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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3 (금)

3만5000명 찾은 문경의 명소… '지방소멸' 일단 멈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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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도시 청년들이 성공시킨 카페 '화수헌'

조선일보

카페 ‘화수헌’은 1800년에 지은 경북 문경 한옥 고택에 자리하고 있다. 인천 채씨 소유 고택을 문경시가 매입한 뒤 임대한 것이다. 지난 17일 오전 김이린(왼쪽부터) 팀장, 도원우 대표, 김보민 팀장이 영업을 앞두고 화수헌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문경=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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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지가 험해 나는 새도 넘기 어렵다는 문경새재. 그 고개를 넘어가면 인천 채(蔡)씨 집성촌인 경북 문경 현리마을이 나온다. 한국고용정보원의 지방소멸지수대로라면, 언젠가 이 마을은 사라질지 모른다. 인구 증가는 거의 없는데, 고령화만 급속히 진행되는 인구 소멸 위험 지역이기 때문이다.

2년 전, 날렵한 20대 청년 5명이 이 마을에 날아들었다. 부산외대 선후배인 이들은 각각 부산·대구·창원 출신. 이 지역과는 연고가 전혀 없다. 20대의 패기였을까. 이곳에 이들은 '화수헌'이란 카페와 게스트하우스를 열었다. 금방 문 닫을 줄 알았는데, 지난해 연 매출 2억6000만원에 3만5000명이 방문한 문경의 명소가 됐다. 화수헌 도원우(28) 대표, 김보민(29) 매장관리 팀장, 김이린(30) 경영전략 팀장을 만났다.

청년, 시골로 가다

지난 17일, 오전 10시 30분. 화수헌 기와지붕에 눈이 소복이 쌓였다. 전날 내린 눈이 이날 오전까지 이어져 내리고 있었다. 도 대표가 "오늘은 눈도 내리고 날도 추워 손님이 오후까지는 안 올 것 같다"고 했다. 30분 뒤 문 여는 시간. 도 대표 말이 무색하게 손님 4명이 들어섰다.

―화수헌은 어떻게 열게 됐나요.

도원우 대표(이하 도): "2017년 경북도에서 추진한 '도시청년 시골파견제'에 뽑혔어요. 도시 청년이 경북 지역에 정착해 사업을 하면, 지원금을 줍니다. 대학 때 만난 마음 맞는 선후배 5명이 리플레이스란 팀을 이뤄 지원했습니다."

지원 당시 도 대표는 대구에서 보험 판매를, 김보민 팀장은 경남 창원 건축사 사무소 관리팀에서 일하고 있었다. 김이린 팀장은 일본 IT 회사에서 근무하다 결혼을 앞두고 한국에 들어온 참이었다. 각자 일은 달랐지만, 회의감이 컸다.

도: "'나이가 더 들어서도 이 일을 지속할 수 있을까'를 생각했을 때 아닌 것 같았어요."

김보민 팀장(이하 김): "대학 졸업 후 취업해 직장을 두 번 정도 옮겼어요. 일에 치이고, 사람에 치이고 지치더군요."

―막상 시범 사업자로 선정됐을 땐 막막했다고요.

도: "처음부터 문경, 화수헌으로 정해진 게 아니었어요. 6개월간 경북 청도·경주·안동·포항 등지를 돌아다녔는데, 만만치가 않았어요."

―어떤 부분이 힘들던가요?

김이린 팀장(이하 린): "자본이 부족해, 각 시·군의 유휴지 등을 활용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어요. 괜찮은 물건을 발견했다 싶으면 행정적으로 허가가 안 나거나, 주민들 반대에 부딪혔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온다면 좋아할 것 같은데.

도: "왜 세금을 들여서 다른 지역 애들을 도와주느냐는 시선부터 안 그래도 작은 시장을 뺏어 간다고 보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문경은 어떻게 선택됐나요.

도: "이곳에 온다고 하니 마을 이장님을 비롯한 시 관계자 분들의 첫 반응이 '잘됐다' '좋다'였습니다. 팀원들이 다들 '문경으로 하자'고 했습니다."

화수헌

화수헌은 1800년에 지은 고택이다. 인천 채씨 소유였다가, 문경시가 이를 사들였다. 리플레이스팀은 문경시에 임차료를 내고, 이를 카페와 게스트하우스로 이용하고 있다. 6개월 넘는 준비 과정을 거쳐 2018년 7월 말 문을 열었다.

―지원금은 얼마나 받았나요.

김: "1인당 연(年)생활비로 1000만원, 사업 지원금으로 2000만원을 줍니다. 이렇게 2년 지원받을 수 있어요. 생활비는 선지급되고, 월세나 통신비 등 지출 영수증을 추후 제출하면 됩니다. 사업 자금은 먼저 물건을 산 뒤 증빙 자료를 내면 후지급됩니다."

