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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5 (화)

국경 없는 감염병… 매년 오염지역서 수백만명 한국 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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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 리포트]중국發 폐렴으로 본 해외 전염병 실태

동아일보

경기 오산시에 사는 중국 국적 여성 A 씨(36)는 사흘째 계속되는 열과 기침 때문에 2일 가까운 병원을 찾았다. 독감 검사를 받았지만 음성이었다. 의사는 “목이 붓고 빨갛게 염증이 있다”며 하루 치 인후염 약을 처방해줬다. 하지만 약을 먹어도 차도가 없자 A 씨는 다음 날 병원을 다시 찾았다. 흉부 X선 검사를 했지만 별다른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다. 의사는 “혹시 모른다”며 타미플루를 포함한 사흘 치 약을 추가로 처방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증상이 계속되자 결국 A 씨는 6일 인근의 한림대 동탄성심병원을 찾아갔다. 첫날 검사에서는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다음 날 흉부 X선 검사를 하니 폐렴 소견이 나왔다. 담당 의사는 며칠 전 질병관리본부(질본)에서 온 공문을 떠올렸다. A 씨에게 해외 방문 이력을 물었더니 “지난해 12월 13∼17일 중국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시에 출장을 다녀왔다”는 답이 돌아왔다. 심상치 않은 낌새를 챈 담당 의사가 곧장 질본에 보고했고, A 씨는 당일 저녁 국가 지정 격리병상인 분당서울대병원으로 이송됐다. 입원 1시간 뒤 역학조사관 2명이 병원을 찾아왔다.

A 씨 사례는 중국에서 원인 불명의 집단 폐렴이 발병한 직후 최근 국내에서 발생한 폐렴 의심환자 이야기다. 중국 폐렴의 원인이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나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와 같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밝혀지면서 국내에서도 감염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다행히 A 씨의 감염 원인은 코로나 바이러스와 무관한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아직 안심하기는 이르다. 중국의 집단 발병 폐렴으로 현지에서 41명이 격리 치료를 받았으며, 이 중 60대 남성 2명이 사망했다. 중국 보건당국은 발원지로 여겨지는 우한 화난(華南) 해산물 시장 관계자들과 접촉자들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최근 중국 폐렴이 태국, 일본, 대만, 홍콩 등 주변국으로 전파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현재 인천과 우한을 잇는 직항 비행기만 주 8편으로, 입국 인원은 하루 200명에 달한다.

○ 갈수록 증가하는 해외 감염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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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시대를 맞아 해외에서 유입되는 감염병은 날로 늘어나는 추세다. 해외 유입 법정(法定) 감염병 1∼3급 신고 건수는 2010년 334건에서 메르스 사태 직후인 2016년 500건대로 급증했다. 지난해에는 686건을 기록했다. 지난해 베트남과 필리핀, 태국 등에서 홍역에 걸린 환자만 86명이다.

특히 뎅기열(2019년 기준 279명), 세균성 이질(104명), 말라리아(74명) 등 열대 혹은 아열대성 질병의 신고 건수가 눈에 띄게 많다. 해당 감염병은 우리나라 여행객이 급증하고 있는 동남아 국가와 중국 남부에서 주로 유행하고 있다. 필리핀, 베트남, 라오스, 태국, 인도, 캄보디아, 중국 등 아시아 지역이 전체 신고 건수의 86%를 차지했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최근 콩고민주공화국에서는 홍역이 유행하면서 7일까지 31만 명이 감염됐고 6000명 이상이 사망했다. 콩고에서 한국을 찾는 입국 인원은 2018년 하반기(7∼12월) 기준 월 100명 가까이 된다.

이민원 질본 긴급상황센터장은 “세계 각지에서 다양한 감염병이 유행하면서 종종 이름조차 생소한 감염병 신고도 들어온다”며 “출국자가 늘고 메르스 사태 이후 해외 감염병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신고 건수도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동남아 지역 등에서 감염병이 만연한 원인을 지구 온난화와 무분별한 자연 개발에서 찾고 있다. 기온 상승이 세균 등 미생물의 활동을 촉진하는 한편, 자연 개발로 인해 바이러스 숙주인 야생 동물과의 접촉 빈도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한 폐렴도 사스나 메르스처럼 야생 동물로부터 바이러스가 전이됐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추정된다. 이재갑 한림대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기후변화로 열대 질환을 옮기는 모기 생태계가 촉진되고 있다”며 “무분별한 자연 개발로 생기는 폐기물과 웅덩이에서 해충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 매년 ‘위험 지역’에서 수백만 명 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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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본은 세계 각지의 감염병 현황을 파악해 이 중 위험 지역을 ‘감염병 오염 지역’으로 지정해 공개하고 있다. 중국을 포함해 총 65개국의 감염병 오염 지역(이달 8일 기준)에서 우리나라로 입국하는 인원은 매년 수백만 명에 이른다.

