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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찌릿찌릿(知it智it) 전기 교실]사라져가는 전봇대…지상에 모습 바꿔 남겨진 변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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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1985년에 처음 개봉했던 영화 <백 투 더 퓨처> 시리즈는 지금 다시 보더라도 과학적 사실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감을 느끼게 하는 데 손색이 없다. 날아다니는 드론과 호버보드(hover board), 지문인식이 가능한 출입문, 화상통화, 스마트 의류 및 신발 등의 미래상은 당시 가히 충격적이었다. 쓰레기를 연료로 사용해서 시간여행이 가능했던 드로리안 자동차는 말할 것도 없이 말이다. 이 영화에서 묘사된 미래의 시간대가 2015년이어서 우리에겐 이미 과거라는 것도 또 한 가지 놀라운 점이다. 얼마나 많은 기술들이 실현되었고 여전히 도전 중인지는 주위를 둘러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그런데 전기 기술을 연구하는 입장이 되어 보니, 그 당시 인식하지 못했던 또 하나의 변화상이 있었다. 바로 전봇대가 없던 2015년도의 모습이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아무 생각 없이 걷다가 부딪친 적도 있고 늘 그 주위에서 쓰레기와 불쾌한 냄새가 끊이지 않았던 것 같다. 하늘을 향해 시선을 돌리면 얼기설기 뒤섞인 전선들의 타래를 각 가정집으로 촘촘히 연결해주는 규칙성 없는 거미줄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런데 지금은 전봇대가 보이지 않는 지역이 많다. 특히 신도시에선 전봇대를 찾아보기가 힘든 시대가 됐다.

그렇다면 전기를 어지럽게 전달해주던 그 많던 전선과 전봇대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대답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숨겨진 것이라고 하는 편이 맞다. 2010년 당시 관련 부처인 지식경제부는 ‘가공 배전선로의 지중화사업 처리기준’을 공고해 공중을 지나던 전선과 전봇대를 땅속으로 숨길 수 있는 지중화 사업의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사실 도심 지역 내의 주택가에서 무질서하게 연결되어 있던 전선과 전봇대는 미관상으로도 좋지 않지만, 태풍과 같은 자연재해 및 교통사고 같은 인적 재난에도 취약했다. 필요성과 요구는 충분했지만 문제는 예산이었다. 관련법이 제정됨으로써 지자체의 요청에 따른 한국전력공사의 지중화 사업 추진의 기준과 예산 범위가 명시된 것이다.

그렇다면 땅 위에서는 전기와 관련한 시설을 전혀 볼 수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전봇대에 매달려 있던 원통형의 변압기와, 전기를 끊거나 연결하던 개폐장치의 기능은 여전히 땅 위에 올라와 있다. 인도 위에 있는 1m 내지는 1.5m 길이의 회색 네모 상자 형태의 구조물이 있으니, 이것이 바로 지상변압기이다. 2만V 이상의 고압 전기가 흐르기 때문에 외부 충격에도 견딜 튼튼한 철제로 만들어졌다. 또한 안전을 위해 외부에서 제거할 수 있는 나사와 볼트는 사용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마저도 불만 섞인 목소리가 있다. 바로 보행자의 통행권과 관련된 것이다. 좁은 인도나 시장 입구라면 지상 변압기의 공간도 꽤 불편할 수 있다. 또한 도로를 달리던 차량에 의한 충격으로 종종 사고가 나기도 한다. 그래서 아예 지상 변압기를 땅속으로 숨기는 것도 방법이다. 그러나 공중을 지나는 전선과 전봇대를 땅속과 지상에 설치하는 것만으로도 공사비가 5~6배가 든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안정적인 전기 공급을 위한 유지 관리비가 많이 들고, 사고 시 복구 작업을 할 때에도 눈으로 확인이 어렵다보니 더욱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고 한다. 안정적인 전기를 공급해주기 위해 예쁜 울타리도 설치해 보고, 공익 안내판과 예술작품을 붙여 보며 자리를 지키는 지상 변압기의 모습은 백 투 더 퓨처 속으로 사라진 과거의 흔적 중 하나인가 싶다.

김영선 | 한국전기연구원 전력ICT연구센터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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