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미국 의회가 홍콩 인권법안을 통과시킨 후 중국 정부는 전국인민대표대회, 국무원 등 정부 기관을 총동원해 미국을 비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 정부의 보복 예고에도 법안에 서명하면서, 1단계 합의를 앞둔 것으로 알려진 미·중 무역 협상에도 영향이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 외교부는 28일(중국 시각) 오전 외교부 웹사이트에 올린 성명에서 "오늘 미국 측이 소위 ‘홍콩 인권과 민주 법안’에 정식 서명한 것은 홍콩 사무에 대한 심각한 개입이자, 중국 내정간섭, 국제법과 국제관계 기본규범 위반"이라며 "중국 정부와 인민은 (미국의) 노골적인 패권 행위에 결연히 반대한다"고 했다. 성명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이름은 언급되지 않았다.
9월 8일 홍콩섬에 있는 홍콩 주재 미국 총영사관 근처에서 홍콩 시민이 미국 국기 성조기를 들고 미국 의회에 ‘홍콩 인권과 민주주의 법안’ 통과를 요청했다. /김남희 특파원 |
외교부는 미국이 사회 질서를 해치는 폭력범죄분자를 지지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폭력범죄분자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이달 초 국제회의인 브릭스(BRICS) 정상회의에서 홍콩 시위대를 일컬어 쓴 표현이다.
외교부는 일국양제(한 국가, 두 체제) 방침을 관철하고 국가 주권과 발전이익을 수호하는 중국의 결의는 확고부동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미국을 향해 "제멋대로 굴지 말라"며 "그렇지 않으면 중국은 반드시 단호히 반격할 것이고 그에 따라 생기는 일체 결과는 미국이 감당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홍콩 정부도 미국이 홍콩 인권법을 법률로 제정한 것에 강력히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홍콩특별행정구 정부는 "미국이 법으로 만든 ‘홍콩 인권과 민주 법안’과 또 하나의 법안은 홍콩의 내부 사무에 대한 명백한 관여로, 이는 불필요할뿐 아니라 이치에 맞지도 않고 홍콩과 미국 간 관계와 이익을 더 해칠 수 있다"고 했다.
홍콩 정부 대변인은 "두 법안 모두 시위대에 잘못된 메시지를 줘 홍콩 정세를 완화하는 데 도움이 안 된다"고 했다. 또 "미국이 홍콩에 대한 경제무역 정책을 일방적으로 바꾸는 것은 양자 관계와 미국의 이익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며 "홍콩에 대한 경제무역 정책과 원칙을 유지하고 개별 관세지구로서의 홍콩의 지위를 계속 존중하라"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9년 6월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주요 20국) 정상회의에 참석해 인사를 나누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
중국 정부의 홍콩 주재 연락판공실과 중국 국무원 홍콩·마카오 사무판공실도 잇따라 성명을 내며 미국에 대한 반격을 예고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대응 조치를 할 것인지는 언급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주 미 상·하원이 홍콩 인권법안을 통과시킨 후에도 법안에 서명할지를 두고 모호한 태도를 보였다. 중국과 1단계 무역 합의를 위해 막판 협상을 벌이는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이 가장 민감하게 여기는 ‘홍콩 카드’를 어떻게 활용할지 고심하고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야당인 민주당이 대통령 탄핵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의회에서 거의 만장일치로 통과된 법안을 거부하기 어려웠을 거란 해석도 나온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이 서명한 홍콩 인권법안은 미 국무부가 매년 홍콩의 인권과 자치 수준을 심사해 미국이 홍콩에 부여하고 있는 특별지위를 유지할지 결정하고 의회에 보고하도록 했다. 홍콩의 인권 보호·자치 수준이 낮다고 판단할 경우 홍콩에 대한 무역·금융·투자 우대 혜택을 낮추는 내용이 담겼다. 홍콩의 인권과 자유를 억압한 사람에 대해 미국 비자 발급을 금지하고 미국 내 자산을 동결하는 제재도 담겼다.
중국 정부는 1997년 홍콩이 영국에서 중국으로 반환된 당시 홍콩에 50년간 ‘높은 수준의 자치’를 허용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미국 정부가 법으로 홍콩의 특별지위를 인정하는 근거가 됐다. 미국 무역대표부 집계에 따르면, 미국은 지난해 홍콩과의 교역에서 338억 달러 흑자를 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기업이 홍콩 경찰에 최루탄, 고무탄 등 시위 진압 군수품을 수출하지 못하게 한 별도 법안에도 서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법안 서명과 관련해 낸 성명에서 "중국 시 주석과 홍콩인을 존중해 이 법안들에 서명했다"며 "중국·홍콩의 지도자와 대표들이 서로의 차이를 평화적으로 해결해 장기적인 평화와 번영으로 이어지게 하자는 바람에서 법이 제정됐다"고 했다.
중국 관영 매체들도 미국 맹공에 가세했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미 의회가 지난주 홍콩 인권법안을 통과시킨 후 전국인민대표대회를 포함한 7개 중국 정부 기관이 미 의회를 규탄했는데, 미 정부가 결국 중국 정부의 경고를 무시했다"고 했다.
글로벌타임스는 트럼프 대통령의 법안 서명은 양국 무역 협상을 복잡하게 만들 것이라고 했다. 중국이 불공정 무역 협상에 서명하게 하려고 미국이 홍콩을 정치적 카드로 쓰고 있다는 중국 측 전문가의 해석도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6일 미·중 1단계 무역 합의가 임박했다고 밝혔다. 양국 고위급 무역 협상 대표단이 전화 통화를 한 직후다.
이날 미국 측 대표인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 대표와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 중국 측 대표인 류허 부총리는 통화를 하며 "무역 합의 1단계와 관련한 핵심 문제를 논의했고 관련 문제들을 해결하기로 서로 이해했다"고 중국 상무부는 발표했다. 상대국에 대한 관세 부과 철폐, 중국의 미국 농산물 구매 등이 논의된 것으로 전해졌다.
[베이징=김남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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