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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1 (토)

[박정훈 칼럼] ‘산 文정부’가 ‘죽은 MB’를 못 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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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위기가 3년 경제 失政을 덮어줄 거라고?

천만의 말씀이다… 미증유의 위기 앞에서 정책 자해의 실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조선일보

박정훈 논설실장


문재인 정권은 ‘남 탓 정부’로 불렸다. 온갖 국정 자해극을 저지르고는 핑곗거리 찾는 일을 3년 내내 반복했다. 경제가 악화할 때마다 미·중 통상 분쟁 탓이며 재벌 탓, 야당 탓, 언론 탓을 했다. 심지어 인구구조 탓에다 날씨 핑계까지 댔다. 단 한 번도 정책 실패를 시원하게 인정한 적이 없다.

그중에서도 잦았던 것이 '보수 정권 탓'이었다. 성장률 추락도, 고용 참사도, 민생 악화도, 집값 급등도 전임 정권의 정책 적폐 탓을 했다. 20대 청년층의 국정 지지율이 낮은 것마저 "보수 정권의 잘못된 교육 때문"이라 했다. 실패를 지적받으면 "박근혜 때보단 낫다"거나 "이명박 시절로 돌아가잔 말이냐"며 어깃장으로 받아쳤다. 일만 잘못되면 '이명박·박근혜'를 들먹였다.

그러다 코로나 사태가 터졌다. 미증유의 위기가 닥쳐오자 이젠 모든 것을 감염병 탓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대통령까지 나서 "경제가 회복 중이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망쳤다" 하고 있다. 코로나만 아니었다면 경제가 좋았을 것이라 한다. 지난 3년의 거짓말처럼 이 말 역시 사실이 아니다. 코로나가 오기 전에 이미 경제는 질식 상태에 놓여 있었다. 세금 퍼붓는 억지 성장, 눈속임 가짜 일자리로 지표만 분식했을 뿐 경제는 좋아진 적이 없었다. 경제의 면역력이 저하되고 기초 체력이 방전된 그 위로 코로나 쓰나미가 덮쳐 왔다.

문 정부로선 '알리바이'가 생겼다 싶을 것이다. 3년간의 경제 실정(失政)을 '완전범죄'로 만들 수 있겠다 생각할지 모른다. 아닌 게 아니라 여권이 총출동해 밑밥을 깔기 시작했다. "2008년 금융 위기보다 심각하다"느니 "역대 어느 위기보다 더한 위기"라 하고 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뉘앙스가 수상하다. 3년 내내 낙관론만 펼치던 정부가 돌연 비관론자로 돌변했다. "경제는 심리"라느니 "뉴스만 보면 한국 경제가 망한 줄 알겠다"던 정부가 이젠 앞장서서 위기론을 띄우고 있다. 경제 부총리는 "코로나 타격이 3~4년 갈 수 있다"고도 했다. 임기 끝날 때까지 경제가 안 살아나도 정부 잘못이 아니라는 뜻으로 들린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이다. 코로나로 경제 참사를 덮을 수 있다 생각했다면 보통 착각이 아니다. 코로나 위기는 이 정권이 그렇게도 감추고 싶어하던 정책 실패의 민낯을 까발려 놓았다. 당장 위기에 대응할 정책 수단이 바닥난 사실이 드러났다. 끝없는 세금 퍼주기로 국가 부채 비율이 40% 마지노선을 넘었다. 이제 진짜 큰돈을 써야 할 때가 왔는데 재정 여력이 바닥까지 떨어졌다. 국제 신용평가사들은 벌써부터 재정 악화에 따른 신용 하락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국가 신용마저 떨어지면 정말 IMF 같은 사태로 번질 수 있다.

금리 실탄도 떨어졌다. 경기 부양을 한다며 금리를 인하해 버린 탓에 정작 위기가 오자 딱 한 차례 내리고 더 내릴 여력이 사라졌다. 위기에 맞서 싸워야 할 기업 전사(戰士)들은 활력을 잃은 지 오래다. 소상공인·자영업은 골병이 들었고 서민 경제는 싸늘하게 식었다. 경제 기초 체력이 방전되고 정책 실탄마저 간당간당한 상황에서 코로나가 덮쳐 왔다. 위기 앞에서 경제 실패의 실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이제 문 정권의 위기관리 능력이 시험대에 올랐다. 그들이 그토록 탓하던 이명박 정부와 비교당하는 것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초대형 위기의 본질이 2008년 금융 위기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MB 정권은 논란이 많지만 위기대응만큼은 최고점을 받을 만했다. 대통령 주도로 신속하게 대응하면서 금융 시스템과 실물경제를 지켜내는 데 성공했다. 당시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빨리 위기 회복에 성공한 나라였다. 해외 언론들로부터 모범 사례로 꼽혔다.

문 정권의 초기 대응도 정석(定石)을 벗어나지 않고 있다. MB의 '지하벙커 회의'처럼 대통령 주재 비상경제회의를 가동하고 한·미 통화스와프를 체결했다. 똑같이 추경을 편성하고 대규모 금융 지원 프로그램, 취약층 지원책을 만들었다.

응급조치는 비슷하지만 결정적 차이가 있다. 현실 부정의 이념 주도 국정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국가 경제의 존망이 걸린 위기 앞에서도 스스로 손발을 묶는 정책 자해를 계속하고 있다. 기업들은 죽을 지경인데 경직적인 주 52시간제, 과도한 최저임금, 덕지덕지 추가된 환경·산업 안전 규제, 세계 최악의 노동환경 등등의 족쇄를 풀어 줄 생각조차 않고 있다. 경제 활력 죽이고 기업 의욕 꺾는 반시장 정책 기조를 바꿀 생각도 없다고 한다. 자해 정책은 그대로인데 응급 처방만 쏟아붓는다고 경제가 회복될 수는 없다. 예정된 실패의 길로 가겠다는 것이다.

‘죽은 제갈공명이 산 사마중달을 이긴다’고 했다. 살아있는 문 정부가 ‘죽은 MB’를 당해내지 못하고 있다. 이기는 길이 뻔히 보이는데 보려 하질 않는다. 이념에 집착하는 정권의 오기가 경제를 죽이고 나라를 더 위기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박정훈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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