일에 맞서는 핵억지력을 갖춰야 한다는 논리다. 트럼프는 지난해 싱가포르 제1차 북미정상회담 이후 북한 비핵화의 반대 급부로 주한미군 철수, 한미연합훈련 중단 가능성 등 ‘폭탄 발언’을 해 한국 보수층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이처럼 ‘동맹도 거래에 의해 유지된다’는 트럼프의 외교철학은 방위비 증액 집착으로 이어졌다. 그는 2년 간 한국을 “매우 부유한 국가”로 지칭하면서 주한미군 2만5,500명을 먹여 살리는 비용으로 한국 정부가 너무 적은 돈을 지불한다고 지속적으로 불만을 표출했다. 고위 외교안보 관리들이 ‘주한미군의 존재 자체가 미국의 전략적 이익에 큰 역할을 한다’고 설득해도 “한국이 공정한 부담을 져야 한다”는 트럼프의 생각을 바꾸지 못했다. 그는 2010년 한국 측이 급여, 물류비용 등을 포함해 주한미군 유지비의 절반 이상을 부담했는데, 지난해 비중이 41%까지 떨어졌다는 점을 방위비 증액 논거로 내세웠다. WP는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이 미군에 토지를 무상 임대하고 △미군 전략자산을 유지하는 데 연간 수십억달러를 소비하며 △미군기지 평택 이전 비용(110억달러)의 92%를 부담했다는 사실은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더 큰 문제는 6ㆍ25전쟁 때 함께 싸우며 단순한 우방을 뛰어넘은, 두 나라의 ‘혈맹관계’가 훼손되고 있다는 점이다. 피로 맺어진 사이라는 인식이 강해 아직까지 미군 주둔을 지지하는 한국 내 여론이 높지만, 그렇다고 부당함을 감수할 만큼의 거래를 선호하는 한국인은 거의 없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 비핵화 협상에 성공해 주한미군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미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빅터 차 한국석좌는 “한미가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 실패할 경우, 트럼프는 ‘좋다, 나는 북한과 거래를 했고 한국은 더 많은 돈을 내지 않으려 한다. 그러면 미군을 빼내거나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빈센트 브룩스 전 한미연합사령관은 “백악관과 청와대가 방위비 협상에 깊숙이 개입하면서 과거보다 ‘정치적 청구’ 성격을 띠게 됐다”며 한미관계의 긴장감이 높아졌다고 평가했다.
김이삭 기자 hir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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