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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7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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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그룹 익스트림의 ‘러브송’…‘교황의 키스’만큼 감미롭고 아름다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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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익의 아재음악 열전]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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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있는지 없는지는 알 수 없으나 눈으로 보거나 손으로 만질 수 없음은 분명하다. 이건 과학적인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늘 신의 대리자를 갈구한다. 이른바 종교지도자들. 그들이 가는 길은 눈이라도 한번 마주치고 싶어 먼 길을 달려온 사람들로 가득하다. 신은 볼 수 없으니 그 대리자라도 보고 싶은 마음, 이해가 간다. 나 역시 오래전에 법정 스님을 친견했던 순간을 아직도 기억하니까. 이동 중에 잠시 내 앞에 걸음을 멈추신 스님이 눈을 보며 한마디 건네주시던 짧은 순간, 주위 구름떼 같은 신도들이 모두 사라지고 오직 스님과 나 둘만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 같은 환각을 경험했다.

얼마 전 2019년 마지막 날에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불미스러운 사건이 있었다. 자신을 보러 온 인파를 지나치면서 인사도 하고 손도 잡아주던 중에 어떤 신도가 교황의 손을 확 낚아채고는 놓아주지 않은 것이다. 놀란 교황이 그의 손등을 찰싹 내리치며 화를 냈고, 그 장면은 고스란히 뉴스로 중계되었다. 나도 영상을 봤는데 교황도 역시 인간이구나 싶었다. 버럭 교황이라는 별명이 막 붙을 찰나, 교황은 바로 사과 메시지를 발표했다.

“우리는 자주 인내심을 잃으며 그건 내게도 일어난다. 어제 있었던 나쁜 전례에 대해 사과한다. 여성을 향한 모든 폭력은 여성에게서 태어난 신에 대한 모독이다.”

그의 사과를 듣는 순간, 나는 생각이 바뀌었다. 이 사람은 신일지도 모르겠다. 최소한 신과 아주 닮은 분이겠구나. 사실 사과를 해야 할 사람은 무례한 행동을 했던 신도임이 분명한데도 교황은 망설임 없이 조건 없는 사과를 건넸다. 게다가 자신도 분노를 가진 인간임을 시인함으로써 도리어 신의 영역으로 한발짝 더 다가갔다.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얼마 뒤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자신을 기다리는 인파 속에서 수녀 한분이 교황에게 키스를 해달라고 외치자 교황이 다가갔다. 바로 며칠 전에 버럭 교황 사태가 있었던 터라 주변 사람들이 긴장한 가운데 교황은 수녀에게 이렇게 물었다.

“저를 깨물려고요?”

교황의 표정에는 장난기가 가득했고 수녀는 당연히 아니라고 했다. 그러자 교황은 다정히 수녀의 뺨에 키스를 해줬고 긴장했던 주변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리며 행복해했다. 근래에 내가 본 가장 아름다운 키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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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감동을 담아 제목에 키스가 들어간 노래 중에 내가 아는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소개할까 한다. 30년 전쯤 짧고 강렬하게 헤비메탈 팬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사라진 그룹, 익스트림. 원래 그들의 음악은 강렬한 록 음악이다. 탄탄한 리듬 위에 유려한 기타 리프를 얹고 관악기와 코러스도 적극적으로 쓰곤 했다. 그러나 30년이 지난 지금 대중에게 기억되는 그들의 히트곡은 감미로운 러브송 두곡이니, 허무하다. 왕년에 기타 좀 쳤다는 아재들은 다들 한번쯤 기타 줄을 튕기며 불러봤을 ‘모어 댄 워즈'가 제일 유명하고 이 노래 ‘내가 당신에게 처음 키스한 그때’(When I first kissed you)가 그다음으로 유명하다.

록밴드라고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마냥 로맨틱하다. 재즈의 느낌이 가득한데다 현악 반주로 낭만적인 선율을 더한다. 가사는 또 어떤가. 뉴욕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꼭대기에서 첫 키스를 했던 순간을 그리고 있다.

‘우린 바보처럼 행동하고 달콤하고 실없는 말을 속삭였어요. 어린 연인들만이 하는 짓들 말이에요. 난 떨고 있었지만 당신은 마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처럼 굉장했어요. 새벽 한시가 되어도 잠들 줄 모르는 도시의 밤은 한창. 당신과 처음 키스했을 때, 사랑에 빠졌음을 알았어요.’

이 노래가 나왔을 때 나는 고등학생이었는데, 당시에 유행하던 낙서를 변주해 연애편지를 썼던 기억도 난다. 대충 이런 식이었다.

‘국어시간에는 너의 이름으로 삼행시를 짓고/ 수학시간에는 사랑의 방정식을 풀고/ 영어시간에는 너에게 제일 잘 어울리는 영어 이름을 생각해. 생물시간에는 너의 신체구조가 궁금하고/ 물리시간에는 우리의 스킨십을 연구하고/ 문학시간에는 이 시를 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잘못을 저지른다. 그래 놓고도 변명하고 숨기려는 인간들이 태반이다. 진심 어린 사과를 건네기만 해도 꽤나 훌륭한 인간 축에 든다. 잘못이 없는데도 상대를 용서하고 도리어 사과하는 일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다. 그러나 키스는 오직 인간만의 특권이다. 입술을 사용하는 가장 멋진 방법이며 의학적으로도 심신을 건강하게 만드는 습관이다. 익스트림의 노래로 키스 감성 충전하시고, 다들 사랑하는 이에게 자주 입 맞추는 2020년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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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익 ㅣ 에스비에스 피디·<정치쇼>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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