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2.05 (목)

이슈 종교계 이모저모

‘산행 중 입적’ 임종게 못 남긴 적명 스님 미공개 마지막 인터뷰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동아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해 12월 24일 입적한 봉암사 적명 스님은 평생 수좌(首座·참선을 위주로 수행하는 승려)로 살며 그 삶을 지키고 사랑해온 선승(禪僧)이었다.

동아일보와의 인터뷰는 2018년 5월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경북 문경시 봉암사 내의 거처에서 이뤄졌다. 교계를 포함해 마지막 인터뷰다. 당시는 설정 조계종 총무원장의 거취를 둘러싼 갈등이 첨예하고, 바깥세상에서는 보름 여 전 남북정상회담이 열려 해빙 무드가 가득하던 시기였다. 스님은 종단 형편을 감안해 자신의 발언이 봉암사, 나아가 수좌 전체의 입장으로 해석될 수 있다며 기사화하지 말아야 할 것을 당부했다. 하지만 스님이 산행 중 입적해 임종게(臨終偈)조차 남기지 못한 터라 생전 목소리를 공개한다.

첫 이야기는 커피였다. “적명 스님이 타주는 다방커피가 맛있는데 얻어먹은 이가 몇 안 된다고 하더라”고 하자 스님은 싫은 내색 없이 커피 한 잔을 내주었다.

―그 소문난 커피다.

“30년 쯤 됐는데 내원사 부근 토굴에 있을 때 아침을 간단하게 먹는 법을 연구했다. 참선 시간도 축내지 않고 속도 편하게 할 것을 찾았다. 죽, 누룽지, 미숫가루 등 여러 가지 했는데 안 됐다. 그러다 커피에 달걀을 타 먹으니 부담스럽지도 않고 든든하더라. 중이 무슨 달걀을 먹느냐는 생각도 했지만 입이 좋다고 하니…. (웃음) 낮에는 커피 하나, 설탕 둘, 크림 둘 이렇게 탁탁 풀어먹는다. 이놈의 중이 블랙을 먹을 줄 알아야지.”

―계율을 지키는 계행(戒行) 파괴에 대한 종단 안팎의 비판이 거세다.

“우선 세상이 점점 바뀌니 재능 있는 인재들이 출가하는 경향이 줄었다. 선의 중흥조가 된 경허 스님(1846∼1912)의 계율을 뛰어넘는, 무애행(無碍行)도 잘못 받아들여졌다. 깨달음 없이 무애만 따라 하니 세상의 욕을 먹는 거다. 지행합(知行合)은 유가와 불교에서도 두루 갖춰져야 한다. 지혜가 행으로 나타나는 것이 보살행이고 불교사상이다.”
동아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성철 청담 향곡 스님 등이 중심이 된 봉암사 결사는 청정승가의 정신을 회복시킨 운동으로 남아 있다.

“결사에 참여했던 성수 스님으로부터 그때 얘기를 전해 들었다. 노장 말씀에 따르면 낮에는 일하고, 저녁 먹은 뒤 참선하고, 부처님 법대로 살던 꿈같은 시절이었다고 하더라. 6·25 전쟁으로 결사가 흐트러졌다. 전쟁 뒤 대처승들이 차지한 사찰을 정비하는, 정화불사(淨化佛事) 과정에서 수좌들이 나설 수밖에 없었다. 수행에 전념해야 할 수좌들이 불가피하게 주지, 종회의원 등으로 총무원 행정을 맡게 됐다. 수행승들이 자의반타의반 세속화한 게 요즘 종단 위기의 한 씨앗이다.”

―수좌 목소리가 예전만 못하다고 한다.

“몇 십 년 전만 해도 수좌들이 종회에 가서 발언하면 영향력이 있었는데 어느 때부터인가 종단이 수좌들 말에 신경도 쓰지 않더라. 종단의 중심이 사판승(事判僧·사찰과 종단의 행정을 담당하는 승려)으로 옮겨간 탓이다. 그런데 사판이 제대로 된 원력이 없으면 돈과 권력, 성(性)에 거리를 두기가 쉽지 않다.”

―종단의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나.