도: "이 부분이 힘들었어요. 처음 보는 젊은 애들이 와서 돈은 나중에 드릴 테니까 일단 테이블 먼저 달라고 하니 누가 선뜻 주겠어요(웃음)."

―그래도 결과가 좋았습니다.

도: "초반 2개월 정도는 '이게 될까' 싶었어요. 누가 오는지 다들 쳐다보고 있는 게 일이었으니까요."

화수헌은 대중교통으로는 찾아오기가 어렵다. 점촌시외버스터미널에 내려, 차로 10여분 이상을 들어와야 한다. 시내버스 한 대가 유일하게 이곳을 오간다. 입지로는 승부를 볼 수가 없기에, 유튜브·인스타그램 등 소셜 미디어 홍보에 힘썼다.

김: "공간이 워낙 예쁜 곳이다 보니, 사진이 예쁘게 나와서 그 덕을 좀 본 듯합니다."

린: "결정적인 건 첫해 추석이었어요. 명절에 고향에 왔다가 '신기한 곳 생겼는데 가보자' 하면서 다들 몰려오신 거예요. 평소 10분 정도 손님이 오셨다면, 추석 때 갑자기 300분이 오셨습니다."

그렇게 온 손님이 자신의 지역에 돌아가 소문을 냈다. 문경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외지인이 오면 꼭 데려오는 곳이 되더니, 이제는 일부러 화수헌에 들르려고 문경을 찾는 사람도 생겼다.

―떡 와플, 오미자 에이드처럼 지역 특산물을 활용한 메뉴가 많습니다.

도: "저희가 와서 지역에 도움을 드리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올해는 저희로 인해 전체 마을 주민이 5000만원 더 버시게 되는 게 목표입니다."

―지역 청년도 2명 채용했습니다.

도: "이 지역에서 일하니 자연스럽게 이 지역 청년들을 뽑게 됐습니다. 누구 집 딸이 빵 잘 굽는다고 해서 보니 정말 빵을 잘 굽더군요."

'리틀 포레스트'는 없다

지난여름을 마지막으로 화수헌에 대한 경북도의 지원은 종료됐다.

―지금 화수헌은 완전한 자립에 성공했나요?

도: "운이 좋아서 자립했고, 성장세입니다. 운이 좋다고 표현한 건, 이 사업은 초기 지원 이후 대책이 없어요. 졸업한 기업이 계속 지역에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하는 뭔가가 있었으면 합니다. 보조금 같은 현금 지원을 말하는 게 아니라, 컨설팅이나 저리 대출 같은 식으로요."

김: "전혀 모르는 지역에서 하는 사업이라, 2년이란 시간이 충분하지 않을 수 있어요. 저희도 2년 중 1년은 준비하는 데 시간을 다 썼거든요."

도 대표와 김이린 팀장은 3년 차 부부, 김보민 팀장은 미혼이다.

―시골살이가 만만치 않을 듯합니다.

린: "자연스럽게 아이를 가지려고 계획하고 있는데, 근처에 분만할 수 있는 산부인과가 없어요. 차 타고 1시간 거리인 구미나 안동까지 나가야 합니다."

도: "소주 마실 곳은 많은데, 분위기 좋게 칵테일 마실 곳은 없어요. 좋은 기념일에 갈 만한 식당도 부족하고요."

김: "머리도 대구 미용실 가서 하는 게 좋더라고요(웃음). 생각보다 지금 살고 있는 자취방 월세도 저렴하지 않아요."

최근 젊은 층에게 유행한 영화 중 '리틀 포레스트'가 있다. 도시에 살며 취업을 준비하던 주인공이 시골로 내려가 자급자족하며 자신을 치유하는 내용이다.

―청년들이 시골로 가는 게 좋은 대안이 될까요.

도: "이런 선택지도 있다는 걸 알려주는 정도죠. 그렇지만 '리틀 포레스트'는 아니에요. (도시에서) 때로 내가 치열하게 살고 열심히 해도 안 되는 경우가 많잖아요. 더 치열하고 열심히 하되 장소를 바꿔보겠다 하는 분들은 오셔도 좋아요."

린: "도시에서 살 듯 하나라도 손해 안 보려고 아득바득 살면 여기 와서 오히려 힘들 거예요."

김: "없는 게 많지만, 없는 만큼 자신의 뜻을 충분히 펼칠 수 있어요. 대신 워낙 지역이 좁아서 연애를 하려면 몰래 만나라고들 하더군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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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남정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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