질본에 따르면 감염병 오염 지역에서 입국하는 인원은 2017년 943만7000명, 2018년 906만 명, 지난해 580만6000명이었다. 오염 지역으로 지정된 국가들이 바뀜에 따라 지난해 입국 인원이 크게 줄었는데도 이상 증상을 신고한 인원은 예년과 비슷했다. 이상 증상을 신고한 인원은 2017년 25만9000명, 2018년 26만5000명, 2019년 23만9000명. 감염병 오염 지역 입국자 가운데 증상을 신고한 사람들의 비율은 2017년 2.7%에서 지난해 3.9%로 늘어난 것이다. 지난해 공항 진단검사실에서 감염병 양성 반응 결과를 받은 사람은 1449명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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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본은 귀국 직후 이상 증상이 보이면 반드시 보건당국에 신고하라고 당부한다. 가까운 병원 또는 보건소를 찾거나 질본 콜센터(1339)로 신고해야 한다. 의료진도 법정 감염병이 의심되는 환자를 발견할 경우 반드시 신고해야 한다. 신종 감염병을 포함한 1, 2급 법정 감염병을 신고하지 않은 의료인은 최대 500만 원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

○ 감염병 정보 전달체계도 바꿔야

2010년 6월 해외 순회공연을 마치고 돌아온 한 예술단체의 여성 단원 2명이 고열과 설사 증세로 병원에 입원했다. 이들은 다른 단원들과 함께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나이지리아, 터키, 이집트 등 4개국에서 공연을 마치고 막 귀국한 참이었다. 검사 결과 병명은 아프리카 일대에서 유행하는 ‘급성 열성 전염병 말라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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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3월 7일 충북 청주시 질병관리본부 긴급상황실(EOC)에서 관계자들이 감염병 위기대응 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감염병 정보를 실시간으로 확인해 유관기관, 지방자치단체와 공동 대응한다. 질병관리본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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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단원은 말라리아 예방약을 처방받아 이미 복용한 상태였다. 그러나 확인 결과 담당 의사가 잘못된 약(항말라리아제 ‘클로로퀸’)을 처방해준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나이지리아는 항말라리아제 종류 중 클로로퀸의 효능이 떨어지는 지역이기 때문에 ‘말라론’이나 ‘메플로퀸’을 처방해야 한다. 결국 두 단원은 투병 끝에 숨졌다.

똑같은 감염병이라도 지역별로 차이가 있기 때문에 그에 맞춘 처방이나 치료가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의료진이 감염병 정보를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보건당국은 의료진을 대상으로 감염병 관련 정보를 공문을 통해 알리고 있다. 공문을 통해 실시간으로 감염 정보를 제공하는 데 한계가 있어 2015년 메르스 사태 이후부터는 새로운 방식을 동원했다. 휴대전화로도 볼 수 있는 소식지 ‘감염병 뉴스레터’를 고안한 것. 질본은 대한의사협회와 함께 뉴스레터를 제작해 의료인 9만 명에게 격주로 발송하고 있다. ‘인플루엔자 유행주의보 발령’ ‘서울 모 학교 홍역 발생’ 등과 같이 국내 감염병 최신 소식과 국제 동향, 일반 상식 등을 고루 담고 있다.

그러나 뉴스레터를 받은 의사 10명 중 4명은 내용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질본이 지난해 11월 의료인 35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평소 소식지를 잘 챙겨 보느냐’는 질문에 60.6%만 ‘그렇다’고 대답했다. 뉴스레터에 대한 평가는 전반적으로 호의적이었다. 응답자 10명 중 8명 이상(84.6%)이 ‘소식지가 신고 및 진료에 도움이 됐다’고 평가했다. 응답자의 71.4%는 ‘감염병 최신 소식의 분량을 늘리기를 희망한다’고 답했다. 이에 따라 질본은 소식지 전달 대상을 간호사와 보건의료직 공무원 등 다양한 직군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스마트폰 문자 등을 활용해 소식지에 대한 접근성도 높일 방침이다.

한층 전문적이고 다양한 내용을 다룰 수 있도록 별도의 홈페이지를 구축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재갑 한림대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미국, 영국에서는 의료인을 대상으로 한 전문적인 감염병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사이트밖에 없는데 의료진이 최신 연구 동향과 정보를 파악할 수 있도록 홈페이지를 별도로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미지 image@donga.com·위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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