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사에 대출금 한도없이 공급… IMF 때도 안 쓴 전례없는 조치
한국은행은 이날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4~6월까지 석 달 동안 은행, 증권사 등 금융회사에 무제한으로 유동성(자금)을 공급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은행과 증권사들이 보유한 국채와 은행채 등을 담보로 잡고 기준금리(연 0.75%)보다 최고 0.1%포인트 비싼 수준의 이자만 받고 돈을 빌려주겠다는 것이다. 한은은 그동안 담보로 잡는 채권의 범위를 기존 국고채와 통안채, 정부 보증채 등 위험도가 낮은 채권에서 은행채와 공공기관 특수채 등 조금 더 위험한 채권까지 확대했다. 하지만 회사채와 기업어음(CP)은 여전히 대상에서 제외됐다.
한은이 시중에 돈을 푸는 가장 대표적인 방법은 금리 인하다. 이를 위해 한은은 지난 16일 긴급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인 연 0.75%까지 내렸다. 하지만 금리 인하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은 돈을 구하기 힘들다고 아우성일 정도로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만일 여기서 금리를 더 낮추면 저금리에 실망한 외국인 투자자가 한국을 떠날 수도 있다. 또 저금리가 부동산 시장을 자극할 우려도 있다. 그래서 이번에는 금리 인하 대신에 금융회사가 갖고 있던 채권을 한은이 사들이는 방식으로 돈을 풀기로 한 것이다. 한은의 이번 조치로 기업들의 자금 사정에 다소 숨통이 트일 전망이다. 한은이 은행과 증권사 등에 낮은 금리로 자금을 공급하면, 금융회사들은 더 싼 이자로 기업에 대출해줄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조치에도 자금난이 해소되지 않을 경우 결국 미국처럼 회사채와 CP를 중앙은행이 직접 사들이는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윤면식 한은 부총재는 "정부가 회사채 지급 보증을 선다면 한은도 (회사채) 매입 결정을 내리기 쉬울 것"이라며 "다만 회사채 정부 보증은 국회 동의를 얻어야 하는 사안이고, 국민적 공감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국내 자금시장 경색의 근본 원인으로 지적되는 외화(달러) 유동성 부족에 대한 대책을 한은과 정부가 내놓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양적완화
중앙은행이 채권을 사들이는 방식으로 시중에 직접 돈을 푸는 파격적인 통화정책으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미국이 처음 도입했다. 한국은행은 국고채와 은행채 등을 사들이는 ‘한국판 양적완화’에 나섰는데, 일부에서는 회사채와 CP(기업어음)까지 사들이는 미국보다 여전히 소극적이라고 비판한다.
[김은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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