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순환배치·연합훈련 비용 등
항목 신설해 50억달러 증액 요구
정부 “합리적·공평한 분담을” 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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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11차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 체결을 위한 협상에서 주한미군 순환배치와 한-미 연합훈련에 드는 비용을 비롯한 ‘새로운 항목’을 제시하며 50억달러에 육박하는 금액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기존 협정의 틀을 깨고 새 항목을 만들어 한국의 부담 액수를 크게 늘리려는 것이다. 지난해부터 시작한 해외 주둔 미군의 방위비 분담금 ‘글로벌 리뷰’를 마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일본, 독일 등과 협상을 하기에 앞서 한국을 방위비 대폭 인상의 ‘본보기’로 만들려 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7일 정치권 핵심 관계자는 <한겨레>에 11차 방위비 협상과 관련해 “미국이 ‘창의적인 것’을 강조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여기서 창의적이라는 것은 기존 방위비 협정 범주를 벗어나, 항목을 추가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도 이날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의 전체회의에서 미국이 “협정을 벗어나는 요소를 요구하는 것은 맞다”며 “(요구 사항 중에) 많은 새로운 요소들이 있다”고 말했다. 현재 방위비 협정에 규정된 한국의 분담 항목은 주한미군에서 일하는 한국인 노동자 인건비와 군사건설비, 군수지원비로 묶여 있다.
새로운 항목에는 주한미군의 순환배치와 한-미 연합훈련 비용 등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진다. 주한미군은 미국의 ‘신속기동군화’ 전략에 따라 육군과 공군의 일부 부대 병력이 6~9개월 단위로 본토 병력과 순환배치된다. 지금까지는 이에 따른 비용을 미국이 전담했지만 앞으로는 한국도 분담하라는 것이다.
미국은 또 한-미 연합훈련 때 미군 병력이 본토 등지에서 증원될 때 발생하는 비용도 한국이 분담하라고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주한미군에서 근무하는 미국 군무원 및 가족 지원 비용도 분담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주한미군 병력에 대한 직접적인 인건비까지 요구액에 포함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이에 대해 한국 정부는 기존 협정의 틀을 유지하면서, 국민이 수용할 수 있는, 합리적인 수준의 공평한 방위비 분담을 한다는 원칙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방위비 분담금의 평균 증가율이나 국방비 증가율, 경상비 상승률 정도가 한국 정부가 고려하는 합리적 인상 기준에 포함될 수 있다.
제임스 드하트 미 국무부 방위비분담협상 대표를 비롯한 미국 쪽 협상 관계자들이 이달 중 서울에서 열리는 3차 회의와는 별개로 5일부터 한국을 이례적으로 방문한 것도 미국이 자신들의 논리를 적극적으로 설명하며 한국을 압박하려는 목적이라고 볼 수 있다. 미 대표단은 한국이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있는지 등 국회 쪽 반응, 기류를 파악하는 데 주력했다고 한다.
드하트 대표는 정치권 인사들을 만나 이번 방위비 협상이 큰 틀에서 ‘트럼프의 큰 그림’이라는 취지로 이야기하고, 구체적으로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를 언급하며 ‘한국은 물론 다른 나라에도 같이 요구할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드하트 대표는 ‘한국이 지금까지 (미국의 지원을 받는) 시혜국이었지만 이제는 한국이 (한반도 방어를 위한 비용 분담에) 기여해야 한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미국은 이번 협상에서 내년부터 한국이 부담할 분담금으로 50억달러(약 6조원)에 육박하는 금액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올해 부담액 1조389억원의 6배에 이르는 액수다. 외교 소식통은 “현실적으로 미국이 한-미 동맹과 대한민국 방어를 위해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다 들고 올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반도 안이든 밖이든 한국 방어를 위해 미국이 실시하는 각종 군사행위들에 대한 비용을 청구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와 관련해 6일 드하트 대표를 만난 윤상현 자유한국당 의원은 미국이 요구하는 총액과 관련해 “정확한 액수는 얘기 안 하지만 그 정도로 많은 액수로 보인다”며 “한반도 주한미군 주둔 비용뿐 아니라 한반도 안보 공약 이행을 위한 역외 전략자산 등에 대한 비용도 다 합쳐서 부른 금액”이라고 전했다.
미국은 지난해 이뤄진 10차 협정 체결을 위한 협상에서도 ‘전략자산 배치’ 등을 포함한 ‘작전지원’ 항목 신설을 요구했지만, 한국 쪽의 반대로 최종 협정문에 반영되진 않았다. 하지만 이번 협상의 경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대폭 인상’을 지시하고 특별한 관심을 보이는 만큼 한국 정부가 이런 입장을 계속 지켜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날마다 협상 관계자들한테 방위비 협상과 관련해 진전된 사항이 없는지를 재촉하며 묻는다고 한다.
하지만 주한미군이 한국에 주둔하면서 드는 경비 외에 다른 비용까지 한국한테 분담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주한미군지위협정(SOFA·소파) 규정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온다. 드하트 대표를 만난 민홍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미국에 ‘한-미 동맹이 흔들려선 안 된다, ‘양국 헌법과 국회법에 의해 원칙적으로 정리돼야 한다’, ‘국회가 승인할 수 있는 정도의 인상, 국민이 승인할 수 있는 정도가 돼야 비준이 될 것이다’라는 세가지 대전제를 강조했다”며 특히 “소파 근거 규정을 벗어나면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미국 쪽은 방위비 협정 자체가 소파와 관련이 없다는 취지로 이야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민 의원은 “우리는 방위비 협정이 소파에 근거한다고 생각하고, 저쪽(미국)에서는 예외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미국의 무리한 요구가 전해지면서 이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7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석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강경화 장관에게 “합리적인 정도의 인상이 아니면 국회 비준이 어렵다는 점을 미국에 주지시켜달라”고 말했고, 윤상현 외통위원장은 “내년에 올해의 5배로 인상이 된다면 국민 정서상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 이런 식으로 하면 한-미 동맹이 결국 비즈니스 거래가 되고 주한미군은 용병이 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정현 무소속 의원도 “이러한 급격한 요구는 저와 같은 동맹 지지 세력조차도 상당히 실망스럽고 절망스러워 반감까지 생길 수 있는 수준”이라고 했다.
노지원 서영지 김미나 기자 z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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