“종단 운영에 참여했던 도법 스님은 ‘총체적 부패라 졸지에 바뀌기는 어렵다’고 하더라. 봐서 알겠지만 밖에서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도 효과가 없다. 당연한 얘기 같지만, 뼈를 깎는 수행과 철저하게 계를 지키는 지계(持戒)가 출발점이다. ‘저 사람은 진짜 중 같아, 부처님 제자 같아’, 이런 말들이 나와야 승가 전체와 일반 신도까지 바뀌는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동아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육사 입학하려다 출가하신 걸로 들었다.

“필기는 붙었는데 면접에서 떨어졌다. 그러던 중 부처님을 알게 되면서 출가를 결심했다. 21세 때 출가해 30세에 선방에 앉았는데 선배가 없더라. 36세 때 극락암에 있었는데 70명 대중이 모였고 그때 유나(維那·선원의 규율과 질서를 다스리는 직책) 소임을 맡았다.”

―지금은 조실(祖室·사찰의 최고 어른)이 되실 만 하지 않나.

“내가 확철대오(廓徹大悟·철저하고 크게 깨달음)한 사람도 아닌데…. 향곡 스님 모시고 살아보니까 노장님도 조실이라고 안 하시더라. 지금 송담 스님(용화선원)도 선원장이라고만 하시고…. 총림이나 큰 절은 급하고 큰 일이 많아 방장이나 조실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봉암사는 그리 급한 절이 아니라 그런 자리는 필요 없다.”

―성철스님과도 인연이 적지 않다.

“노장님 계실 때 내가 해인사에서 입승(立繩·사찰의 규율 담당) 소임을 맡고 선원장도 했다. 하지만 악역을 맡아 마음 고생하다 떠난다고 했더니 노장께서 섭섭해 그런지 얘기를 들으려고도 안 해. 그래, 지금 떠나지만 스님 입적할 때는 임종 지키겠다고 하니, 노장 얼굴에 화색이 돌며 ‘그 말이 정말이가’ 이러시더라.”

―돈오돈수(頓悟頓修·완전한 깨달음을 얻으면 수행이 더 필요하지 않음), 돈오점수(頓悟漸修·깨달은 뒤에도 점진적 수행단계가 필요) 논쟁도 치열했나.

“그때 큰 방서 결명차, 보리차 한잔 먹으면 ‘돈점 논쟁’이 일어나곤 했다. 성철 스님은 돈오돈수하면서도 돈오점수를 부정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최상승 선에서는 돈오돈수이지만 근기가 약한 이들에게는 점수가 필요한 것 아닐까. 성철 스님의 돈오돈수와 보조스님의 돈오점수는 서로 부정하는 게 아니라 방점, 강조점만 다른 거라고 본다.”
동아일보

2013년 세계적 명상 지도자 아잔 브람과 대담을 나눈 적명스님(왼쪽). 참불선원 제공


―남북정상 회담으로 해빙 무드다.

“내가 우리 나이로 80이다. 이쯤 되면 이생을 잘 산 것이니, 이제는 개울가 산책하고 수행이나 하면서 살려고 했다. 그런데 요즘 분위기를 보니 마음이 들뜬다. 내년 가을 쯤 혹 자유왕래가 이뤄지면 금강산이며 평양, 대동강을 한번 돌아보고 싶다.”

―조언을 한다면….

“김정은이 진정한 자유, 민주화를 위해 문을 여는 사람으로, 북한을 자유로운 사회로 이끄는 리더 역할을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북한 내부는 곪아터지고, 남북, 북미 관계 모두 어려워질 것 같다.”

―공존과 상생 위해 어떤 마음가짐이 필요한가.

“불교의 불이(不二) 사상은 평화의 진리다. 나와 네가 대립하는 두개의 세계가 아니기 때문에 싸울 필요가 없다. 어머니가 아이를 무한으로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아이를 자기 자신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진정한 평화가 오려면 너와 나, 온 우주가 하나의 세계라는 자각이 절실하다.”

―사람들에게 자주 권하는 경전 구절을 들려 달라.

“화엄경이 좋다. 그중 심여공화사(心如工畵師) 능화제세간(能畵諸世間) 오온실종생(五蘊實從生) 무법이불조(無法而不造)라는 구절이 있다. ‘마음은 그림을 그리는 화가와 같아 능히 세상사를 다 그려내고, 오온은 모두 마음으로부터 나온 것이어서 그 무엇도 만들어 내지 않은 것이 없다’는 말이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결국 모든 것은 마음 하기에 달려 있다.”

문경=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 동아일보 & dong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