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시간 넘는 회의에도 팽팽한 줄다리기…22일 2차 예정
금감원ㆍ은행, 경영진 징계 수위 놓고 첨예한 대립각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아시아경제 조강욱 기자] 대규모 원금손실을 낸 해외금리 연계형 파생결합펀드(DLF) 사태에 대한 금융감독원의 첫 제재심의위원회가 16일 열렸지만 11시간이 넘는 회의 끝에도 결론을 내지 못했다. 금감원은 오는 22일 2차 제재심을 연다는 계획이다. 당초 예정된 30일보다 일주일 가량 앞당겼다. 첫 제재심이 하나은행 위주로 진행돼 우리은행에 대한 논의는 2차에서 본격화될 전망이다. 최고경영자(CEO)에 대한 징계 수위를 놓고 치열한 공방전이 펼쳐졌던 만큼 제재심이 3차 이상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17일 금감원 및 은행권에 따르면 전일 열린 첫 제재심은 오전 10시 시작해 오후 9시쯤 끝났다. 이날 제재심은 금감원 조사부서와 제재 대상 은행이 각각 의견을 내는 대심제 방식으로 진행됐다. 금감원이 중징계인 문책경고를 사전 통보했던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과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부회장은 직접 제재심에 참석해 변론에 나섰다.
KEB하나은행에 대한 심사는 오후 7시까지 이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이어 우리은행에 대한 심사가 2시간여 동안만 진행됐고 결론을 내지 못한 채 마무리됐다. 본래 우리은행 제재심은 오후 4시쯤 시작할 예정이었지만 하나은행 제재심이 오후 7시가 지나서야 끝났다.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은 오후 2시30분께 제재심이 열리는 금감원 11층 대회의실에 도착했지만 4시간30분 이상 대기해야 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제재심을 개최해 하나은행 및 우리은행 부문검사 결과 조치안을 심의했으나 논의가 길어짐에 따라 추후 재심의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날 제재심에서 금감원과 은행 측은 경영진의 징계 수위를 두고 첨예한 대립각을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핵심 쟁점은 내부통제 부실의 책임을 물어 경영진까지 제재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금감원은 제재 근거로 '내부통제 미비'와 '무리한 경영압박'을 꼽고 있다. 은행 본점 차원의 과도한 영업과 내부통제 부실이 DLF의 불완전판매로 이어졌다는 지적이다. 금감원 측은 이미 법률적 검토를 끝냈다고 했다.
하지만 은행 측은 내부통제 부실에 대한 책임으로 CEO에게 중징계를 내릴 법적인 근거가 미약하다는 논리로 소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행 금융회사 지배구조법에는 '금융회사는 내부통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 시행령에는 '실효성 있는 내부통제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반면 내부통제가 부실할 경우 CEO를 처벌할 수 있다는 조항은 없다. 금융위는 지난해 DLF 사태와 같은 소비자 피해 재발을 막기 위해 그 책임을 최고경영자 등 경영진이 지도록 하는 근거를 마련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근거 규정이 되는 '금융회사 지배구조법 개정안'은 현재 정무위원회에 계류돼 있는 상태다.
은행 측은 또 손 회장과 함 부회장 등 경영진이 DLF 불완전판매에 직접 개입하지 않았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태 발생 이후 고객 피해 최소화와 재발방지책 마련에 노력을 다했다는 점도 부각했다. 앞서 금감원은 DLF 현장 검사에서 손 회장과 함 부회장 등 경영진이 직접 DLF 판매를 지시한 정황은 발견하지 못했다.
금융회사 임직원에 대한 제재는 경징계인 주의, 주의적경고를 비롯해 중징계인 문책경고, 직무정지(정직), 해임권고 등 다섯 단계다. 중징계를 받은 임원은 잔여임기를 수행할 수 있지만 이후 3년 간 금융회사의 임원으로 재직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손 회장은 지난해 연임에 성공했지만 3월 주주총회 전 중징계가 확정될 경우 연임이 불가능해질 수 있다.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의 후계자 1순위로 꼽혔던 함 부회장은 중징계를 받는다면 차기 회장에 도전할 수 없게 된다. 이의신청을 제기하고 법원에 제재의 효력을 멈춰 달라는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낼 수도 있지만, 금감원과 각을 세우는 것으로 비쳐져 부담이 될 수 있다. 금감원은 이미 경영진인 손 회장과 함 부회장에게 중징계인 '문책경고'를 사전 통보한 상태다.
첫 제재심부터 양 측의 주장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결정이 나기까지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 금감원은 공지를 통해 "다음 제재심 일정은 확정되는 대로 다시 안내할 것"이라고 밝혔다. 당초 2주일 뒤인 오는 30일에 2차 제재심이 예정돼 있었다. 하지만 논의 속도를 높이기 위해 일정을 앞당기기로 했다는 것이다. 2차 제재심 날짜는 22일이 유력하다. 한 주 뒤인 23일이 설 연휴 바로 전날이라는 점도 영향을 준 것으로 풀이된다. 2차 제재심에선 우리은행에 대한 심의가 본격적으로 열릴 전망이다. 이어 30일에 3차 제재심이 열릴 가능성도 있다.
일각에서는 사고에 대한 책임을 모두 CEO에게만 전가해 중징계를 내리는 것은 정부의 혁신금융 기조와 맞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사에서 판매하는 수백여개의 상품 모두에 대해 CEO에게 책임을 묻는다면 보신주의에 갇힐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또 금융 사고를 예방하고 관리해야할 금감원이 책임 회피를 위해 금융회사에 과도한 징계를 물리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앞서 감사원은 3년 전인 2017년 '금감원 기관운영 감사' 결과를 통해 금감원이 법적 근거가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금융회사 임직원에게 징계를 내렸다고 지적하며 금융기관과 임직원에 대한 징계 근거를 명확히 하고, 과태료 면제 등에 관련해서도 법적 근거를 마련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사인이 중대하기 때문에 한 두 차례 제재심으로 끝날 것으로 보지 않는다"면서 "특히 CEO 뿐만 아니라 금융기관에 대한 제재도 엮여 있어 금융위원회의 최종 의결이 필요하기 때문에 징계 수위가 결정되더라도 실제 효력 발생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수 있다"고 말했다.
조강욱 기자 jomarok@asiae.co.kr
<ⓒ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