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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0 (금)

‘머니게임’ 이영미 작가 “사회 좀먹는 금융 스캔들, 아플수록 외면 말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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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머니게임> 이영미 작가 인터뷰]

‘론스타 사태’가 사건 발단 뼈대

모피아가 활개치는 현실 꼬집어

경제전문가 조언 받아 2년간 집필

‘한국형 토빈세’ 구상 내놓기도

“전작들로 IMF 외환위기 다루면서

‘그래서 지금은 달라졌나?’ 의문

재밌는 드라마도 써보고 싶은데

사회 문제의식 뺄 순 없을 것 같아”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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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다큐드라마 <격동 50년>(문화방송)과 <대한민국 경제실록>(한국방송)을 집필하면서 아이엠에프(IMF) 외환위기를 두 번이나 다뤘어요. 그때마다 이런 의문이 들었죠. ‘그래서 97년과 지금은 달라졌나? 대한민국 경제를 이끌어가는 관료가 변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안전한가?’ 언젠간 이런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어요.”

이런 생각을 하는 작가의 등장이 반갑다. 최근 서울 마포구 상암동의 한 카페에서 <한겨레>와 만난 이영미 작가다. 그는 <티브이엔>(tvN)에서 방영 중인 수목드라마 <머니게임>을 집필하고 있다. 드라마 입봉작에서 한국 사회를 좀먹는 모피아(옛 재무부의 약칭 ‘MOF’와 ‘마피아’의 합성어)로 대표되는 금융 스캔들에 주목해 관심을 끈다. 금융위 부위원장에서 경제부총리가 되는 허재(이성민)와 기재부 사무관 이혜준(심은경), 금융위 금융정책국 과장 채이헌(고수)이 국가적 비극을 막으려고 대립하고 공조하며 사투를 벌이는 이야기다. 금융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시대의 중요한 화두이지만, 대중성을 생각해야 하는 드라마에서는 쉽지 않은 시도다.

금융 스캔들은 최근 1~2년 사이 영화의 소재로 등장했다. 아이엠에프 외환위기를 들여다본 <국가부도의 날>(2018년), 2003년 ‘론스타 외환은행 먹튀 사건’을 다룬 <블랙머니>(2019년)에 이어, 1997년 한보 사태를 다룬 <머니톡스>(가제)도 제작되고 있다. 드라마는 <머니게임>이 처음이다. 과거 사건을 바닥에 깔고 2020년에도 모피아가 활개 치는 현실을 꼬집는다. 작가는 “사건의 발단이 되는 1~4회에 등장하는 정인은행 비아이에스(BIS) 조작 사건은 2003년 론스타 사태를 뼈대로 삼았다”고 말했다.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헐값에 인수해 2012년 하나금융에 팔고 떠난 대표적인 ‘투기자본 먹튀 사건’이다. 당시 비리에 연루된 인물들이 실존하는데다 마지막 재판이 끝나지 않아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작가는 “아프다고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아픈 상처일수록 더 부릅뜨고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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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드라마는 과거를 상기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같은 아픔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여러 대안을 제시하는 점이 돋보인다. 극 중 허재가 채이헌한테 제안하는 ‘한국형 토빈세’ 등이다. 작가는 “먹튀 방지 법안을 취재하면서 여러 전문가의 조언을 듣고” 토빈세에 기반을 둔 가상의 ‘한국형 토빈세’를 구상했다고 한다. 그는 또 “대사에도 나오지만 투기자본의 먹튀 방지를 한 국가가 하게 되면 외환이 빠져나갈 확률이 높다. 전세계가 움직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도 말했다.

작가는 이 작품을 2년간 집필했다. 팩트는 물론 대사 한마디까지 10명의 경제전문가에게 자문했다. “리얼리티가 살지 않으면 설득이 안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드라마는 일상적인 대사에서마저 정곡을 찌르는 팩트가 넘쳐난다. “대한민국에서 기술 유출로 재판받다가 감옥 가는 건 30%뿐이야. 감옥 가더라도 법정 최고형은 15년인데 6년 이상 받는 사람이 없어.” 기재부 사무관이 된 사회초년생 이혜준이 “아이엠에프 당시 선배들에게 분노를 느꼈다”는 허재에게 던지는 질문은 특히 뼈아프다. “부위원장은 지금 어떤 선배인가요. 부실기업이 로비라는 수단을 통해 은행을 동반 부실화시키는 현상. 그럼에도 숫자에 매몰되어 있는 관료들, 그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아서요.” ‘2010년 글로벌경제전망 보고서’ 관련 내용 등은 물론 국회의사당 앞 가장 가까운 미용실을 찾아 오가는 시간을 체크해 국회의원의 대사에 녹였을 정도다.

작가의 취재력에 오랜 내공이 더해졌다. 작가는 <손석희의 시선집중> 등 라디오 시사 및 다큐 프로그램에 10여년간 참여했다. 특히 경제 다큐멘터리를 5년 넘게 하면서 근현대사를 오랫동안 공부했다. 로비스트 관련 책을 내기도 했다. 학교 다닐 때부터 사회 부조리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머니게임> 대본을 쓰는 바쁜 가운데에서도 지난해 유신 종식의 신호탄이 된 부마민주항쟁을 조명하는 라디오 드라마 <79년, 마산>을 집필하기도 했다. “돈에 상관없이 의미 있는 일은 기회가 있으면 계속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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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스캔들은 콘텐츠로 만드는 것 자체가 어렵다. 쉽게 풀면 쫀쫀함이 아쉬워지고, 어렵게 풀면 외면을 받을 수도 있다. <머니게임>도 대중과 전문성의 균형을 맞추는 게 어려웠다고 한다. 경제용어를 최대한 자막으로 푸는 등 신경을 썼지만 소재 자체로 어렵다는 선입견을 갖게 했다. 너무 복잡할 것 같아 생략하면서 벌어진 아쉬운 지점도 분명 있지만, 그 의미에 견줘 시청률이 낮은 점은 안타깝다. 그래서 작가는 “드라마를 상품으로 접근해야 하나, 작품으로 접근해야 하나 고민이 생겼다”고 한다. 하지만 ‘좀비’가 여러 시도를 거치며 핵심 콘텐츠로 급부상한 것처럼 금융 스캔들 드라마의 시작은 그 자체로도 충분히 가치 있다. 작가는 “이 작품을 계기도 더 많은 관련 이야기가 나오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혔다.

첫 작품에서 필력을 인정받은 그는 벌써 다음 작품을 준비 중이다. 이번 작품에서 너무 머리를 싸매서인지 “쉽고 재미있는 작품을 쓰고 싶다”고 했지만, 그의 몸속에 새겨진 디엔에이(DNA)는 어디 가지 않는다. “재미있는 드라마를 쓰고 싶은데 사회를 보는 시각이나 문제의식을 뺄 순 없을 것 같아요. 그걸 빼고 써보려고 했는데(웃음)…. 그건 저의 정체성인 것 같아요.”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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